돈은 차갑게 다루고, 고기는 열기가 식었을 때 먹어야 하는데...
작년 남편의 회사에서 직원 배정 유상증자를 했다. 당시 주가는 연중 최고가 근처라 꺼려졌지만 설비투자를 위한 유상증자였고, 이미 몇 년 치 실적을 모두 수주해 놓은 상태라는 말에 우리는 투자하기로 했다. 다만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대출로 2000장을 사기로 했다. 주가는 등락을 반복했지만 계속 올랐다. 의무 보호 예수 기간이 끝나고 주식을 팔 수 있게 되었을 때 주가는 250%가량 올라 있었다. 우리는 300% 수익을 노렸지만 주가가 더 떨어지는 것을 보고, 수익률 200% 언저리에서 주식을 매도하기로 협의했다. 재테크에 관심 없던 남편은 그날부터 주식사이트를 들락거렸다. 퇴근하고 오늘의 주가에 대한 브리핑도 잊지 않았다. 남편을 보며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 이거 매도하면 이번 달 월급이랑 합쳐서 예금할 거야."
며칠 전 주식을 매도했고, 확정 수익을 보며 남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에 샀고, 얼마에 팔았는지, 이 거래를 통해 얼마를 벌었는지, 수익률은 몇 % 인지를 계속 말했다. 퇴근한 남편은 저녁을 먹다가 아이들 앞에서 주식이란 무엇이고, 자신이 얼마나 큰 수익을 거뒀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기분이 최고조에 달한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 우리는 아직 집이 없어. 그냥 아파트 취득세정도 벌었다고 생각해."
"우리 파티할까?"
"수익이 난 날 돈을 쓰면 생각보다 더 큰돈을 쓸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파티는 며칠 지나서 해."
그리고 남편에게 당부했다.
" 남편, 이번에 돈 번거 우리 가족 빼고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하지 마. 우리는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집도 없어. 그러니 없는 돈이라고 생각해."
남편은 알겠다고 했지만 남편 주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전에도 그랬으니까.
당연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기분을 지상에 안착시키려던 내 생각과 달리 남편은 지하로 내려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돈을 벌었으니 파티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시무룩해진 남편을 보니 내가 너무했나 싶었다. 고민하다 다음날 저녁에 다시 말을 꺼냈다.
" 남편 우리 주말에 파티 한번 하자. 근처 뷔페에서 외식하는 거 어때?"
내 제안을 들은 남편은 다시 말이 많아졌고 톤이 살짝 올라갔다.
" 그래, 저녁에 먹으면 헤비 하니까 점심때 먹자. 그리고 우리 직원 중에 유상증자 참여 조금밖에 안 한 사람 있는데, 돈이 얼마 안 된다고 내가 놀렸 __%~~^/;:;//-^, 그래서 우리는 팔길 잘했 &^%^%$#%$#. 우리는 점심때 파티를 하자."
남편의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나도 흐뭇했다.
다음날 남편은 출근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 뷔페보다 이번에는 스테이크 어때? 스테이크 3개를 시켜 먹자. 당신이 한번 괜찮은 곳을 찾아봐."
예전에 한참 종잣돈을 모을 때 저축한 돈이 만기가 되면 나도 파티를 했다. 파티를 할 때는 순서가 있다.
첫 번째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는다.
두 번째 만기 된 금액은 다시 재예치한다. 1700만 원 만기가 되었으면 이자 포함 2000만 원을 저축한다.
세 번째, 재예치 후 5만 원 이하의 잔돈만 현금으로 찾는다.
네 번째,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예금이 만기 되어 다시 재예치했다고 알린다.
파티는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에 조촐하게 했다. 현금으로 찾은 이자가 재원이었기에 파티는 거의 5만 원 이하였다. 치킨이나 피자, 아니면 자장면. 평소에도 가끔 먹는 메뉴지만 이자로 맛보는 음식의 맛은 다르다. 이렇게 15년간 파티를 안 하는 맛을 즐겼다. 그렇게 돈을 모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재원이 저축이 아니라 주식 투자 수익이라는 점만 다르다. 저축이 몸을 써서 번 돈이라면, 이 돈은 마음고생을 해서 번 돈이다. 특별한 수익이 생기거나 보너스를 받을 때 내가 돈을 대하는 자세는 늘 같다. 없는 셈 치고 살기. 하지만 이번에 남편을 보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계획을 세워서 남편에게 말해야겠다.
첫 번째, 주식을 매도한 수익금을 받는다.
두 번째, 수익금에서 한 푼도 떼지 않는다.
세 번째, 금리 높은 은행을 찾아서 천 단위로 맞추고 월이자 수령으로 세팅하여 예금한다.
네 번째, 그럼 파티는 뭘로 하지?
원래는 이자로 했었다. 이자로 먹는 고기 맛이 진짜다. 하지만 주식 매도 수익은 이자가 아니기에 건드리고 싶지 않다. 수익금은 남기지 않고 모두 은행에 넣을 것이다. 남편에게 고기는 이번에 판 주식에서 나온 배당금으로 먹자고 했다. 스테이크는 배당금 맛이 나고 고기에 투자 수익이 줄줄 흐르겠지?
가족들이 외식을 하기로 한 날, 나는 10만 원 내외로 파티를 마무리하기 위해 가성비 레스토랑에 가자고 남편에게 넛지를 넣었지만, 걸리지 않았다. 식당에서 음식을 종류별로 하나씩 주문하자는 나의 회유책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자기 얼굴만 한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배불리 먹었다. 이왕 지른 거 남편이 좋으면 그 걸로 됐다 싶어 나도 그냥 즐겼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T의 그림자. 그런데 남편 잊은 거 아니지? 우리에겐 아직 받지 못한 4천만 원이 있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