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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Aug 02. 2024

에어컨이 고장 났지만 감사합니다(2)

에어컨 없는 하루 전격 대피 작전

   아침부터 후텁지근했지만 괜찮다. 우리는 내일 에어컨이 온다. 다만 오늘 퇴근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계획은 늦게 퇴근해서 카페로 가는 거였다. 거기서 저녁 내내 온 가족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10시쯤 집에 와서 씻고 자면 된다. 나의 계획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은 더워도 집에 가자고 했다.

나 혼자면 뭐든지 하면 되는데 아이들의 생각이 먼저다 보니 일단 내 계획은 접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둘째는 바로 샤워하러 갔고, 첫째는 선풍기 앞에 앉았다.




  덥고 습한 집, 저녁을 먹던 남편이 말했다.

" 회사 사람들한테 에어컨이 고장 났다고 했더니 오늘은 찜질방에 자라던데 어때?"

'오호, 신박한걸.'

인터넷에 찜질방을 검색해 본다. 가까이에 24시 찜질방이 있다. 찜질방에 안 간 지가 어언 15년은 넘은 것 같다. 아이들은 처음이라 재미있을 테지... 가격은 많이 올랐다. 초등학생은 성인요금과 같다. 그럼 출발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잊고 있던 문제가 생각났다.

'아, 첫째가 중이염이지.'

  이틀 전 귀에 통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다음날 아침 바로 병원에 다녀온 아이는 중이염 판정을 받고 항생제를 먹고 있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 땀이 차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럼. 오늘은 호텔에 가서 잘까?"

찜질방을 기대하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호텔을 검색해 봤지만 금요일밤 4인가족이 갈 수 있는 호텔은 주변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럼 자기 전까지...

"마트에 가자."

그래서 온 가족이 마트에 갔다. 마침 상품권이 있어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남는 시간은 남편이 가지고 있던 스벅쿠폰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어른 치약과 아이들 칫솔을 사는데 쓸데없이 가격을 비교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을 아끼느라 시간을 낭비하던 오래된 습관이 툭 튀어나왔다. 역시 마트는 나에게 시간지옥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찜질방비보다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 생활비가 아닌 각자의 용돈으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하나씩 손에 들려주었다. 드디어 카페로 가나 했지만 마감까지는 30분밖에 남지 않아 쿠폰을 쓰며 앉아있기는 아까웠다. 마침 옆에 있는 푸드코트로 갔는데 거기도 마감이라 음식을 주문할 수 없었다. 푸드 코트에 앉아서 아이들은 장난감을 풀고 30분 놀다가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다시 샤워를 했다. 마트의 시원함도 차의 에어컨도 주차장에서 집의 거리만큼 유지되지 않았다.  샤워 순서를 기다리다 집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왕 땀난 거 좀 더 빼면 더 시원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에어컨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일단 실외기실이 있는 베란다에 걸어둔 이불과 빨래를 치웠다. 에어컨이 설치되는 동선에 있는 물건을 모두 정리했다. 리를 마치고 씻었다.


   ' 에어컨은 내일 온다. 이제 오늘밤만 버티면 된다.' 생각을 하며 누웠다. '어제처럼 습기라도 제거해 다오.' 하는 마음으로 에어컨을 가동해 보았지만, 결국 더워서 중간깨서 뒤척이다가 다시 늦게사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보통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 카페에 가거나 집에서 글을 쓰는데 이날은 한참 늦게 일어났다. 먼저 일어난 남편이 밥을 해두어서 더운 아침, 같이 식사를 했다.

   11시에 온다던 설치기사님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오셨다. 예상 시간보다 일찍 오셔서 사했다. 나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빵을 사 왔다. 하지만 설치하느라 장 시원할 때 음료를 드시지는 못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반쯤 녹았을 때 에어컨 설치가 끝이 났다. 설치 기사님과 잠깐 대회를 했다.

"시원하라고 에어컨을 설치하시지만 정작 시원하지 않으셔서 힘드시겠어요."

"이게 일인데요, 뭘. 에어컨 일은 일하는 기간이 짧아요. 더워도 한두 달 더 했으면 좋겠어요."

"목요일 밤에 주문했는데, 이렇게 이틀 만에 그것도 예정 시간보다 일찍 와주셔서 감사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사할 때 에어컨을 옮기고, 오래되면 바꿨는데, 요즘은 이 댁처럼 고장이 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굳이 교체하지 않네요. 그래서 예전보다 일이 줄었어요. 빵이랑 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설치비를 계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사님을 배웅했다.


   이 글을 쓸 때, 우리는 아무도 짜증 내지 않고 새 에어컨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모두 거실에 있었다. 이틀 동안 아이들이 옆에 오면 '더우니까 떨어져라'하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는지 모른다.

에어컨이 없어 단절되었던 가족 관계가 에어컨 덕분에 다시 돈독해졌다. 처음 에어컨 구매에 회의적이었던 남편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전을 설치했을 때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게 에어컨이래." 하며 거실에 드러누워 있다. 아이 웃는다.


   행복이 별 건가. 여름에 집이 시원한 것. 후덥지근한 여름을 가장 기분 좋게 나는 방법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다. 새로 온 에어컨도 우리 집에 적응 잘하며 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

전셋집이지만. 어쨌든, 잘 부탁해!


P.S. 에어컨 설치 후 생긴 단점. 아이들이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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