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엔 바나나 우유!
오늘은 2022년 5월 22일이다.
산다는 게 힘이 부칠 때면 여지없이 ‘신’ ‘절대자’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이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인가?’
‘원래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어야 한다고 신이 정해 놓은 건가?’
‘그렇다면 내 삶은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도대체 행복은 있기는 한 건가?’
‘왜 신은 내게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을 선물하시는 것일까?’
‘잠깐! 나는 계속 이렇게 힘들기만 했나?’
‘최근 2년 동안은 분명히 신은 나를 시험하기로 작정하셨나 보다’ 등등…
빡빡하게, 부지런히, 힘차게, 근면하게, 열심히, 꾸준히, 정성을 다하여 산다고 생각하는데도 숨이 턱밑까지 헉헉거릴 때까지 뛰어다녀도, 잠깐 주저앉아 땀 닦을 시간 없이 살아도, 어째서 아픈 몸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분명 나만 이런 것은 아닐터인데…
오늘 문득 ‘휴브리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신의 영역에까지 도전하려는 인간의 오만, 자만’이라는 그리스어!
혹시 내가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루지 못할 무엇을 위해 무언가 계속 도전하고, 정면으로 부딪히고, 맞서고, 싸우고 있는 것일까?
다다르지 못할 곳을 향해 움직이고, 나아가고, 전진하는 것일까?
그래서 신이 노여워하신 걸까?
처음엔 크레타 섬을 탈출하기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신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오만으로 변해버린 이카루스!
결국 신에 도전하는 자는 바닷속에 처박히는 처절함을 맛보게 되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신에 도전하고 있는 것일까?
신이 허락하지 않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신이 허락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도전하고 있는 것일까?
신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탐내고 있는 것일까?
아닌데…
나는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데…
나는 신에게 울며 바라고 있는데…
나는 신에게 간청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신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신에게 간구하고 있는 것인데…
제발 이 순간을 무사히 건너게 해 달라고!
제발 이 순간을 이겨내게 해 달라고!
제발 이 순간을 견디어 내게 해 달라고!
제발 이 고난을 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의 약속을 믿는 자는 운명론자이고,
내 삶은 내가 개척한다! 는 자는 환경론자이다.
나는 운명론자? 환경론자?
잘 모르겠다. 크게는 운명론자이고, 작게는 환경론자인가?
Think big, act small 인건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답 없는 신의 목소리를 막연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잘 될 것이다!’라는 희망을 갖고 또다시 하루를 살아내야 할 일이다.
희망 없이는 너무 힘드니까!
희망 없이는 너무 괴로우니까!
희망 없이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닿아있겠지!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참치잡이 어부들이 고기 그물을 올리는 몇 날 며칠의 고된 삶을 버틴 후에, 만선의 기쁨과 지는 석양, 선선한 바람! 대자연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에서 삶의 충만함을 느끼듯!
나도 어쩔 수 없이 고된 과정을 이겨낸 후에 찾아올 겸허한 충만함을 그리며 오늘도 애써 웃어야겠다.
오늘은 5월 22일이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바나나 우유가 있었다.
유통기한이 5월 16일까지이다. 6일이나 기한이 지난 바나나 우유를 한참 바라보았다.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게 뭐 그리 대수라고!
유통기한이 6일 지난 거면 당연히 버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몸이 가난을 기억한다고….
쉽사리 싱크대에 버릴 수 없었다.
‘냉장고에 있었으니 괜찮을 거야!’
‘그리고 유통기한이 6일 지난 거지, 사용기한은 그 보다 더 길거야.. 그러니,,’
‘작은형은 어렸을 때 10일 지난 우유도 잘 먹더라!’
그렇게 답을 정해놓고,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다행히 맛도, 향도 괜찮았다.
내가 기대한 바나나맛 우유 그대로였다.
상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놀라운 것은,
마실까 말까를 고민하던 그 5분여 동안 나는 나의 고민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신에 대한 분한 억울함, 애처로운 기도, 화난 투정 등은 1,500원짜리 바나나우유에 하릴없이 밀렸다. 존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삶이 그러한 것 같다. 휴브리스고 뭐고, 신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고 뭐고 간에, 날짜 지난 바나나 우유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너무 고민말자!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떠한가?
부자가 아니면 어떠한가?
누군가 나를 속이면 어떠한가?
시험에 떨어지면 또 어떠한가?
무엇 때문에, 혹은 누군가 때문에 힘들면 또 어떠한가?
날짜 지난 바나나 우유 하나 벌컥벌컥 마셔볼 일이다.
들칙한 달콤함이 혀를 지나, 목을 훑고, 대장, 소장을 지나 위에 안착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구석구석 확인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적어도 마시는 1분은 행복할 것이다.
우리에겐 그런 시간도 귀하다.
비록 23시간 59분은 슬플 예정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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