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담았다.

낯선 작가의 글에서 나의 감정을 발견했다.

by 이경화

긴 기다림 끝에 공동 출간한 책이 밀리의 서재에 입고되었다. 바로 다운로드를 하여 리뷰를 작성했다. 내가 다른 작가님들의 독자인 동시에 내 글을 공식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창작자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 전시 화면을 훑어보다 문득 내 감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에 끌려 내 서재에 저장했다. 알바를 마치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밀리의 서재가 떠올라 산책하면서 책이나 읽어볼까 하며 소장 중인 책을 둘러보았다. 어제의 그 책이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그래 바로 한번 읽어보자. 듣기 모드로 설정하여 걷던 중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내용과 표현들이 계속 들렸다. 이건 뭐지? 내가 컴퓨터에 쓴 일기가 유출이라도 된 건가? 첫 번째 챕터의 내용들 중 예전에 썼다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나의 개인적인 글들이 순간 이 책에 고스란히 활자로 찍혀 지난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었다. 작년에 출간된 책인데 소름 돋을 정도로 비슷해 감정을 그대로 옮겨 쓴 것만 같았다.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운 기분이 가실 줄 몰라 길 한 복판에서 우뚝 멈춰버렸다. 이미 예전에 써 둔 내용으로 책을 낸 사람과는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작가라고 할 수도 없는 내 글을 무슨 이유로 어떻게 도용할 수가 있었겠어? 혼란스러운 감정과는 별개로 머릿속에서는 콧방귀를 뀌는 내가 있었다.

계속 읽어 보고 생각하자. 세상엔 다른 듯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많을 테고, 감정을 다독이는 방법이 비슷한 이들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괜히 긴장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 글자 한 글자 문장과 표현 방식에 집중하며 해부하듯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오디오 듣기 모드는 집중을 위해 꺼버리고 진지하게 다시.

산책을 위한 가벼운 배경음악처럼 듣던 글이 진지하게 분석하듯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가끔 비슷한 감정의 결은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상황에 대한 표현도 감정을 전하는 깊이도 달랐다. 깔끔하고 잔잔한 문장들이 오히려 더욱 깊은 감정을 건드리고 있었다. 불쾌하고 찝찝하던 기분은 '나도 더 많이 읽고, 꾸준히 쓰다 보면 잔잔한 일기 같은 글로 독자의 감정을 다독일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하는 감탄으로 바뀌어 있었다.

개인 정보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빈틈을 찾아내 악용하는 사례도 꾸준히 발생한다. 그런 이유로 정보 유출 등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는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만연해져 간다.

한류 영상 표절이나 무단 상표 도용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타 기업의 상표를 무단으로 도용하는 일이 가능하다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예전엔 낯선 상황에 속수무책이었지만 법을 재정비하고 언론에도 크게 노출되며 지금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한 근절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도 모기업의 휴대폰 유심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기업이 무능하거나 부정한 금전적 거래가 원인일까? 원인이 무엇이든 완벽한 수비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법을 재정비하고, 통신 보호 기술을 개발하고, 지적 재산 보호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 및 교육을 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단들이 궁극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기업은 수시로 안전망을 확인하고 발전시키는 성실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사용자인 우리는 타인의 결실을 양심껏 이용하는 것 외에 어떤 대응책이 더 선순환하며 지속 가능한 방법일까?

사회는 우리가 수동적인 입장에만 머무를 수 없도록 변하고 있다. 지금은 누구나 소비자와 판매자의 입장을 넘나들 수 있다. 정보를 이용해 현금을 벌어들이는 시기를 넘어 정보가 사람 대신 일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아래 윗집에 아이가 있는지는 모르고 산다. 매일밤 11시 두통을 유발하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누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알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대면하며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나는 한밤중 비슷한 시간대에 발생하는 소음 공해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마침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 날 가장 처음 한 일은 인터넷에서 소음 공해 신고 전 필요한 증거 수집 방법들을 찾는 것이었다.

어떤 정보든 실시간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언제든 관심 있는 영상을 구독하고 ‘좋아요’를 누르면 제작자에게는 수익이 발생한다. 그 수익을 위해 짜깁기되어 무한 재생되는 영상의 제작자 중에는 제재를 받고도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같은 짓을 반복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법을 시험하며 영구 퇴출 대상이 되어버리면 회생은 불가능해진다.

법이 개인의 탐욕 앞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자신을 홍보하는 능력이 경쟁력인 시대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출간 자체에 대한 욕망, 자신의 이야기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욕망 등이 인터넷의 발전과 맞물려 결국 1인 출판의 시대를 열었다.

개인도 마음먹고 방법을 찾고, 배우면 스스로 출판사가 되어 저작권과 출판권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숱한 시행착오와 수고로운 시간을 견디며 탄생시킨 글이나 영상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저작권만으로 지켜질 수 있을까?

얼마 전 모 기업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기업이 아무리 신경 써 관리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순간 공포감이 밀려왔다. 만약 컴퓨터나 정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인재 중 누군가가 작정하고 해킹을 시도하거나 내 작품을 살짝 가공하여 먼저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 일어나면 해킹에도 정보에도 어두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소비자인 동시에 창작자인 우리들이 스스로 나와 타인을 분리하고 눈앞의 이익만 따른다면 법이 아무리 강하게 규제한다 해도 허점을 이용하려는 비틀린 욕망을 가진 이들의 꼼수를 막아낼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해 봐도 가장 강력하고 훌륭한 저작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평소에 윤리적인 문명인으로서 법적, 사회적 규제와 함께 서로의 노력에 대한 존중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즉, 눈앞의 이익보다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의식적 성숙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되어야 할 것은 공동체적 가치를 공감하는 분위기가 아닐까?

법적인 처벌과 별개로 지속적인 지적 재산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저작권의 개념과 범위, 활용 방법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소통의 시간을 자주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의 권리를 위해 타인의 의무를 요구하지 말고,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희생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배려는 사회적 소통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공동의 가치를 위한 합의가 빠진 배려는 일방적 양해를 요구하는 식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서로의 권리가 지켜지는 사회적 일체감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서로의 권리가 지켜질 때 자유롭고 다채로운 창작 문화가 유지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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