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하며 기다림을 배웠다.
침대에서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자고 있다가 해리의 냐-앙! 한 마디에 발까지 부르르 떨면서도 결코 일어나 도망가지 않는 노아의 겁먹은 모습이 너무 귀여워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5 고양이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목격해 본 적이 없었기에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히기도 했다. 멀리서도 해리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만 하면 쌩하니 내빼기부터 하는 행복이와 달리 노아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그대로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로 앞발만 바르르 떨기만 할 뿐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얼어있었다. 그저 잠이 덜 깬 걸까? 아니면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걸까? 야생의 배고픔이나 고생을 겪어본 적이 없는 녀석이니 적자생존의 경험이 없어 그저 두려움에 버티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러 측면에서 행복이와 노아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행복이의 경우 겨우 3개월 정도였을 때 이미 길고양이로서 배고픔과 강자에 대한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상대와 자신의 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능력과 대처하는 능력을 익히고 있었나 보다. 아무리 공격적이지 않다고 해도 집안에서 가장 큰 덩치와 힘을 가진 해리에게 감히 덤벼들 엄두는커녕 멀리서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도망가기에 바쁜 것을 보면.
반면 노아는 천방지축이다. 세상살이 이제 4년 차가 되었지만 비정한 길 위의 삶을 모르고, 사회성도 그다지 익히지 못한 탓인지 이미 자신의 영역을 가진 서열 높은 고양이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굳이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늘 어설프고 느긋하지만 열심히 놀고, 열심히 먹고, 잠이 오면 내 손에 쭙쭙이를 하거나 무릎을 차지하고서 잠든다. 최근에는 손가락을 빠는 습관을 없애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여 일부러 비협조적으로 녀석을 밀어내고 있다.
당황하여 울면서도 끝내 내 손가락을 제 침으로 흥건히 적시고서야 만족하던 노아도 요즘은 거절하는 집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신 자주 누리를 찾아가 침대형 스크래쳐에 함께 착 달라붙어 쌔근거리며 잠든다. 서로 잠들기 전까지 그루밍을 주고받으면서. 그 귀여운 모습은 동복형제였던 누리와 함께하던 시절과도 비슷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집사는 귀여움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대며 즐긴다.
노아의 느긋함과 둔함은 일반적인 고양이와는 다른 것 같다. 대개 고양이는 위협을 감지하면 숨기 바쁘고 피치 못 할 상황이 되어서야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한다고 알고 있다. 특히 길고양이들의 먹이 확보를 위한 영역 싸움은 처참할 지경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생후 며칠 만에 구조되어 고양이들의 습성이나 야생에서의 경험 없이 병원과 집이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게 된 노아는 그저 떨기만 할 뿐 꼼짝도 못 하고 굳어버린다. 어떤 대처도 생각하지 못하고 얼어있는 모습은 마치 어차피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포기해 버린 것처럼 보인다. 야생의 경우 잔혹한 상대를 만났다면 그대로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동복형제인 레오는 상대에게서 공격 의도가 느껴지는 그 순간 즉시 항복의 의지를 명백하게 드러낸 채 그저 납작하게 바닥에 배를 붙인 채로 상대가 물면 무는 대로 자신을 내어주면서 그 순간을 모면하는 태도를 보였었다. 터줏대감 격인 3마리의 고양이들은 살아온 세월도, 체격도 레오는 상대도 되지 않음이 분명했으니 그 나름의 대책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살짝 귀를 물리거나 콧김 한 번으로 우세를 확인한 선배 고양이들은 레오의 행동에 그 이상 건드리지 않고 가 버리는 것으로 상황은 곧 해제된다.
반면 안타깝게도 노아의 행동은 오히려 선배 고양이들에게 심히 거슬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던지 그저 떨면서 굳어있어 있음에도 오히려 살벌한 하악질과 함께 꼭 퍽 소리가 날 만큼 센 펀치를 날리고서야 상황이 끝난다.
고양이들의 행동에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 심하지 않다면 굳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 정말 애매모호한 차이로 인간은 산뜻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지켜보기만 하려니 답답하다. 아마 노아가 꼭 얻어맞고서야 일단락되는 것은 눈치 없음과 비례한 투지 없음도 한몫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추측일 뿐, 인간인 나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누리와 노아가 아직 어린 아기 고양이였을 때, 친해질 날을 기다리며 지켜보기만 했던 시기였다.
늘 1% 모자란 듯 약간 맹한 표정으로 형제를 쫓아다니거나 골격에 반비례하는 체력으로 잠깐의 놀이에도 누워서 뒹굴거리며 움직이지 않던 노아가 형제와 헤어진 후 누리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다가가 그루밍을 해주기도 하고, 장난감을 가져가 함께 놀기도 하며 지극히 챙겼다. 점차 누리도 이빨이 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젖먹이처럼 젖을 찾는 누리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고, 단호하게 밀어내며 가르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삼 노아의 성장이 대견하면서도 나오지 않는 젖에 집착하며 형아의 배에 파고드는 누리가 애처로웠다. 정작 집주인인 내게는 겁을 내며 도망 다니기만 하고 다가오지 않더니 노아에게는 껌딱지처럼 붙어있으려 애쓰던 어린 누리. 아마도 헤어지기 전 어미에게서 사람을 경계하도록 배우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에게는 나름 필요한 똑똑한 처세술이지만 집고양이에게는 약간의 애교가 더 잘 먹히는 것을 어미고양이는 미처 알 수 없는 영역이었을 테니 안전이 최고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르침임은 틀림없다.
다양한 고양이들을 거두고, 입양을 보내고, 함께 지내며 얻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집사가 선택한 누리와 친해지는 방법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은 믿음으로 보답받을 것을 알기에 조급하게 서두를 마음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아기 고양이가 낯선 집사에게 다가오는 시간 동안의 긴장 가득한 귀여운 호기심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새로 들어온 고양이를 대하는 내 모습도 변한 것이다. 일상에서도, 대인 관계에서도 여유로워졌음을 느낀다. 고양이들과 함께한 시간 덕분에 기다림의 가치, 즉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가 낯선 관계에서 긴장을 풀어주고, 신뢰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됨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고양이가 내 일상을 변화시킨다.
노아와 누리. 인연으로 엮인 형제는 함께라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