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서 마당으로, 고양이가 보여준 가족의 의미
10여 년 전 다가구 주택에 세 들어 살았던 시기였다. 이사 첫날 생전 처음 멀쩡히 깨어있는 상태로 환시를 보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 모를 전신통과 토사곽란을 하는 날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다시 이사하는 날까지.
수시로 응급실을 들락거리던 중 언제부턴가 집 주위로 고양이들이 모여든다 싶었다. 그리고 일부는 지붕을 통해 들락거리다 한 고양이가 터를 잡고 상주하는 듯했다.
작은 마당에 여러 개의 방들이 ㄷ자형으로 띄엄띄엄 나뉜 5채의 집 중에서 내가 사는 곳과 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한다던 아주머니 한 분-그녀도 집만 가져다 두었을 뿐 거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던 특이한 형태를 가진 다소 낯선 구조의 집이었다.
환시의 내용은 아직도 생생한데 화장실과 방의 경계쯤의 공간에 흐릿한 사람의 형상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가끔 보이는 것이었다.
여유라고는 전혀 없던 상황에 급하게 얻은 그 집에 얽힌 소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 전쟁을 지나던 그 시기 내내 일종의 처형장으로 사용되던 장소를 정리하고 주택들이 들어선 곳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행인 것은 가끔 보이는 환시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무시할 수 있는 정도였고, 육체의 통증은 병원 응급실에서 원인불명의 복통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수액 처치를 받고 귀가하는 단순반복되는 패턴이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출근에 지장이 없는 쉬는 날에만 아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선은 벌어야 생활이 가능하고 이사는 차후의 일이었으니까.
그런 시간들을 보내던 중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와 영역 다툼의 시기가 지나고 아기 고양이들의 삐약 소리가 섞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고양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거나 궁금증은 없었다. 그저 배나 곯지 말고, 해코지만 당하지 말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아픈 모습을 보는 것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 그 정도의 관심이 다였던 내가 달라진 것은 비쩍 마른 어미 고양이를 따라 밤이 되어야 지붕에서 돌아다니는 아기고양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묘하게 시선을 끌었던 때문이었다. 낮에는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기척이 없었는데 그 대비되는 활발한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오가는 많은 고양이들 중에서도 3마리의 아깽이들과 어미 한 마리로 이루어진 고양이 가족들은 주 거주지가 우리 집 지붕인 듯싶었는데 어미 고양이와 마주쳤을 때 당연히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미가 오히려 나를 빤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마른 몸이 안타까워 순간 뭔가 줄 만한 것을 떠 올렸는데 회사에서 받은 멸치 한 상자가 떠 올랐다. 요리를 하는 것도, 멸치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던지라 '그거 라도 좀 주면 받아먹을까?' 싶어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 멸치를 한 주먹 들고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멸치의 소금기가 고양이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아예 고려할 점이 아니었다. 그래서 냅다 마당에 멸치들을 흩뿌렸더니 잠시 주저하던 어미가 폴짝 뛰어내려와 조심스러운 탐색을 거친 후 바로 먹기 시작했다. 반갑고 기뻤다. '잘 먹는구나. 다행이다.' 속으로 좋아하면서 잘 먹으면 더 줄게 하고 말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인간의 목소리에 긴장한 듯 잠시 쳐다보던 녀석이 훌쩍 다시 자리를 피해버리고 말았다. 한 주먹의 멸치만 띄엄띄엄 바닥에 남아있었다. 내 목소리에 놀란 어미 고양이의 허기가 채워지지 못한 채 끝나버리게 만든 것이 아쉽고 미안했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내가 비켜줄게. 편하게 먹고 가.'라고.
그날부터 나의 관심사가 된 고양이 가족은 가끔은 낮에도 지붕 위와 다른 빈 집 앞에서 서로 장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즈음 멸치를 그냥 주기보다 한번 데쳐서 수분을 날리고 주는 것이 고양이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시간이 될 때마다 멸치를 데쳐서 말려두기 시작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음식은 맛만큼이나 건강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으니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 흐뭇해하면서.
한 달여가 흐른 후부터 그 고양이 가족은 나와의 거리도 상당히 가까워져서 멸치를 마당에 던져주고도 한 공간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멸치 시식회를 보면서 잊히지 않는 모습들이 있었다.
결국 그런 인상적인 기억들이 고양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싹트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날도 데쳐서 말린 멸치를 마당에 뿌려주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도에 맞춰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추가로 나눠주고 있었다. 거의 매일 챙겨 주었으니 집 고양이만큼은 아니더라도 크게 배곯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깽이들의 성장기 먹성은 나의 예상을 넘어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멸치만으로는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줄 수 없을 것 같아 소포장된 고양이 사료를 함께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미는 아깽이들과 함께 와서도 멀찍이 뒤로 물러서 있을 뿐 먹으려 하지 않았고, 그런 어미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깽이들만 우르르 달려들어 열심히 먹어치웠다. 처음보다는 덜했으나 여전히 여윈 모습의 어미. 그런 녀석을 챙겨주고 싶었으나 나의 던지기 실력은 정확하지 않았고, 설령 어미 앞에 떨어져도 그 먹이는 지켜보던 아깽이의 배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어미는 아깽이들이 먹는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해 조금씩 서로 장난을 치기 시작할 즈음에야 거의 몇 개 남지 않은 사료와 멸치로 허기를 채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시절 가끔의 환시나 응급실행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출입문 앞에 바퀴벌레나 쥐가 놓여 있던 상황이었다. 한참 후 해리를 집에 들이고 고양이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 상황들이 어미 고양이의 사료에 대한 답례였을 것을 생각하니 흐뭇한 기억이 되었지만 꽤 곤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어느 평범한 하루였다. 그날도 멸치를 손질한 후 데치고 말리는 시간을 거쳐 잘 건조된 멸치와 아깽이들과 어미를 위한 사료를 섞어 마당으로 나가니 그들이 멀찍이서 마당 한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유독 배고파하던 아깽이들은 더 맹렬하게 먹이에 달려들었다. 평소보다 이른 사료 품절 사태에 당황했는지 어미도 몇 점 남지 않은 멸치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기에 속으로 어미가 남은 것들이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사료라도 더 가져와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미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멸치를 망설임 없이 꺼내어 먹는 아기 고양이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말았다. 무려 서너 번을 내리 가져가는 새끼와 양보하는 어미사이의 신뢰와 기다림은 당연한 듯했고, 모두가 편안했다. 사람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평화로웠다. 망설임 없이 입 속의 먹이를 가로채가는 아기에게 어미는 단 한 번도 제지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응해주었다. 물러서지도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입 속을 빠져나가는 멸치를 내어주고 물끄러미 새끼의 야무진 먹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이 한 장면이 강렬하고 낯선 충격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한 장면이 줄곧 개와 함께 살아가던 내게 고양이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계기가 되어 결국 집사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스스로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고 살지만 고양이와 함께 하면서 교감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돌봄이라는 만족감과 뿌듯함을 알게 되면서 삶이 즐거워졌고, 행복한 인생을 목표로 가지며 마음이 여유로워졌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어미의 입에서 거리낌 없이 멸치를 빼먹던 아기 고양이와 그런 새끼를 무던하게 바라보던 어미 고양이의 모습이 각인처럼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 나의 성장에서는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시절 나는 우산이 없었다.
우산 없이 걷던 나는 점점 비를 피하기보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 익숙함은 때로는 자립이었고, 때로는 씁쓸한 허탈과 허무함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지붕 위에서 기척도 내지 않고 숨어 지내다 성장한 아기들을 더는 가두어 둘 수 없어지고서야 외부로 나오게 된 아기 고양이 가족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에게는 그들의 망설임과 거리감이 낯설지 않았다.
똑같이 주저하고 조심스럽게 마당에서 비켜선 나는 한참의 시간이 또 흐른 후에야 그들에게 멸치와 사료를 내어주었다.
생각해 보니 그 건넴과 돌봄은 오래전 나에게 건네졌으면 했던 따뜻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고양이 5남매 이야기를 즐기고 읽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