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독립을 선택한 누리
세 마리 아기 고양이들 중 둘은 3일 전 쇳소리로 울던 성묘의 울음소리와 함께 밤새 떠난 듯한데 가장 자주 마주치던 이 녀석은 오늘 비 내리는 날 옥상에 혼자 남겨져 버렸다. 형제들이 떠난 다음 날까지는 분명 성묘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이후로 이틀 동안 아기 고양이 혼자 밤새 울부짖을 뿐 끝내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괜한 오지랖으로 사료를 챙겨준 것이 탈이었을까?
누군가의 삶에 갑작스레 끼어든 것이 잘못이었나. 마음이 불편하다. 홀로 남겨져 밤새 울다 목소리까지 잠긴 아기 고양이의 눈이 이틀 새 지나치게 깊어져 슬퍼 보인다. 어제는 변을 못 보는 녀석이 힘들어 보여 끼어들지 말자는 다짐은 잊어버리고 기어이 화장실을 만들어 옆에 두고 내려왔다. 지난 이틀 동안 사료와 간을 빼기 위해 물에 불린 멸치를 실컷 잘 먹었음에도 소변만 내리 볼뿐 낑낑거리기만 하더니 3일째 새벽녘이 지나서야 겨우 가느다란 변을 묻히듯 소량 보았을 뿐 변다운 변은 보지 못한 채로 낮 동안 내내 너무 조용하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전날 안면을 튼 우리 집 첫째 해리를 미끼로 꼬여내니 제 어미라도 본 듯 무작정 나오는 사이에 외형을 자세히 살폈다. 기본적인 것들을 관찰한 결과 기가 죽은 듯한 표정 외에는 아직 건강은 괜찮아 보였다. 추측하건대 자정이 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와 어미 고양이를 소리로나마 만난 것을 위안 삼아 깊은 잠이 들었을 뿐 해리를 보려고 나온 이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큰 고양의 곁으로 오고 싶어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음걸이와 배의 모양으로 보면 이상은 없어 보인다. 아직은 안도할 수 있을 만큼의 우울감 정도가 아닐까.
녀석은 사료와 물, 화장실을 관리해 주고 더 자주, 많이 본 사이임에도 인간인 나에게는 무기력하고 눌린 울음소리만 들려줄 뿐 마주치자 바로 깊은 구석으로 들어가 모습도 보이지 않더니 전날 잠깐 봤던 불친절한 낯선 고양이 소리에는 바로 쪼르르 나왔다. 해리를 보자 갑자기 크게 소리까지 내며 남아있던 사료에 새로 삶은 멸치를 섞어둔 그릇에 코를 박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나 열심히 잘 먹고 건강하니까 나도 같이 데려가요. 엄마 " 하는 어필 같아 마음이 짠해졌다.
처음 발견했을 때 이 녀석은 분명 다른 한 마리보다 더 잘 돌아다니고, 다른 형제와 잘 어울리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왜 혼자 남겨졌을까?
이소 중에 어미 고양이들은 새끼들을 물어서 이동한다는데 사료와 물이 제공되는 바람에 이곳을 고집하다 어미에게 강제 독립을 당해버린 것일까? 아니면 잠깐 봤던 다른 두 녀석보다 비교적 더 약했던 것일까?
혹시 내 섣부른 오지랖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 어미가 발길을 끊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나의 행동이 어미에게는 약하고 고집 센 자식에게 좋은 영역이 되어주리라 착각하게 한 것일까? 종(種)이 다르니 앞으로도 이유는 알 수 없을 일이다.
비가 그치고도 2~3일 내로 어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녀석은 어떻게 될까?
혈연에게 철저히 배척당하고, 끝내 외면당한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죄책감이 쌓이는 중인데 만약 이 아기 고양이가 정말 버림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움이 과하면 오히려 관계를 어긋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잊고, 경솔했던 내 행동이 이런 인과( 因果)를 만들어버린 듯해 이 어리고 여린 아기 고양이를 보면 죄책감에 후회스럽기만 하다.
만지지만 않으면 될 거라는 단순함에 어미의 수고를 가로채버렸으면서 아기 고양이들을 보살펴 주고 어미의 고생을 덜어주는 선행이라고 마음대로 착각해 버렸다. 어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더 기다려볼 것을.
어미가 모습을 감춘 지 3일째.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 나도 아기 고양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음 주부터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일기 예보를 보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식구를 더 늘릴 수는 없었기에 어미가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스스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지, 알아서 자립하도록 사료와 물을 줄여나가며 계단 아래 바깥으로 유인해 봐야 할지 방법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본격적인 장마를 앞둔 휴무에 눅눅해지기 전 집 안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온 집안의 창문과 출입문까지 문이란 문은 다 열어두고 창틈과 문틈 구석구석의 먼지와 고양이 털들을 청소기와 이쑤시개까지 동원하여 뒤집어가며 정신없이 바쁘게 닦아내던 중에 고양이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진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며 조용해진 집안 공기. 집사를 쫓아다니며 빗자루에 덤비기도 하고, 쓰레받기에 모인 털 뭉치에 조심스럽게 다가와 냄새를 맡다가 들키면 조금 후퇴하는 식으로 청소를 방해하던 행복이와 노아가 조심스럽게 경계하듯 잔뜩 등을 낮추고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조용히 뒤를 따라가 보니 이미 현관 안으로 들어와 해리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사료 등을 챙겨주면서도 괜한 짓을 한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옥상에 혼자 남은 아기 고양이였다.
덩치 큰 시커먼 해리를 경계하지 않는 아기 고양이도 그렇지만 몇 번이나 봤다고 하악질 보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눈길을 돌리던 해리의 반응도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반응도 예상하지 못하고 옥상에서 둘을 함께 두고 지켜보며 익숙해지게 만든 집사의 불찰이었다.
행복이처럼 애초에 입양한다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는데 설마 해리 외에도 낯선 고양이들의 냄새를 맡고 있었을 텐데 얼마나 겁이 없는 행동인지 아마 몰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채리가 난리를 치고 추격전이 벌어지기 전에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일단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열려있는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면 아기 고양이가 제 발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저 옆으로 돌아 다시 들어가는 녀석과 몇 번의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잡아서 내보내려 손을 뻗었다. 계속 음식과 물 등 생필품을 통해 익숙해진 관계였지만 우리는 서로 한 번도 가까이 있어 본 적도 없었고, 늘 서로가 거리를 두고 있었으니 당연히 경계심에 도망갈 것을 예상했지만 작정하고 들어온 듯 대범한 아기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닿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뻗은 손을 피하지 않아 오히려 당황하며 주춤한 건 인간인 나였다.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떠나 어미와 형제들과 조금 더 함께하며 사냥법과 그들의 사회생활을 배우며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다 때가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독립하게 되길 바라며,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는데. 바람과 달리 어미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녀석은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인간과 꿋꿋한 고양이는 현관과 거실의 낮은 턱을 사이에 두고 한참 대치 상태였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해리가 방으로 들어가고, 거의 동시에 채리가 작은 몸짓으로 해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자리를 바꾸는 모습에 행복이 외에 낯선 고양이들을 구박하던 채리의 공격성이 떠올랐다. 허락받지 못한 아기 고양이가 다치기 전에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재빠르게 손을 뻗었다. 일단 옥상으로 피신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기 고양이의 움직임이 달랐다. 내가 미처 손을 다 내밀기도 전에 마치 바람처럼 거실로 뛰어들어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순식간의 일에 움직이는 건 오로지 한 명의 인간, 집사뿐이었다. 열린 문을 통과하며 모아둔 먼지를 사방에 흩날리면서 이미 숨어버린 침입자와 집사 외에 움직이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깨닫지 못하고, 차분해지려 애쓰며 집을 뒤지는 나와 달리 고양이들은 그저 조용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쓰레받기에도 풀어진 털 뭉치들에도 관심을 주지 않고 눈으로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에 혼자 긴장했다가 집 안을 한 바퀴 돌고서야 이상함을 인지했다. 왜 아무도 하악질을 하지 않지? 채리는 어째서 여태 조용하지? 자기들도 놀라서? 그 상황은 지금까지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온 집을 헤집듯 뒤져서 겨우 찾아낸 아기 고양이는 몇 번을 내보내고, 쫓아도 계속 다시 들어왔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해가 질 때까지 현관문을 열어두고 있었지만 옷장 위 채리의 은신처에 틀어박힌 후에는 털끝 하나, 숨소리까지 참고 있는지 아예 들어온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긴장하지 않는 집 고양이 넷과 자신도 길 생활을 접겠다고 작정한 듯 낯선 인간의 집에 스스로 뛰어든 아기 고양이 하나. 그리고 본의 아니게 고민하는 인간 하나.
5마리 고양이와 한 명 인간의 대치 상태는 현관문을 닫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일시적인 돌봄이었던 아기 고양이 밥 챙기기가 무단 침입을 허용하는 근거가 되어버린 듯 작은 고양이는 당당했다. 어처구니없도록 해맑고, 대놓고 떳떳했다.
마치 “기다렸지? 큰맘 먹고 왔어. 같이 살아줄게”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제까지 다시 오지 않는 어미를 부르며 창문틀에 올라가 혼자 신파 찍는 것도 다 봤는데.
뻔뻔한 녀석이지만 가족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뻔뻔한 성격이 길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높여줄 거라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미 들어와 어딘가에 쭈그리고 있을 대범한 척하는 작고 약한 고양이는 내버려 두기로 했다. 누나들과 노아가 받아들인다면 다수결에서도 하나뿐인 인간에게 선택지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으니 그냥 놔두자. 어차피 이곳에서 고생한대도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까지는 없는 실내 생활 아닌가.
스스로 선택한 길 알아서 적응하겠지.
이 고양이에 대해서는 대충 무책임해지기로 했다. 찾아내려고 들쑤셔 봐야 혼란스러움에 스트레스를 더 얹는 일일 테고, 벌써 안면은 다 튼 상대끼리 격리와 합사의 과정을 거치기에는 새삼스럽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누리는 모두에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나는 알아서 적응하되 누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누리며 살아보라고 ‘누리’라고 이름 지었다.
신기하게도 예민한 채리도, 집사 바라기 행복이도 물리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노아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그루밍을 해주며 챙겼다. 누리를 최초 발견한 해리는 애초에 무단으로 뛰어든 누리를 보고도 아무 반응하지 않은 만큼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모두에게 저항 없이 받아들여진 누리는 나름의 적응력으로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누리의 사회성은 어미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다른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끝까지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사실로 볼 때 적합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타고난 대범함과 사교적인 성격이 지금의 평화로운 집 고양이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것일까?
어미를 그리며 울던 누리의 선택은 결국 우리 집이었다.
나의 오지랖으로 누리가 나를 받아들였고, 해리와의 만남이 더욱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받아들이게 한 것일까?
어떤 이유가 누리를 집고양이로 살아가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행동이 누리에게 위협이 아닌 안전함으로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나 또한 녀석의 집사가 된 것을 오래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적어도 나의 호의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누리의 태도와 행동에서 드러나는 매일을 지켜보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누리의 변비가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음수량을 늘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누리의 일상을 지키는 집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