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어서서 갈 수 있어. 이전에도 혼자 잘 걸어 다녔던 몸이야.
그러니 제발 나 좀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 있게 해 줘요! 제발!!"
간호사실 바로 옆 처치실에 침대채로 나와 집중 관찰 중이던 환자분의 목소리였다. 처치실에서 화장실까지 거리는 고작 해봐야 3m 정도. 환자는 자신의 의식이 또렷하니 화장실을 갈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고유량 산소기구와 정맥주사 라인들, 소변줄, 모니터링 선들이 부착되어 있던 자신의 몸을 생각지 않고 라인들을 손으로 뜯으려고 하며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폐혈관에 물이 차면서 가만히 있어도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환자는 저유량 산소기구로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담당간호사였던 나는 간호사실에서 먼 다인실에서 돌보기 힘들다고 판단하였고 가까운 처치실로 환자를 급히 이송했다. 고유량 산소기구로 높은 농도의 산소를 공급하고 심전도 모니터링을 하며 준중환자실이 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좀처럼 병실이 생기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고 그 와중에 환자는 꼼짝없이 처치실에 누워있어야 했다.
"환자분 걸어 다니게 해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에요. 몸에 부착된 기구도 많을뿐더러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잖아요. 혹시나 이렇게 억지로 일어서다가 넘어지면 더 큰일이라고요.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사실 이 환자는 완치가 어려운 만성 호흡기 질환을 가지고 있어 산소포화도가 정상 성인 기준보다 낮게 유지된 채로 몇 십 년을 생활해 왔다. 입원 전엔 통원치료를 하며 오랫동안 자신의 병에 대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기에 자신의 숨찬 증상은 더 이상 환자에게 놀랄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환자는 자신의 병이 나을 거라는 희망보다 여느 때처럼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며 그렇게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으로 이 녀석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데리고 가야 할 녀석이라는 걸, 아직 이 녀석에게 자신이 압도되지 않았다는 걸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환자에게 걸어 다니지 못하게 한다는 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냥 나 좀 자유롭게 내버려두어요 제발!!
이럴 바에 그냥 죽는 게 낫지!"
그렇게 자신의 몸을 흔들어대며 큰소리를 내자 결국 스테이션에 앉아있던 다른 간호사들도 달려와 환자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렇게 자신에게 남아있는 온 힘을 다 써가며 목소리를 내던 환자의 절박한 두 눈을 보는 그 찰나에 난 이 환자의 안전을 위해 삶에 대한 의지를 뒤로할 것이냐, 환자의 의지를 위해 안전을 뒤로할 것이냐에 대한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3m를 걸어가는 것이 무슨 삶의 의지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환자에겐 자신의 두 발로 걸어 다니던 일상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병이 결국 자신의 의지를 꺾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물론 이 순간 간호사로서 해야 할 답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난 이 갈림길을 머릿속으로 하는 와중에도 답을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 간호사의 딜레마라고 하면 그 찰나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