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시간이 지나도 진심으로 남는다.

대학병원 3년 차 간호사로 일할 때 만난 한 젊은 암환자 이야기.

by 윤모닝








한 대학병원에서 3년 차로 일할 때에 있었던 일이다.


젊은 30대 간담도암환자.

나와 나이가 얼추 비슷한 세대라 환자의 얼굴을 볼 때마다

다른 어르신들과는 다르게 묘하게 더 안쓰러움이 더해졌다.

암이 간, 대장, 유방, 위, 뇌까지 전이가 되어 통증이 심해질 대로 심해지고

오심 증상이 마저 더해져 제대로 먹지 못하여 안 그래도 작은 체구가

더 왜소해 보일 정도로 많이 작아져있는 상태였다.



당시 주치의도 써볼 수 있는 진통제를 최대치로 쓰고 있었고

안 그래도 소화기계 암 전이 때문에 오심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는데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을 완화시키면서 어쩔 수 없이 부작용으로

오심이 더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심을 완화시켜 주는 항구토제를 각종 단계별 주사뿐만 아니라 패치를 넘어

진정제까지 투여하고 있을 정도로 의료진은 써볼 수 있는 약들을 다 써보고 있었다.


몇 달간 그 환자의 담당간호사로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온갖 약을 투여해도 환자 상태를 보러 라운딩을 가면

침상에 앉아 연신 토하고 있는 모습의 환자를 볼 때마다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은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는 데이로 출근해서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첫 라운딩을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환자는 내가 오기 전 할 수 있는 구역질을 다 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축 늘어진 채

창밖을 향해 침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의 앙상한 뒷모습을 보며 그전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던 나는 그저

'괜찮으세요?'라는 말 보다 등을 쓰다듬어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그녀를 보러 갈 때면 참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인상 쓰는 얼굴을 환하게 웃게 해주고 싶은데..

환하게는 아니더라도 편안하게라도 해주고 싶은데..


30대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툭 치면 쓰러질 거 같은,

가녀리고 앙상한 그녀의 몸이 받아들인 건 커다란 영양제 수액뿐.


그녀가 원할 때마다 항구토제와 진통제를 투여하고,

봉지로 입을 틀어막고 구역질을 할 때마다

등을 토닥여주며 쓸어내려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그저 그렇게 손으로 그녀의 등을 따뜻하게 데워주며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그녀가 영양제 하나에 의지해

보호자인 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 앞 복도를 걸어 나올 때면,

담당간호사인 내가 뭐 하나라도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괜히 마음이 미어지고 미안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음을 알고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한 후,

통증과 오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진정제 수액을 달기로 결정했다.

24시간 동안 진정제가 섞인 수액을 천천히 투여하며 암 덩어리로 인한

통증과 메스꺼움을 덜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처방을 본 순간 나는, 앞으로의 일이 그려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 약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알게 해 주는 결정적인 선택임을 직감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진정제 수액을 조제하여 환자 앞에 가지고 갔다.

이 약을 달면 환자는 편안해지겠지만 깨어있는 상태보다

졸리는 순간들이 더 많아질 것을 알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축 늘어진 채로 침상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약을 투여하기 전,

이 수액이 어떤 약인지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폴대에 수액을 걸고 수액 라벨에 적힌 환자의 정보와

그녀의 팔에 감긴 환자 팔찌를 확인한 후, 주사를 연결하려고 하는데..

가냘픈 목소리로 내뱉는 그녀의 한마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그녀는 생기 없었던 얼굴에 힘겹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것이 그녀가 깨어서 할 수 있었던 마지막 한마디임을 알았을까?

그동안 뭐라도 더 해주고 싶지만 못해줘서 미안했던 내 진심이

그녀에게 전해졌을까?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아니에요. 제가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오히려 많이 못해줘서 미안했어요"라며 말했다.

옆에서 언니를 간병하던 여동생은 그녀 대신 부끄러워하기라도 하듯이

연신 웃으며 그녀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나는 그 수액을 투여한 이후로 그녀와 더이상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진정제로 인해 잠으로 취해있는 시간들 동안

그녀 몸에 자리잡고 있던 암덩어리는 무섭게도 빨리 진행되어 간성혼수를 일으켰고,

뇌병변은 더욱 심해져 의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깨어있는 동안 뼈만 남아있을 정도로 앙상히 메말랐던 그녀의 몸은

간기능 악화로 코끼리 팔, 다리처럼 부어있었고,

뇌까지 부종으로 악화되는 바람에 눈도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있다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여동생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You've got a friend with me"

"You've got a friend with me"..


그녀의 침상에서 들리는 토이스토리의 ost.

노래의 가사처럼 나도 그녀의 친구가 되어줬을까?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의식이 있을 때, 말조차 하기 힘겨운 상태로 내뱉은 그녀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4년이 지난 지금도 환자들을 돌보며 울고 웃고,

때론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내 가슴속에 남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고 진하게 우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