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의 H 병원
병동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간호사였던 나는
4년 정도 일할 때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젊은 나이에 커리어로 더욱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의료환경하면 선진국인 미국을 떠올리며
아메리칸드림 '미국간호사'의 꿈을 품게 되고
병동 3교대 근무를 하면서 미국간호사 시험 NCLEX를 준비했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바람에
꿈에 부풀어 있던 저의 아메리칸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미국으로 못 갈 거라면 차라리 중환자실로 지원을 해서
임상 실력을 더 키워보자고 생각했고
병원 내에서 부서를 옮기는 트렌스퍼를 신청했지만
병원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패기 넘치던 나로서는
개인적인 진로를 고려하지 않는 병원이 답답하게만 느껴졌고
같은 병동에 오래 있을 바엔
차라리 다른 병원 중환자실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겠다고 결정하면서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그렇게 임상 만 3년의 이력서를 가지고
한 작은 병원에 중환자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존에 있었던 병원에 비하면 시스템뿐 아니라 시설면에서도
비교가 많이 됐었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의 커리어적인 면을 생각했을 때
앞으로의 임상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스스로에겐 꽤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지만..^^
처음 접한 Ventilation과
병동에서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케이스의 환자들,
고위험 약물들을 접하며
중환자실에 대해 점점 익숙해져 갈 때쯤,
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총무부 직원의 실수로 첫 달 월급이 원래 월급보다 더 들어갔다며
다음 달 월급 100만 원이 난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전 병원에 비해 복지가 좋지 못했던 터라
직원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자비한 3교대 턴과
보장되지 않은 오프수를 가지고 한 달에 8일 쉬면서 힘들게 일했는데
나에게 사전설명 없이 임의로 100만 원을 덜 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민도 없이 또 한 번 시원하게 병원을 나왔다.
지금은 '시원하게'라고 말하지만 3년간 근무하며 단 한 번도
월급에 실수가 없었던 좋은 병원에서 일하다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너무 충격적이고 화가 났었다.
병원에 따져도 단 1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전화로 엄청 화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병원을 나오고 또다시 힘들게 병원에 들어가
새로운 시스템을 적응하며 일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병원도 월급 가지고 장난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주 희미했지만
미국에서 입국을 일부 허용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래서 저는 다시 틈틈이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
오랫동안 적응하며 일해야 하는 병원 대신
잠시 일할 알바를 찾던 중
쿠팡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망설이지 않고 쿠팡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이 당시 쿠팡에서 여자가 쿠팡친구로
배송을 직접 뛴다는 건 부산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살던 집 근처에 가장 가까운 한 물류센터에 지원했는데
(여기선 '캠프'라고 합니다)
여자가 지원했다는 얘기에 다들 분위기가 술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슨 깡이었는지
그런 주변의 걱정을 안고 '다 이겨내 주겠어. 다 덤벼' 라며
난생처음 몰아보는 탑차를 타고
운전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해 버렸다.
.
조수석에서 채점하시는 분은
내가 탑차를 처음 타본다고 해서 걱정이 되셨는지
처음엔 큰길을 먼저 가보게 하셨다.
아마도 운전테스트를 남자들에 비해
며칠간 더 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다.
큰길들과 방지턱이 많은 길들을 의외로 잘 통과해 내고
탑차를 타고 1시간도 안되어
한 손으로 핸들을 조작하고 있는 나를 보며
동승하시던 감독님은 그다음부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시험해보려고 하셨는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라고 하시며 야심 찬 얼굴로
재송동과 구서동으로 코스를 돌리신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저 감독님이 가자고 하시는 데로
열심히 탑차를 몰고 따라갔다.
나는 승차감이 승용차 같은 나의 붕붕이,
니로 Niro 만 타고 다녔기에
탑차의 양 옆, 위아래 구조와
운전석 차체의 높이도 새로 익히면서 운전해야 했는데,
쉬운 코스가 아닌 난도가 있는 코스로 자꾸 데리고 가시는 게 아닌가?
이런 코스는 아무에게나 안 시킨다며
연신 새로운 코스로 자꾸 돌리시는 감독님.
사실 침착한 척했지만
바로 아래의 승용차들과 가게의 구조물, 주택 난간 등 부딪힐까 봐
코너 하나를 돌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이번엔 통과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셨던
운전테스트 감독님은 생각보다 잘 통과하니까 더 의욕이 앞서
한번 더 난이도를 높여
'ㄹ' 자 코스로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재송동에 이어 구서동에서도
이보다 더 좁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과
가게 어닝, 아래 시장가판대, 미용실 수건걸이 등
위아래 장애물들이 많은 시장길,
조금이라도 스치면 남의 차 사이드미러를 깨 먹을 근접거리로
차들이 굽이굽이 주차되어 있던 좁은 언덕길,
방심하면 바퀴 빠지는 양 옆 고랑이 파져 있는
외진 길들을 데리고 가셨다..
다행히 모든 단계의 운전테스트를 끝내고
다소 놀란 표정의 운전테스트 감독님과
다른 직원들의 칭찬받은 나는
'이 정도면 합격이겠지' 라며
마음 놓고 입사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지원한 캠프에서는 여자 쿠친을 받아주기 힘들었는지
저를 다른 지역 기장 캠프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