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보다 더 센 주문을 걸어줄게.

다 잘 될 거라는 말. 내가 다시 하게 될 줄 몰랐다.

by 윤모닝







다 잘될 거라는 말.


난 절대 믿지 않았다.

나쁜 일만, 그렇다고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잘 될 거라는 말은 무책임한 위로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잘 안될 수도 있는데 내가 잘될 거라고 말했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난감하고 상대에게 함부로 희망고문하고 싶지 않아서,

마치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 같아서,

결론적으로 내가 웃고는 있지만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내 입으로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상대의 마음만 받자는 생각에

‘잘 될..’ 까지만 듣고 응원해 줘서 고맙다며 귀를 닫아버렸다.



“간호사님,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저 앞으로 살 수 있을까요?”


이는 내가 간호사로서 환자를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환자의 두 눈망울 속에서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나는 결코 잘 될 거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들어온 문으로 나갈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환자가 희망의 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나를 힘없이 쳐다보며 가뭄에 오아시스를 찾듯 내 입술을 바라보던 눈빛 앞에서도 죄송하지만 중립을 유지했다.


간호사이기에 환자의 예후가 짐작가지만

의료진의 옷을 입고 내뱉는 말의 무게를 알기에 더더욱 조심했다.

나 또한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힘에 부쳤기에 더 그런 말을 해줄 수가 없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간호사로서,

환자의 치료자이고 그를 지지해 주는 옹호자로서

어떤 결과가 있든지 함께하겠다는 말로 대신하며 진심을 다해 나의 온기로 얼음장 같은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환자분, 그건 제가 어떻게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부분이에요.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할게요. 어떤 상황이 되어도 제가 환자분 옆에 있을 거예요. 하루 24시간을 견디기가 힘들다면 그중 제가 환자분을 맡은 8시간 동안이라도 저에게 기대셔도 돼요. 정말 미안해요.. 이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러던 내가 출산 예정일을 하루 남기고

아침부터 유도분만하러 병원에 들어간 프리셉터에게

걱정 한가득 되는 마음으로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다 잘될 거예요! 응원하고 있을게요! 화이팅!!”


나도, 우리 프셉도 간호사다.

누구보다 자신의 몸 상태와 치료 방향에 대해 똑똑하고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최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이 우리 앞에 놓일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사실 내가 엄청난 행운을 만난 것도 아니고

벼락을 맞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난 그 순간

현실적 가능성 즉,


된다 안 된다를 넘어

내 온 마음을 다해 잘 되길 바라주는 마음.


어떤 결과가 있어도 그 상황 그대로의 너와 함께 서있을 거고

네가 하는 걱정 내가 다 할 테니

넌 마음 푹 놓아도 돼.


다 잘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