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내에 있던 집이 조금 떨어진 시골로 이사를 했다. 할머니 댁을 수리한 주택이다. 어릴 적 이 집의 마당과 논밭 사이를 쏘다니며 자랐다. 근처에는 온통 논 뿐이던 이 동네에도 지척에 아파트가 생기고, 도로가 넓어지고, 못 보던 새 집이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시골인 풍경에 마음이 놓인다. 80일 넘게 안 하던 생리마저 집에 오자마자 시작됐으니 마음 놓이는 곳에 몸도 덩달아 놓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집에 오면 몸은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라는데 부지런히 따야지! 엄마는 간다!”
매일을 유월 한 철처럼 사는 인자씨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반찬을 잔뜩 만들어두고 여덟 시에 농장에 갈 채비를 마쳤다. 그녀는 평일에 하는 일이 따로 있고 농사도 짓는 것이기에 나만 피곤하다는 핑계도 어려워서 버티고 버티다 눈곱도 안 떼고 뒤늦게 농장에 따라 나갔다. 농장 옆에는 못 보던 옥수수가 자라고, 구석구석 콩과 호박이 심겨있었다. 다 인자씨의 지휘 아래 심은 것들이었다. 옥수수 알맹이가 커져야 하는데, 어쩌고 하는 것을 잠결에 들은 것도 같았다.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은 급하고 만물의 기세는 쭉쭉 뻗는 여름. 집 앞의 잡초로도 우거진 숲이 만들어지고, 텃밭에 오이와 상추가 매일 자라 식탁은 온통 푸르다. 조막만한 감자와 주먹만한 양파가 텃밭을 오가는 인자씨 손에 부지런히 들려온다. 풍덩풍덩 낳아 기른 자식들만큼 이제는 그녀 손에 농작물이 풍덩풍덩 자라난다. 바빠서 죽겠다는 인자씨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생생했다.
아직도 나는 뭐 해 먹고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사내 정치와 매출 압박에 시달리며 몇 년 뒤면 더 이상 올라갈 자리와 내려 올 자리까지 없을까 봐 걱정한다. 친구들에게 터놓아봐도 다들 고만고만한지라 답은 없고 SNS만 뒤져봐도 40대, 50대에도 같은 고민을 하는 걸 보면 막막해지곤 한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힐 때면 인자씨를 떠올린다.
없던 것도 만들어내는 사람. 그 손에서는 뭐든 뚝딱 생겨났다. 낡은 옷도 그 손에선 새 옷이 됐고, 얼마 안 되는 재료로도 6인 식구가 다 먹고 남을 만큼 식탁이 풍성해졌다. 평생을 벌어 산 건물 때문에 파산 직전까지 갔을 때도, 몇 번이나 말아먹은 장사를 접고 농사를 시작할 때도 그녀가 지나가면 어느새 뚝딱이었다. 그녀는 장사를 접은 뒤 요양보호사가 되기도 했고, 미용사가 되기도 했다. 약하고도 강한 사람을 생각하면 인자씨뿐이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삶이라고, 그녀가 먼저 살아보고 알려주는 지혜를 이정표 삼아서 안심하곤 한다. 똑같이는 못 가도 마음먹기는 따라 할 수 있으니까.
자연에서 얻어먹기 위해 흠뻑 땀 흘리고 나면 도시에서의 삶은 가짜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키워 온 자아는 감자 한 알, 쌀 한 톨 얻기 위해 흘리는 땀으로 점점 작아져 본 모습을 찾곤 한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나도 한낱 자연의 일부인데, 머리 싸매고 고민할 일도 아니었는데 대체 뭐였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중 '뭘 먹고 살아야 할까요?' 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살기는 그냥 살지.'였다. 그냥 사는 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싶었는데 조금 알 것도 같다.
뻗고, 내달리고, 튀어 오르는 계절. 그녀 말대로 유월에는 부지런히 따야 한다. 고민만 하다가는 먹을 게 하나도 없다. 뭐가 됐든 살다 보면 알게 될 일. 우리 집 초보 농부들처럼. 마음을 다할 것, 힘들 때일수록 차고 나갈 것, 모든 것은 다 한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