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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ug 02. 2024

운전면허 따러 갔다가 인생을 배웠다

 쉬는 동안 경주에 내려가 운전면허를 땄다.

나에게 운전이란 매년 쓰는 올해 다짐 혹은 올해 할 일에 빠짐없이 등장하던 숙원이었다. 남들은 수능시험만 치고 나면 다 딴다는 운전면허를 삼십 대 중반에, 무슨 바람이 불어서 땄냐면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어서라고 답하고 싶다. (나이가 들 수록 겁도 같이 늘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그렇거니와 회사에 돌아가기는 싫고, 마음은 불안한 백수에게는 주의를 환기시킬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인생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 하는 동안엔 다른 생각이 안 드는 것,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으면 더 좋은 것. 그런 걸 찾다가 운전면허학원이 떠오른 것이다.


 이제 곧 일흔이 다 되어가는 우리 병학 씨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면허학원으로 갔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운전을 하는 사람이 아빠뿐이라는 사실도 면허를 따기로 한 것에 한 몫했다. 언제까지고 아빠가 태워주는 차를 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학원을 등록하고 나니 당장 10분 뒤에 기능수업을 1시간 들으라는 말을 들었다. 필기수업을 잘 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물었더니 기능이라고 했다.


“기능을요? 제가요? “


정신 차려보니 이미 운전자석에 타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는 매일 필기 수업과 기능 수업을 들었다. 강사님이 알려주는 대로 핸들을 한 바퀴 크게 돌리고, 반 바퀴 푼 다음 쭉 갔다가 벽돌에 맞춰서 어쩌고 저쩌고를 시험 답안지 외우듯 달달 외워서 그대로 하면 T자 주차도 할 수 있었다. 단점도 외운 대로밖에 못한다는 점이었다.


코스를 달달 외우는 나에게 옆에 탄 강사님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완결 난 소설책을 읽는 게 아닙니데이.

  맞닥뜨리면서 해야 돼. 맞닥뜨리면서.

  빠르면 늦추고, 느리면 속도 올리고!"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아차! 싶었다. 성과를 내야 하는 일도 아닌데 어쩌자고 운전도 빨리 외워서 하려고 했는지. 나는 회사에 다닐 때도 낯선 게 나오면 늘 긴장했다. 누가 안 그렇겠냐만은 자기 전에 떠올리고, 일어나서 떠올리고, 전등 스위치가 번쩍하듯이 일을 다 끝낼 때까지 업무가 번쩍번쩍 들이닥쳤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해치우고 싶어 했고,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빨리 지쳤다. 익숙해질 때까지 그랬다.


잠깐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경고음이 울려서 급하게 비상등을 켰다. 당황한 나머지 처음 문장을 말하는 어린아이처럼 띄엄띄엄 "강사님…명언 제조기시네요." 하고 말했다.

그는 운전 스타일에 따른 내 성격 분석까지 끝마치고는 옆에 앉아 끊임없이 떠들었는데 나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주로 듣기만 했다. 하는 말이라곤 으아아 혹은 으어어 같은 의성어뿐이었다가 처음으로 내뱉은 완전한 문장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고, 조급하거든요? 핸들 꼬옥 잡고 급하게 돌리니까 차가 이상하게 가지. 천천히~ 차가 바로 설 때까지 기다려줘야 돼."


 좌회전할 때마다 차선을 이탈한 나는 강사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이게 꼭 내 인생 같기도 하단 생각을 했다. 마음만 급해서 꺾다 보니 어느새 차선을 이탈한 자동차처럼 내 인생도 이렇게 삐뚤빼뚤하게 운전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운전만큼은 흐름에 맡기자 생각하고 외우는 것을 포기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그날 배운 것을 메모장에 쓰는 것도 멈췄다. 꼭 지켜야 하는 것만 지키고, 자연스럽게 해보려고 했더니 훨씬 나았다.


"딱 세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힘, 생각, 겁."


도로에 나가기 전, 강사님은 나에게 세 가지를 조심하라 당부했다. 힘 빼고, 생각 많이 하지 말고, 겁먹지 말기. 내가 겁이 많은 거 치고 잘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3n 년 인생 살아보니 나처럼 지레 겁먹고, 아등바등하는 애들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맞닥뜨리며 즐긴 친구들이 더 잘 살았다. 언제나 그 친구들을 동경해 왔는데 태생이 겁쟁이어서 즐기는 것도 노력해야만 됐다. 이 아저씨는 날 어디까지 간파한 걸까. 이참에 용감한 겁쟁이가 돼보기로 했다.


하지만 도로주행은 또 달랐다. 이 수많은 차들 사이에 감히 내가 끼어도 될까? 뒤에 차가 기다리는데 내가 이렇게 기어가도 될까? 수족냉증인데도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축축한 손을 무릎에 마르고 닳도록 비비고 있는 나를 보며 도로 연수를 같이 간 강사님이 말했다.


"모두가 처음이 있었그든요? 쟤네들도 다 처음이 있었는데. 나만 신경 쓰고 가면 돼요. 남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뭐가 맞는지도 모르고 가면서 "강사님 저 괜찮아요?" 수없이 물었고, 강사님은 그때마다 괜찮다고 해줬다. 잘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진짜 괜찮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두 명의 은인덕에 도로연수도 한 번에 붙어서 면허증을 따고야 말았다.


따끈따끈한 면허증을 들고 주차연습을 같이 나간 병학 씨는 시골길을 20킬로로 달리는 내 옆에서 슬그머니 비상깜빡이를 켰다. 한참 주차를 알려주다가 안 되겠는지 조수석을 박차고 나가서 전지적 자동차시점으로 시범도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 좌회전, 우회전만 연습시켰다. 운전을 부추긴 것을 약간 후회하는 듯했으나 나는 후회가 1도 없었다.


퇴사 후에 불안했던 마음이 운전을 배우면서 많이 해소됐다.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치고 일상에 작은 환기와 오늘보다 나아진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내가 내 힘으로 움직인다는 느낌.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기꺼이 데려다 놓을 것이란 확신. 비록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내 인생 언제나 삐딱선이지만 어느 날엔 똑바로 가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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