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관한 단상
지난주, 인턴 A가 퇴사했다. A와는 입사한 후부터 꽤 친하게 지냈지만, 최근에 들어 사이가 서먹해 졌다. A가 나에게서 느낀 서운함을 진즉에 알았지만 굳이 알은 체 하지 않았다. A는 그런 자기를 알아 달라는 듯, 하루가 다르게 더 싫은 내색을 했고 그러는 사이 금세 이별의 순간이 왔다. A의 퇴사 이후, 아마도 우리는 구태여 다시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관계의 균열은 ‘점심시간’에서 시작했다. A의 부서는 우리 부서와 바로 인접해 있다. 그렇다 보니 두 부서의 비정규직 인원들은 자연스럽게 점심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오점뭐?’ (오늘 점심 뭐 먹어?)
주로 A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단체 채팅방에서 당일의 점심 메뉴를 의논한다. 때때로 함께하는 점심 식사는 즐거웠다.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다 보면 점심시간이 눈 깜짝 할 새 지나갔다. 문제는 한 번에 함께 먹어야 할 인원이 대략 10명 쯤 된다는 것이다. 10명의 인원이 한 번에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고, 설령 그렇다 한들 점심시간 광화문 직장가의 식당은 10명은 고사하고 단 두 자리 찾기도 어렵다. 점심을 먹기 위한 지난한 메신저 채팅과 자리를 찾기 위해 줄을 서는 그 시간이 피로했다. 점심을 근처 카페에서 혼자 해결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언니 요새 왜 우리랑 거리 둬?”
A가 내게 물어왔다. 장난 반 진담 반이라는 듯 가벼운 말투였다.
“응, 책 좀 읽으려고. 집 가면 자느라 통 책을 못 읽어서.”
차마 함께 먹는 점심이 피로하다고는 말하지 못해 담백하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A는 내가 감추고자 했던 불편한 행간을 읽어낸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예전에는 늘 모두 함께 점심을 먹고, 두루 두루 친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지난 이야기를 했다. 퇴사한 전 인턴들과 전 기간제 직원들이 얼마나 친했고 서로 위해 줬는지 A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들어주었다. A의 서운함을 알기에 나 역시 마음 한 편이 불편했지만 미안하지는 않았다.
관계는 개체와 개체의 사이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원래 하나였다는 듯 착각한다. 이 정도 사이도 안 되는 거냐며 서운해 하고, 나에게 소홀한 타인에게 상처받는다. 개체와 개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늘 버겁다. ‘나’라는 사람은 주변을 쉽게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을 두고 보면서 그렇게 서서히 물이 들 듯 가까워지는 관계가 좋다. 물론, 친한 관계라고는 해도 나와 내 자신의 관계만큼 가까운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주변이 고요한 편이 좋다. 적막함이 싫어서 음악을 틀거나 TV를 켜 두는 이들도 있다지만, 나에게 고요는 ‘적막’이라기보다 ‘평온’에 가깝다. 몇 년째 자취방 이사를 하지 않은 가장 큰 까닭이 바로 이 조용함이었다. 방 안, 베란다 이중문을 단단히 잠그면 일순간 주변이 조용하다. 이따금씩 복도의 작은 소음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타협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조명을 약하게 낮추는 것이다. 처음 이사 들던 몇 년 전 시세로 ‘1000에 50’짜리, 10평 남짓한 내 자취방. 낮에도 실내등을 켜지 않으면 어둡지만 그래서 좋은 점이 있다. 실내 불을 다 끈 채로 무드등 하나만 켜 두면 훤한 대낮에도 새벽녘의 고즈넉한 시간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다. 매일 같이 사용하는 아로마 디퓨저에 라벤더 오일까지 한 두 방울 떨어뜨려 주면, 그냥 게임 끝이다. 편안해서 ‘코지’라고 이름 붙인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신다.
회사에서는 ‘코지’에서처럼 온전히 혼자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짬을 내어 홀로 있고 싶을 때,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카페로 간다. 읽을 책을 한 권 챙기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정작 이어폰에서는 아무런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이어폰은 단지 주변의 소음과 나를 분리해주는 콩알만 한 두 개의 벽으로 기능한다. 밀린 책들을 읽으며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의 여유를 즐긴다. 평소라면 한 시간이 십 분 같았을 찰나의 점심시간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나의 하루가 물을 준 화분처럼 싱그럽게 피어나는 재충전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나의 사회성을 걱정하거나 대인 관계에 관해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내게는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가 있고, 웃으며 사소한 잡담을 나눌 동료가 있고, 4년을 함께 한 연인이 있다. 종종 이들을 ‘코지’로 초대하기도 하고,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고, 최근에 읽은 좋은 글들을 나누기도 한다. 맥주잔을 가볍게 마주치며 서로를 알아가는 회식의 취기도 기꺼이 즐긴다. 결코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과 관계가 성가신 것이라거나 피로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곁을 내어 주는 이들에게, 내 곁을 함께 해 주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다시 A를 생각한다. 낯선 공간, 처음 온 나에게 선뜻 마음을 내어 주었던 A에게 고맙다. 일은 하지만 직원은 아닌, 이곳에서의 애매한 내 처지를 살가운 그 마음 덕에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조금 서먹하고 어색하더라도 한 번 쯤 진심을 말해 보았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나는 내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가끔 내가 홀로일 수 있는 아주 약간의 공간을 내어 준다면 우린 오히려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거라고.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오래 보고 싶다고. 그랬다면 A와의 마지막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퇴사한 A에게 구태여 이 말을 전하는, 그런 일을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