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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yoon Aug 13. 2023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3일 살기  

드라마로 나를 돌보다. 

꼬박 3일 째다. 

한 창 방영할 때도 챙겨보긴 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3일째 꼬박 다시 보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시즌 1, 1화부터 순서대로 차곡차곡 보며 3일을 보냈다.  


무기력함의 이유는 많다. 

탓할 것투성이다. 날씨도 남편도 나의 체력도 모두 탓이 된다. 

그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오지 않고 있는 것이 무기력함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는 중간중간 울었고 그다음 날 퉁 부은 얼굴로 또 다음화를 이어 봤다. 

아무 생각 없이 봤고, 드라마 속 인물과 상황에는 심각할 만큼 집중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드라마 


드라마 속에서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놓인 상황 속 수술이 시작되는데 

내 옆에 놓인 핸드폰이 울린다. 

일시 정지를 누르고  현실과 드라마 속을 분간 못하는 목소리로 전활 받는다. 

매일 통화하던 친구다. 뭐 하는데 연락도 없냐며 핀잔이다.


"나? 넷플릭스.... 슬의생 보고 있어" 

"야! 너 팔자가 최고구나"


내 팔자가 최곤가? 

머리가 멈춰있다.  

친구가 무심코 말했듯 며칠을 드라마로 시간을 보내는 내 팔자가 세상 편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3주를 기다렸는데 아직 연락이 없는 전화가 있다. 

한 달 전에 공들여 만든 포트폴리오와 기획안을 땡땡회사에 제출을 했다. 

기다리는 연락이라는 것이 대단한 합격소식이거나 당장 계약하자는 식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봤는지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저런 이야기가 궁금한 거다. 

그런데 통 소식이 없으니 안달이 났고 

그 시간이 길어지고 할 수 있는 것이 기다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기력하게 변했다. 


먼저 연락할 수 없다. 자존심은 아니다. 이 업계의 루틴이기에 인정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던가

언제쯤 연락을 주겠다고 하던가.' 

'갑'이라는 회사의 담당자 전화 한 통을 3주 동안 오매불망 기다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유독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특별히 예민할 필요 없다 하지만 스스로 예민하다. 


오랫동안 일을 손에 놓았었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첫 시도라 더 그렇다. 

다시 업계로 돌아가기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시장도 달라졌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두렵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스스로의 감각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다. 

경력단절이나 휴식기를 갖은 사람들은 한 번쯤 경험했을 터다. 

시작은 설렘이지만 다시 시작에는 두려움도 같이 온다. 


아이들이 돌아왔다. 다시 바빠지는 오후 시간이다. 

힘내서 반찬도 만들고 맛있게 밥 한 술 떠보자며 축 쳐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본다. 

묵묵히 기다리는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토닥토닥. 나를 위한 돌봄

무엇이든 시작하는 사람들은 지치지 않게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필요하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잘 보내야 하기도 하는 돌봄 말이다. 


며칠 동안 나를 잘 돌봐 준 드라마도 끝났는데 내일은 그 기다리는 전화가 꼭 오면 좋겠다며 스스로를 일으킨다. 문득 생각이 스친다. <슬의생>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선택한 드라마가 호러나 폭력물이었으면 난폭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봤으니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응답하라부터 슬기로운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피디와 이우정 작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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