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싫어 떠난 여행

번아웃과 우울감에 시달렸을 때

by 숲해설가 마리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었다.

인간 enfp 그 자체.


나는 20대부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고 다양한 활동에 적극 임했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와 관계가 내 삶의 낙이자 원천이었다.


그러다 사람관계 속에서 시련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사람관계에서 빚어진 그 시련은

실망, 분노, 무력감, 자괴감, 우울감, 절망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를 감쌌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조금 힘이 나서 사람을 만나면 상대의 말 한마디가 비수로 꽂혀 더 큰 상처가 되고, 울다가 잠드는 일상.



그때 지인이 나에게 여행을 추천했다.


여행을 못 갈 이유는 많았다. 반려묘, 돈, 직장...

하지만 이 현실을 벗어나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왕복표와 처음 3일 숙소 예약만 하고, 50여 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원래 여행 가면 뽕을 뽑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런 정보와 바램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에.

어느 날은 숙소에 누워만 있거나 책만 읽은 적도 있다.



이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숙소 주인은 매일 나를 불러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었다.

그 나라식 식사도 만들어주고, 밖에 나가 식사도 사주기도 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 사주면서 자기 친구도 소개해주고, 자신의 증조할머니 90세 생일잔치에도 나를 초대하기도 했다.

*숙소주인은 가정이 있는 남자로, 나는 식구 모두와 친하게 지냈다.

(쓰면서 많은 것을 함께 해서 웃기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되게 비싸고 좋은 차도 아니다. 아무렴 상관없다. 비싼 차보다, 매일 나를 부른 그 따뜻한 마음이 나에겐 더 귀했다.


숙소주인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기 많은 외국인들이 머물다 가는데, 한국인과 일본인만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


이 이야기를 듣고 씁쓸했다.

왜 그렇게 정신없이, 나를 돌볼 틈 없이 나를 채찍질하면서만 살았을까.



옛날에 이 숙소주인을 만났다면 이해 안 됐을 것 같다.

밥 먹고 옥상에서 차 한잔 하며 여유롭게 사는 삶.


한국에서 화성인 같은 존재.

이 화성인이 건네주는 차 한잔이, 말 100마디보다 더 따뜻하고 좋았다.


몸을 움직일 힘이 생길 때쯤, 숙소주인의 90세 할머니 생일파티 때 갔던 도시에 가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곳으로 떠났다.



오토바이 타고 신나게 달렸다.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고, 해방감을 느꼈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왜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지 내 몸과 마음으로 깨닫는 중이었다.

(여행 초기와 달리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



가이드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산도 올랐다.

이날 13시간을 산에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오랜만에 땀을 쫙 빼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여행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로 향했다.

4300m까지 올랐는데 오르는 내내 4계절을 마주했다.

기온이 따뜻하여 싱싱한 꽃과 풀이 가득한 곳,

땅이 얼어있고 눈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

사방이 눈인 곳.




4일동안 씻지 못했다.

온수가 안 나올뿐더러 고산병 때문에 샤워하는 것이 위험했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바람과 아이스 음료를 얻을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하겠지.

하지만 이곳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처럼 땀에 절어있고 못 씻었기에 그것 또한 상관없었다.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

웅장한 산을 돌아보며, 내 고민은 너무나 작게 보였다.



용기내고 싶다

다시 제대로 살고 싶다

이 세상은 넓고, 내 삶은 한 번뿐인 삶인데... 너무 소중한데...

과거와 타인으로 인해서 내 삶을 제한하고 절망해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 절망만 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겠다.

다시 희망을 찾으며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나에 대해 다시 알아가고, 삶에 대해 탐구하고 싶다.



그렇게,

사람이 싫어 떠난 여행.

자연 속에서 지낸 50여 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