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시릴 페드로사, 장자크 상페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때, 그 세계는 객관적인 세계일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고 해도, 결국 하나의 인간이 보는 세계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에 대해 누군가 재미나 흥미 혹은 그 이상의 통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각도의 시선을 던진다면,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작가’라면 영향력은 아마 더 커질 테지.
여기, 고유한 시선을 가진 세 명의 작가가 있다.
박완서 「호미」, 「나목」
작가의 글에선 감칠맛이 느껴진다.
음식에 대한 묘사는 물론이고, 작가가 풀어내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글맛에 살아나 숨 쉰다.
생전에 시 100편을 외울 정도로 시를 좋아했다던 소설가.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 매대에 서서 한글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한 장 한 장 시집을 넘겼을 십 대 소녀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그 아름다운 시의 언어들이 그녀에게 체화되어
아름다운 소설로, 또 에세이로 남았다.
생전에 한 번이라도 그분을 뵐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릴 페드로사 「포르투갈」
그의 작품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포르투갈 골목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며 이웃집에서 들리는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
포르투갈 태생이면서 프랑스에서 자라온 주인공 시몬에겐 알아듣지 못하는 포르투갈어가 마치 음악처럼 들리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어쩌면 2D의 종이 속에서 음성지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감탄 또 감탄…!
방대한 그림량에 결코 짓눌리지 않고 꼿꼿이 피어나 열매를 맺은 것 같다.
장 자크 상페 「뉴욕스케치」
상페가 세상을 보는 시선엔 풍자도 날카로움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 애정이 가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조금은 모자란 그러나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 주변의 누군가 혹은 나 자신 같기도 한.
현대문명에 사회화된 표본과도 같은 뉴욕의 사람들은 세련되고 똑똑하지만, 한편으론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또 어리석기도 하다.
그렇지만 상페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라고 말하는 듯, 그들을 깊이 연민하고 그들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언제쯤 이런 내공이 가능할지.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오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