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펨, 이세이 미야케를 만나다

도쿄에서 열린 Issey Miyake의 전시회 스케치

by Young Choi

Fragrance Startup 파펨 (www.paffem.me) 은 세계 주요 도시의 향기 report를 발간합니다. 전 세계의 trendy를 파악하고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파펨의 노력 중 하나입니다. 파펨의 도쿄 리포터가 이번에는 롯폰기에 있는 국립신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세이 미야케의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국립신미술관 최초로 개최되는 디자이너의 개인전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일본의 미의식을 묵묵히 지켜온 그의 창작 활동을 간략히 스케치하여 공유합니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이면서 향수 브랜드도 출시한 Issey Miyake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글의 마지막에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국립신미술관 카페 아오키(국립신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가 및 관계자들의 좌담회) 내용도 공유합니다. 패널로는 안도 타다오(건축가), 이세이 미야케 (디자이너), 아오키 다모쓰 (국립신미술관 관장) 이 참여하였습니다.






국립신미술관제 19회 ‘카페 아오키’

*카페 아오키: 국립신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가 및 관계자들의 좌담회.


일시: 4월 3일(일)14:00~15:30

주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패널: 안도 타다오(건축가), 이세이 미야케(디자이너), 아오키 타모쓰(국립신미술관 관장)



강연 내용(이세이 미야케 강연 내용 발췌)

(각 패널의 질문 및 답변은 안, 미, 아로 축약 표기)


아: 오늘은 인간의 삶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복장’과 ‘주거’ 두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특별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복장과 주거는 문화의 기초가 되는 분야이기도 하지요. 최근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의복을 비롯해 제품, 기계, 건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생(삶의) 디자인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미야케 선생님은 어떠한 계기로 디자인과 접하게 되셨는지요?


미: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고교 시절에는 예술가가 될까 화가가 될까 고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기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고생하는 것도 싫고(웃음). 그래서 딱히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제 고향이 히로시마인지라 이사무 선생이나 단게 선생의 건축물을 보면서 ‘디자인’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습니다. ‘아, 이런 일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 그런데 왜 건축가가 되지 않으셨나요?


미: 건축에는 재능이 없는 것을 알았으니까요(웃음.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어짐.)

디자인이 멋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or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일화를 소개하면) 고등학교 때 화실에 누드를 배우러 다녔는데요. 그림을 다 그리고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가는 길에 ‘니혼도오리’라는 상점가가 있었습니다. 불 꺼진 쇼윈도에 걸려 있는 옷이 퍽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옷에 관심이 있구나’ 싶었지요. 하지만 일본인이 옷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시절이라 일반적인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타마미술대학(일본의 3대 미대)에 진학했습니다.


아: 그런데 복식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으로, 기존의 화려한 복장 세계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어떤 심경이셨나요?


미: 1960년 교토에서 저명한 문화 인사들이 참여한 ‘세계디자인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옷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단 말이죠. 이벤트 후 당시 주최측 편집장에게 (옷은 왜 디자인 범주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에 대한 내용의)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때 ‘그래, 아직 인정받지 못한 세계라면 충분히 기회가 있다. 이쪽 일(의복 디자인)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아: 그런데 미야케 선생님은 ‘패션’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으시지요(웃음). 이후 선생님께서는 (의복의 본고장인) 프랑스인들에게 영감을 주시게(or 크리에이티브성을 부여하시게-직역-) 되는데요.


미: 당시 타마 미대에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프랑스의 디자인을 일본으로 들여와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시절이었는데, 전 반대의 길을 선택한 셈이지요. 1964년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는데, 스케치만 열심히 하고 몇 벌의 옷을 제작한 경험이 전부였죠. 무모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제가 인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저를 채용해 준 프랑스인은 제가 하루에100장이나 스케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성실하게 일하는 일본인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관계로 발전되고 프랑스에서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 문장은 약간 자신이 없네요^^;). 하지만 당시 프랑스 디자인은 제게 너무 과감해 보였어요. 여성의 가슴 골이 훤히 드러나는 옷이나 가슴 실루엣이 강조된 표현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의복 디자인은) 한 장의 옷감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입니다. 그 시절 파리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었지요. (다행히) 프랑스는 다른 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였습니다.


미: 이번 전시회는 이세이 미야케의 회고전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Issey Miyake의 방법론, 디자인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자리인 것이지요. 우리끼리만 작업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경쟁업체들이 많이 등장하는 시대지 않습니까? 스케치를 하며 관람하시는 분들이 많아 인상적이었는데 저는 이러한 현상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일본 뿐만 아니라 힘이 넘치는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의복 디자인은)손과 마음으로 하는 일이에요.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서 감이 오는 좀 세계지요.


안: 미야케 선생님과는 1969년 처음 만나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요. 아티스트들은 순간순간을 캐치해 (성장해) 가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의 일은 의뢰자가 있고, 건축가가 있고, 공사를 도와주는 스탭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입니다. 이와 달리 미야케 선생님의 작업은 긴장감,상상력, 지구력을 반복적으로 요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야케 선생님이 세간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심정도 알 것 같습니다.


미: (의복 디자인은) 내가 나에게 발주를 하는 일이지요. 따라서 결과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고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회사는 망하게 됩니다. 드라마틱한 삶이 아닐 수 없어요.

저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경험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5월 혁명 때에는 파리에,원폭이 투하되었을 때에는 히로시마에 있었지요. 중국 천안문 사태 때에는 마침 전시회가 있어 중국에 체류 중이었고, 뉴욕에서 부티크를 오픈하기 전에911테러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와(or공간과) 만났던 경험들이지요.


안: 시간과의 조우, 히로시마에있는 단게 선생의 건축물과의 만남(등에 대해 미야케 선생님이 언급해 주셨는데) 이렇게 본인에게 찾아온 시간, 기회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야케 선생님은 이를 몸소 실천해 오신 분이기도 하지요.


미:(안타깝게도) 일본에는 이러한 ‘만남'을 이끌어내는 공간이 없어요. 2003년에 이사무 선생,안도 선생 등과 함께 뮤지엄 설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재능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요. 일본에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아티스트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 하나의 문화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 스며든 신사, 마쓰리 같은 것(문화)도 중요하지만 시대와 함께 문화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영미권 참석자들의 열렬한 반응!).

PLEATS PLEASE도 디자인에 엔지니어링을 접목시켜 사양을 바꿔 보자는 시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의 전통적인)장인 정신에도 주목했고요.


아: 의복 제작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시도도 놀랍지만, 미야케 선생님이 만들어 낸 색채감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미: 원래 색을 좋아합니다. 보통 100가지 색을 염색한 뒤, 그 색들을 다양하게 조합해 보고 연구하지요. 이 팀을 ‘LAB’이라 부르는데 구성원은 신입사원부터 80세 직원까지 다양합니다. 세대가 다르니 감각도 전혀 다르지요. 그런데 전 또 그게 재미있어요. 색채감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종이를 이용해 제작한 작품도 있었는데요.


미: 종이는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지만 일본종이(和紙)는 매우 우수합니다. 훌륭한 종이 장인과 만났는데 같이 일을 안 할 이유가 없지요.


안: 일본의 전통적인 색감은 정말 아름다운데 미야케 선생님은 그런 일본의 높은 미의식을 계승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아: 서구인에 비해 아시아 지역, 특히 동아시아인은 체형이 다른데 미야케 선생의 옷은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잘 어울리고 피부에 닿는 촉감도 좋습니다. 또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편하지요). 제3의 혁명이라 생각됩니다.

*초록색은 일본의 우수한 아티스트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뮤지엄 설립과 관련해그가 강조한 부분으로, 본 전시회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듯 하여 표시해 두었습니다.



<질의응답>

Q : 두 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시회를 보고 느낀 점과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전시회를 통해 2차원의 면을 3차원의 의복으로 승화시킨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전시실 마지막 코너에 작은 사이즈로 제작된 옷을 토르소에 입혀 보는 공간이 있었는데요. 직접 옷을 입혀보면서 단순한 도형이 인체와 만났을 때 체형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있는 공간…빛이나 바람의 움직임, 주변 풍경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갖게 된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향수를 좋아하고관심이 많은데요. ‘IsseyMiyake'의 바디용품과 향수도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좋은 제품 제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옷이 아닌 향수 분야에 도전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혹은 향수 제작 시의 컨셉이나 철학, 향후 계획에 대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미: 향은(or냄새는) 일상 생활에 밀착된 영역이지요. 디자인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다양한 업체로부터 향수를 출시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섣불리 향수 업계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어요. 잘못하면 회사 존립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시세이도 후쿠하라 회장님의 권유로 프랑스에 향 관련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전 원래 향수를 안 뿌려요(웃음). 향수보다는 물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다고 물을 팔 수는 없쟎아요. ‘에비앙’으로 충분하니까요. 그래서 향수를 만들면 어디에 차별성을 둘 것인가. 향수 업계에 진출할 거라면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매년 300~500개의 향수가 출시되지만 이중 10년 뒤까지 살아남는 제품은 고작 3개 정도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세계지요.

그래서 프랑스 연구소의 우수한 조향사를 일본에 초대해 정원을 물을 뿌린 뒤 자연스럽게 피어 오르는 향을 통해 영감을 얻도록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향수가 제작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 참 감사한 것이 제 성이 ‘이세이’지 않습니까? ‘로’만 붙이면 그리스어로 ‘로디세이’가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먼저 그리스에서 인기를 얻었고 다음이 런던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역시나 벽이 높더군요. 자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저희 향수에 대해 ‘헷갈리게 만든다’, ‘방해한다’는 의미의 ‘데롱제’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다행히 향수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향수 사업은 투자를 많이 해야 합니다.

지금 훌륭한 디렉터와 스탭들이 연구 중이고,향수 매출로 얻은 수익을 재투자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향수 제작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실체가 없어도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충분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으니까요. (향수 사업을 지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한 부연 설명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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