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존재]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존재

by 오 영택

#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다. 데카르트는 당연시 여겨졌던 모든 것을 의심해보기로 작정했던 사람이다. 들리는 것과 존재하는 물건들, 이외에도 여러 증명 등 모든 것을 의심해봤다. 그러던 중 그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 끝에,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자신만큼은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 역시 데카르트처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고해볼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사회 질서나 규칙에 대해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면 생활하기 곤란해진다. 질서나 규칙에는 모두의 편의를 위한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과 반대로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멈추고 빨간불일 때 움직인다면 사고를 초래할 것이다. 사회적 약속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통용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심해봐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표현들을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흔히 현실의 씁쓸함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많은데, 자신의 존재를 대변하는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수저계급론이라 불리는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로 자신의 환경을 표현하고, 생활양식에 따라 카공족, 홈트족, 니트족, 욜로족, 프리터족, 캥거루족, 딩크족 등 다양한 형태로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이번 생은 망했다"를 의미하는 이생망,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는 의미에서의 N포 세대, 문과라서 취업이 잘 되지 않는 쓸씀함을 표현한 문송합니다, 서민이라 불리는 시민,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갑을관계, 이처럼 많은 기준과 언어들로 사람들의 모습들이 표현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설명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 등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카공족 :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홈트족 : 집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니트족 :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들
욜로족 :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며 생활하는 사람들
프리터족 : 특정한 직업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층
캥거루족 :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
딩크족 : 부부생활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취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여러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며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기에 졸업을 유예하는 대학생들도 많다. 코로나 19가 한창일 때는 헬스장이나 운동시설 등이 문을 닫으면서 집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처럼 생활양식에 따른 설명의 표현들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암울함과 씁쓸함을 표현하는 언어들에 있다. 흙수저, 서민, 이생망, N포 세대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 언어들은 자조 섞인 언어들과 함께 사용되는데, 밝지 않은 미래,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 나아지지 않는 답답함 등 푸념과 회의적인 상황에 자주 언급되는 표현들이다. "흙수저라서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며, "서민주제 뭘 하겠냐"고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어차피 이생망인데 될 대로 되겠지"라며 손 놓기도 한다.


이런 표현들이 현실을 반영한 사실적인 표현일지라도 의식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특정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올 때는 단어가 갖고 있는 느낌의 분위기가 함께 표출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에서 느끼는 분위기가 언어로써 표현되는 것이다. 우울함과 처량함, 희망없음, 막막함 등 단어가 주는 느낌은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단어들은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때로는 나아질 수 없는 이유와 상황에 대한 원인으로 합리적인 구실로써 제시하기도 한다. '흙수저이기 때문에', '서민이니까', '이생망인데 뭘 하냐'며 자조 섞인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넋두리일지라도 말의 힘은 우리 삶에 그대로 작용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크게 다가온다. 혼자만의 시간에 찾아오는 생각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반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넋두리의 언어가 삶의 언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익히 알듯이 자주 보고 들은 것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익숙해진 언어와 그 속에 담긴 느낌의 분위기는 그렇게 삶의 일부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자신을 규정하는 단어들에 대해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은 고작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고작 단어로 규정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규정하는 단어와 표현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들 수 있다. '착한 아이', '착한 사람'이라는 언어의 틀 때문에 '착하다'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에 맞춰 행동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특성을 알기에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는가. 이는 어디까지나 주객이 바뀐 모습이다. 과감히 언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어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설명하는, 혹은 규정하는 표현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삶을 돌아보자. 선택들을 되짚어보자. 어떤 기대에 의해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무엇보다 단어는 어디까지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삶이 있기에 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다. 삶에 맞춰 표현이 달라지는 것이지 표현에 의해 삶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우리를 규정하던 표현들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존재를 규정하는 언어를 지우고 삶을 위한 희망의 언어로 재정의 해보는 건 어떨까. 흙수저 금수저 논란에서 벗어나 깨끗한 수저가 되는 것에,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가 아니라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 N포,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亡, 망할 망)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하는 이생망(望, 바랄 망)처럼 의도적으로 언어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 이렇게 재정의한 자신만의 언어들은 의식적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스며든 언어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다시 말로 표현된다. 말은 다시 무의식에 스며들어 행동을 이끌어 낸다. 의식적으로 반복한 언어는 하나의 습관이 되어 무의식에 자리잡는다. 이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언어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곰팡이 핀 언어를 지우고 희망의 언어로 빛을 비춰보는 건 어떨까. 힘든 삶에 힘 빠지게 하는 언어까지 짊어질 이유는 없다. 삶을 노려보게 만드는 언어보다 희망을 노래하기 위한 언어를 선택해보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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