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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Jun 24. 2024

제발, 저희 가족을 받아주세요

뉴질랜드에서 렌트하기

가족들이 같이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타기를 원했지만, 학생비자인 내 비자는 비교적 빨리 나왔고 나머지 가족들의 비자는 내가 지원한 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나오지 않아 부득이하게 나 먼저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과연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편이 애들 둘과 어마어마한 짐을 챙겨서 제대로 올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되었지만,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은 솔직히, 좀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달까? 


아무튼 나의 임무는 가족들이 오기 전까지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먼저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사촌언니 가족의 집에 머물면서 언니와 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보통 트레이드미라는 사이트에서 렌트할 집을 구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먼저 정하고 통학 가능한 거리에 있는 집을 구하려다 보니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트레이드미 사이트에서 적당한 집을 발견하면 뷰잉(집을 직접 방문하여 보는 것)을 신청한다. 집마다 절차가 달랐는데, 집주인이 직접 올린 집은 집주인에게 이메일을 보내 뷰잉 날짜를 잡기도 했고, 부동산중개인이 올린 집은 사이트에서 뷰잉시간 예약이 가능하기도 했다. 사실 몇 집을 시도해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떤 집은 이메일에 답조차 없었고, 어떤 집은 이미 세입자를 구했다고 했고, 실제로 뷰잉을 할 수 있었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총 다섯 집이었다. 


처음 뷰잉을 갔던 집은 같은 시간에 다섯 가족 정도가 뷰잉을 왔다. 중개인은 내가 최종 두 가족 안에 들었다고 연락을 줘서 기대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2등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두 번째 뷰잉을 했던 집은 다소 비좁은 집이었지만, 적은 예산을 가진 나로서는 괜찮았다. 다만 광고에 벌써 커플을 선호한다는 문구가 있었기에 내가 선택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그리고 내가 뷰잉을 할 때 온 팀만 해도 7-8팀은 되는 듯했다. 뷰잉 타임은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을 구하고 있는 건지. 세 번째 뷰잉을 한 집은 큰 도로변에 있어 소음이 염려되는 집이었고, 오랫동안 비어있어서 무슨 문제가 있나 싶은 집이었다. 하지만,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개인은 나의 은행계좌에 충분한 돈이 있는지, 이전 집주인에게 추천서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이제 막 학생신분으로 뉴질랜드에 왔고, 사실 은행 계좌도 만들지 못했다. 왜냐. 은행계좌를 만들 때 주소지 증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집주인과의 계약서 같은 거... 집을 계약해야 은행계좌를 만들고 돈도 넣어두는데, 또 집을 계약하려면 현지 은행 잔고를 증명해야 하고... 어쩌라는 거지? 뉴질랜드는 이곳에서 아무 이력이 없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이제 막 온 사람에게 매우 불리한 곳이다. 네 번째 뷰잉 한 집은 아이들 학교와 너무 멀기도 했고 집이 좁았다.


가족들이 올 날은 가까워지고, 이대로 집도 못 구하나 싶어 하루 종일 혹시 트레이드미 사이트에 새로운 집이 올라오지 않을까 들락날락거리던 중. 어느 날 저녁 늦은 시각, 새로운 집이 막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예산보다 주세(주마다 집세를 낸다)가 비쌌지만 이제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만, 그 집주인은 아이들이 있는 가족에게 집을 임대하고 싶다며 뷰잉을 하기 전에 가족소개를 자세히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우리 부부 직업, 아이들 나이 등의 정보와 학생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어 은행계좌가 없지만, 한국의 계좌로 잔고증명을 할 수 있고, 공부를 하려고 충분한 돈을 모아놨다. 등등 구구절절이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뷰잉을 하자는 답장이 왔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뷰잉에서 만난 집주인은 인상이 좋아 보이는 중국인이었는데,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노라고 다 이해한다고 했다. 이유인 즉, 우리 집과 붙어있는 옆집의 한국가족이 우리와 같은 상황(아내가 학생비자)으로 우리보다 두 달 전에 옆집을 렌트(우리 집과 같은 집주인) 한 것이었다. 아담한 복층의 집은 정원은 없었지만 지은 지 2년밖에 안된 집으로 깨끗하고, 무엇보다 조용한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주인은 메일로 계약서를 보내왔다. 와, 드디어 집을 구했다. 가족들이 오기 전 계약을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운명처럼, 극적으로 이 집은 만나 잘 살고 있다. 매주 월요일 새벽 주세가 은행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속은 좀 쓰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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