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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영 Dec 22. 2024

나주곰탕, 국물 속에 녹아든 역사

가끔 밖에서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딱히 먹고 싶은 건 없고 간단히 먹을 메뉴를 생각하다 보면, 늘 생각나는 음식이 나주곰탕이다.


한 그릇에 12,000원 정도 금액을 지불하고 먹어도 아깝지 않은 음식 중에 하나이다.     

나주곰탕은 우리가 흔히 아는 사골곰탕이 아니라 국물이 맑다.


나는 이런 맑고 깨끗한 맛이 좋은데 남편은 국을 끓이다 만 거 같다며 설렁탕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늘 나주곰탕 가자. 서울깍두기 가자. 옥신각신하다 그날 남편 기분에 따라 메뉴가 달라진다.     


사실, 나주곰탕과 사골곰탕 모두 보기에는 매우 쉬운 요리법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곰탕은 시간에 따라 맛의 차이가 많이 난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맛이 우러나오는 음식이다.


그리고 고기의 부위에 따라 맛과 냄새, 색이 달라진다.


나주곰탕은 곤자소니, 아롱사태, 양지머리 등으로 맑은 국물 맛을 우려내는 것이고 사골곰탕은 소뼈를 이용해서 하얗게 국물 색과 맛을 우려낸다.     


곰탕이라는 단어는 한자어 ‘고음(膏飮)’에서 유래되었는데, ‘고음’은 오랫동안 은근한 불로 푹 고면 국물이 우려 나온다는 뜻으로 ‘고음’이 축약된 형태의 ‘곰’이 되어 곰탕이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다. 


조선 후기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소의 각종 부위를 솥에 넣고 은은한 불로 푹 고면 뽀얗고 진한 국물이 우러나와 ‘고음’이 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24년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 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과 1940년 손정규의 『조선요리(朝鮮理製)』 등에 곰국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곰탕을 좋아한 나는 항상 먹을 때마다 궁금했다.

나주곰탕은 왜 나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나주곰탕은 약 100년 전 나주 5일장에서 상인들과 서민들을 위한 음식으로 등장하였다.


전라남도 나주는 고려시대부터 전주와 함께 호남의 행정과 경제·문화·군사의 중심지였다. 

고려 현종 때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주도(全羅州道)를 전라도(全羅道)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했다.     


나주 5일장도 전국 최초였다.


나주는 예전 우시장이 발달하였고 일제강점기 시절, 도축장에서 살 부위는 일본으로 가져가고 남은 뼈와 부산물을 우려서 만든 국물에 밥을 말아 팔던 게 나주곰탕의 유래이다.


시장에 물산이 집중되고 유동 인구가 많아져서 상인들과 서민들이 즐겨 먹는 나주 대표 서민음식이 된 것이다.    

 

현재, 나주시를 방문하면 조선시대 나주목의 객사(客舍)였던 금성관(錦城館)과 내아(內衙) 일대 인근에 나주곰탕 거리가 형성이 되어있다.


1910년 개업 이래 112년 전통을 잇고 있는 곰탕집 ‘하얀 집’을 중심으로 많은 곰탕집들이 성업 중이다.


참고문헌

1. 지역&문화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801?j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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