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의 겨울 바다는 차갑고 깨끗하다. 이 차가운 바다에서 자라는 실처럼 가는 해조류가 있으니, 바로 매생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이 가느다란 해조류를 진상품으로 받았다. 『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편에는 매생이가 김, 감태와 함께 전라도에서 세금으로 바치는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남해안을 대표하는 해조류였던 셈이다.
특히 장흥은 매생이의 본향으로 인정받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장흥 특산품으로 매생이가 왕실에 진상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수백 년 전부터 장흥 앞바다의 매생이는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만큼 특별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18세기 실학자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시절 남해안 물고기와 해조류를 관찰하며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정약전은 매생이를 '매산태(莓山苔)'로 기록하고 그 맛과 향, 조리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조선 지식인의 눈에도 매생이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남해안 식문화의 중요한 일부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 이전까지 장흥 대덕읍 내저마을 어민들은 매생이를 반기지 않았다. 당시 내저마을은 지주식 김 양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전형적인 어촌이었다. 김발에 매생이가 붙으면 오히려 '잡태'처럼 여겨 버리기도 했다는 구술이 전한다. 김이 주요 소득원이던 시절, 매생이는 방해물에 가까웠던 것이다.
전환점은 1980년대 중반에 찾아왔다. 매생이 가격이 김보다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저마을 어민들은 빠르게 판단했다. 김 대신 매생이를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했고, 마을 전체가 매생이 양식으로 전환되었다. 버려지던 해조류가 마을의 주요 소득원으로 변신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장흥 매생이는 주로 대덕읍 내저·신리·옹암, 회진면 죽도 등 득량만 인접 마을에서 생산된다. 깨끗한 겨울 바다, 완만한 조류, 얕은 수심이 매생이가 자라는 핵심 자연조건이다. 특히 내저마을은 '바다를 공평하게 나누는' 어장 분할 규약을 유지하며, 가구별로 일정 구획을 맡아 공동 관리하는 전통적인 어촌 마을 시스템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장흥에서 매생이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겨울이면 빠짐없이 먹는 생활음식이다. 장흥군은 매생이를 "예부터 장흥의 진상품이었고, 추운 겨울이면 빠짐없이 먹었던 정남진 향토음식"으로 규정한다. 굴과 조개를 넣고 끓이는 매생이국, 매생이탕은 대표적인 겨울 별미다.
매생이국의 특징은 뜨거움이다.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겁게 끓여 먹는다. 밤샘 노동 후, 술 뒤 해장 음식으로 매생이국을 찾는 생활 문화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매생이해장국, 매생이된장국, 매생이 전, 매생이죽 등 조리법도 다양하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매생이가 뜨거운 국물이 되어 몸을 녹이는 것이다.
오늘날 매생이는 새로운 이미지를 획득했다. 갈파래목 해조류로 분류되는 매생이는 깨끗한 겨울 바다에서만 자라며, 철분·칼슘·미네랄이 풍부해 "바다의 채소", "웰빙 해조류"로 불린다. 일부 자료에서는 매생이를 '우주 식량 후보'로 언급할 만큼 영양가가 높다고 평가한다.
전라남도 해안 특산물이었던 매생이는 이제 전국적인 건강식 재료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에서 지방 생활식을 거쳐 현대의 건강·관광 식재료로 위상이 변화한 것이다. 장흥 내저마을은 여전히 매생이 양식의 중심지로 남아 있으며, 겨울이면 전국에서 매생이를 찾는 사람들이 장흥을 찾는다.
500년 전 세종실록에 기록된 매생이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담긴 매산태가, 오늘날 우리의 식탁 위에서 여전히 뜨거운 국물로 피어오르고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편
『동국여지승람』
정약전, 『자산어보(玆山魚譜)』
지역 N문화, 장흥 내저마을 매생이 양식 관련 자료
실록위키, 매생이 항목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매생이 관련 자료
장흥군청 문화관광 자료
장흥군 향토음식 및 특산물 소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