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전은 찻잎을 쪄서 동전 모양으로 빚은 뒤 가운데 구멍을 뚫어 말려 만든 떡차·돈차 계열의 발효차이다. 장흥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차를 ‘돈차’라 불러왔다. 차의 형태가 엽전을 닮았다는 설명이 전해지지만, 그 이면에는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교환 가치와 실용성을 지닌 생활 자원으로 인식했던 지역의 생활 감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덩이차 형태의 발효차는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 시기에 중국 차 문화가 유입되며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된다. 찻잎을 찌고 압축해 덩이로 만든 뒤 숙성과 발효의 시간을 거치는 방식은 동아시아 차 문화의 초기 양상과 맞닿아 있으며, 청태전은 그 전통이 장흥이라는 지역에서 장기간 유지되고 변용된 사례로 이해된다.
차·전차·강차·곶차·단차·떡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덩이차 문화 속에서, 장흥 사람들의 언어는 이 차를 ‘돈차’라 부르며 일상 속으로 끌어당긴다.
장흥이 차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경세유표』 등에는 신라 시대 보림사를 중심으로 차 재배가 시작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설치된 19개 차소 가운데 13개가 장흥도호부에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는 장흥이 단순한 차 생산지를 넘어 국가 차 공급 체계의 핵심 지역이었음을 보여 준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차소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공식 차 생산 거점이었기에, 그 수적 집중은 장흥 차의 위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서도 차의 주산지가 전라도이며 그중에서도 장흥 차의 질이 으뜸이라는 평가가 전해진다. 이러한 기록은 장흥 차가 양적인 생산뿐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오랜 기간 높은 평가를 받아 왔음을 의미한다. 청태전 역시 이러한 장흥 차 산업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전승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청태전의 형성과 전승을 이해하는 데 있어 보림사는 핵심적인 공간이다. 보림사 경내에 세워진 보조선사창성탑비에는 헌안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실이 혼란하던 시기에 보조선사에게 차와 약을 예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통일신라 시기 이미 보림사가 차와 약의 문화적 거점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차가 수행과 치유, 왕실 의례와 연결되어 있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보림사는 장흥 차 문화의 중심축으로 기능했다.
한국 제다시에서 보림사가 차지하는 의미 또한 크다. 다산 정약용과 한국의 다성으로 불리는 초의선사가 ‘구증구포’의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죽로차와 보림백모차의 탄생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러한 제다 전통은 특정 인물의 사상과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사회의 생활 기술로 확산되었으며, 그 흐름 속에서 청태전 역시 장흥 사람들의 일상 속 차로 자리 잡았다.
한국민속 대백과는 청태전을 당나라 육우의 『다경』에 보이는 돈차와 제다법과 음용 방식이 유사한 발효차로 분석한다. 이는 청태전이 중국 차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되, 장흥이라는 지역 환경과 생활 방식 속에서 독자적으로 변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언론과 장흥군청 자료에서도 청태전을 삼국시대 이후 약 천 년 이상 장흥을 중심으로 전승된 발효차로 설명하며, 보림사와의 연관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청태전은 오랜 세월 장흥 지역에서 상비약처럼 음용되던 차였다. 발효 과정을 거친 덩이차는 소화와 해독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졌고, 이는 의서에 기록되기보다는 생활 경험을 통해 체득되고 전승된 지식이었다. 당나라에서 전래된 덩이차 문화가 장흥에 뿌리내린 이후, 청태전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일상 속에서 몸을 다스리는 차로 기능했다.
청태전은 보림사 주변 비자림에서 자생하는 찻잎을 채취해 만들어졌다. 인위적 재배보다 자연 상태의 찻잎을 활용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며, 채요과 제다의 전 과정은 주민들의 손을 거치며 세대를 넘어 이어졌다.
찻잎을 찌고, 말리고, 덖어 덩이로 빚는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시간과 감각이 축적된 생활 기술이었다. 이 손의 기억이 바로 청태전을 천년 동안 이어지게 한 힘이다.
오늘날 청태전은 장흥을 대표하는 전통 발효차이자 한국 차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세계녹차콘테스트 최고 금상 수상과 국제슬로푸드 생명다양성 재단의 ‘맛의 방주’ 등재는 이러한 역사성과 품질이 현대적으로 재평가된 결과이다.
전통 제다 방식의 복원과 품질 관리, 미식과 관광 담론의 확장은 청태전을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의 음식문화로 살아 있게 한다.
청태전의 역사는 기록과 생활, 사찰과 마을, 약과 음료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어져 왔다. 장흥이라는 지역성과 보림사라는 공간성, 그리고 주민들의 일상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결과가 바로 청태전이다. 이는 남도 음식문화가 지닌 지속성과 변용의 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 국사편찬위원회.
『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장흥도호부조, 국사편찬위원회.
『경세유표』, 정약용 저.
김정호, 『대동지지』.
『자산어보』, 정약전 저.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 보물 제158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청태전」,「장흥 차문화」 항목.
한국민속 대백과사전,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
국제슬로푸드 생명다양성 재단(Slow Food Foundation for Biodiversity), Ark of Taste 등재 자료.
장흥군청, 장흥 차·청태전 관련 공식 자료 및 관광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