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부터 조선까지 - 문헌으로 읽는 보성 차의 천년기록

by 길가영
보성 문헌 녹차_26.02.15.png 문헌으로 읽는 보성 차의 천년기록


전라남도 동부 해안과 내륙이 맞닿는 보성 일대는 온난한 해양성 기후와 안개가 잦은 지형 덕분에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고, 이러한 자연조건 위에서 형성된 차 문화가 여러 역사 기록 속에 모습을 남기고 있다. 보성의 차 문화는 문헌 기록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독자적인 색을 드러내고 있는 영역이다.


보성 차의 기원을 백제 시기까지 올려 보는 시각은 지역사 자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성 군 지에는 보성의 옛 이름인 복홀군이 마한에서 백제로 통합되면서 처음으로 차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차가 단순히 근대 이후에 들어온 상업 작물이 아니라, 삼국 시대 이래로 이 지역 생활문화와 연관된 식물이었음을 시사한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지리지는 보성 차의 위상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종실록지리지』 장흥도호부조에는 각 군현이 중앙에 바치는 토산 품목이 정리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보성의 차가 대표적인 공물로 등장한다. 특정 고을의 차가 토공 항목에 오른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차가 꾸준히 생산되었을 뿐 아니라 품질과 물량 면에서 국가 차원에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이후 『신 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도 보성은 차 산지로 언급되며, 예부터 차나무가 자생하고 차를 만들어 왔다는 취지의 기술이 이어진다. 서로 다른 시기에 편찬된 지리지들이 공통적으로 보성의 차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성 차 문화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지속된 지역 특성임을 뒷받침한다.


보성의 차 문화는 문헌 속 글자들뿐 아니라 지명과 유적 속에서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보성 일대에는 과거 공납용 차를 만들던 다소, 즉 차소에 관한 전승이 전해지는데, 웅치면의 웅점다소와 회천면의 갈평다소가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이들 다소는 고려 후기에 설치되어 조선 전기로 이어진 공납 차 생산 거점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인근 산야에는 지금도 야생 차나무가 남아 있어 문헌 기록과 현장의 식생이 서로를 뒷받침하는 형태를 보인다.


보성군 전역, 특히 문덕면 대원사 주변, 복내면 당촌, 조성면 귀산, 득량면 다전 등지는 자생 차나무 분포가 확인된 곳으로, 그중 '다전'이라는 지명 자체가 차밭을 의미하는 한자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차 재배가 마을 정체성을 규정할 만큼 중요한 생업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문덕면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 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지역에서는 보성 차의 시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원사 경내와 주변 산기슭에는 야생 차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 자생차는 세종실록지리지와 지방지에 나타나는 차 산지 기록과 함께 '오래된 차의 땅'이라는 보성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인근 벌교 징광사지 일대와 득량면 송곡리 주변 역시 자생차 분포 지역으로 언급되며, 이들 공간은 사찰·옛 고을 행정과 연계된 차 문화의 지리적 배경을 보여준다. 자연환경, 불교 사찰, 공납 체제가 서로 겹치는 자리에서 보성 차의 역사가 구체적인 생활문화로 뿌리내렸다고 볼 수 있다.


보성과 고려 시대 명차 '뇌원차'의 관계도 차 문화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뇌원차는 고려 시 무이십팔 조를 올린 최승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 왕이 유족에게 뇌원차 200각과 대차 10근을 하사했다는 기록으로 존재가 확인되는 차이다. 우리나라 차 가운데 이름이 명시된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되는 이 뇌원차를, 현대 보성군은 지역의 역사적 차 브랜드로 재해석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여러 지리지의 기술, 그리고 웅치·갈평 다소의 위치 등을 근거로, 보성에서는 뇌원차가 이 일대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전통 제다법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스토리텔링 차원을 넘어, 고문헌과 지리 자료, 식물 분포를 결합해 특정 역사 차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처럼 차는 보성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제사상에 올리는 차는 청결함과 정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제수였다.『사례편람』(1844)에는 제사상에 차를 올리는 법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보성 지역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사찰에서는 차가 수행의 도구이자 의식의 중심이었고, 선비들의 문화에서도 손님을 맞을 때 반드시 차를 대접하는 "다례(茶禮)"라는 격식 있는 접대 문화가 정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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