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리새우 이야기
아들이 어렸을 적,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책에 적힌 이야기가 아니라, 그날의 기분과 표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였다.
몇 년을 그렇게 이어오며, 우리 부자만의 긴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는 ‘똥벤져스’였다.
아이는 참으로 순수한 존재다.
‘똥’이나 ‘방귀’ 같은 단어에 깔깔대며 웃고,
그 웃음 속에서 세상의 복잡한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 단순한 웃음이야말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엉성하고 말이 되지 않았다.
영화의 한 장면이나 옛날이야기의 파편들이 뒤섞여,
논리보다는 상상으로 엮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감동을 느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반짝였고,
“아빠, 하나만 더!”라며 잠을 미루곤 했다.
나는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을 때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자야 내일 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단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곧 잠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그 이야기들의 구체적인 내용은 잊혀졌다.
다만 ‘칠리새우’라는 이름의 이야기가 희미하게 떠오를 뿐이다.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아들의 어린 시절 일기장에서 그날의 흔적을 찾아
다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 이야기를 읽은 담임선생님이
“아버님은 참 천재십니다.”라고 웃으셨다 한다.
그 말보다 더 큰 칭찬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만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AI라는 도구를 통해 그 잃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계가 이야기를 만든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 다시 ‘관계’가 깨어났다는 점이다.
AI는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되살리느냐는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어떤 이는 그것으로 돈을 벌고,
또 어떤 이는 그것으로 추억을 되살린다.
그 차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이야기는 결국 관계의 예술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따뜻한 시간의 언어이다.
AI가 그 이야기를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게 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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