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

by 리베라

방탄소년단 콘서트의 티켓팅이 있었다. 7명 모두 군대 제대 후 첫 완전체 콘서트이자, 코로나 시기 입덕한 나에게는 첫 오프라인 콘서트다. 올해 4월부터 내년 3월까지의 말 월드투어 일정이 떴다. 해외까지 갈만한 대단한 열정은 아니니, 나는 무조건 투어의 오프닝인 한국 콘서트의 티켓을 잡아야 한다. 너무너무 기다렸다. 꼭 가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에 뜨는 쓰레드에 인기글이 올라왔다. 선예매를 위해 몇 만명이 새로 아미 멤버십 가입을 했단다. 큰일났다. 이런 피켓팅은 처음인데. 제발 내 자리 하나만 있게 해 주세요. 마음이야 다 가고 싶지만, 첫콘을 노린다. 첫콘이 목요일이고, 토, 일 이어지는 3일 공연인데, 몇 년 만의 공연이라 첫콘이 치열할 거다, 지방러와 직장인들이 있어 토요일일 빡셀거다,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나는 무조건 첫콘이 좋다. 셋리를 모르고 가는 상태에서의 설렘과 놀라는 느낌이 좋다.


일찌감치, 인터넷 수신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꽤 성공했으니, 오늘도 핸드폰으로 도전한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손에 땀이 난다. 바로 누를거야. 누를 수 있어. 할 수 있어! 55, 56, 57, 58, 59, 땡! 버튼 위에 손을 가져간 순간 알람 팝업이 떴다. 성경 말씀이다. 오 마이 갓. 매일 4~5번 정도 성경 앱에서 말씀이나 묵상 구절이 오는데, 그게 밤 8시에도 온다는 걸 지금 알았다. 아니, 근데, 왜, 왜, 왜, 지금! 덕질의 기본이 안 되어있다. 에어플레인 모드로 하고, 방해 금지 모드로 하고, 모든 알람을 다 껐어야지. 알람을 저리 밀고, 버튼을 누르고 누르고 누르고 들어가니 세상에, 내 앞에 9만명, 현재 총 대기 인원은 17만 명이다. 이게 뭔 일이냐. 처음 보는 숫자다.


줄어드는 속도를 보니 한 4~5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튕길 수도 있으니 맘 놓고 딴 짓을 할 수도 없다. 덕질을 위한 무슨 커뮤니티나 SNS가 없는 나는, 이럴 때 정보를 얻을 데가 없다. 방탄소년단 갤러리를 들어가봤더니, 여기는 팬들이 안 노는 곳인가 보다. 방탄소년단 더쿠를 검색했다. 상황을 공유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티켓팅 성공한 덕 있어?’, ‘첫콘 그라운드 자리 아직 있어?’ 나도 궁금한데. 들어가봤자 나는 가입이 안되어 있어 댓글 답변도 못 본다. 라이트 덕의 비애다. 그래 어차피 나는 사운드체크 갈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도 2층은 가고 싶은데. 바로 들어갔으면 4,5만번 대는 되었을텐데. 젠장. 20분이 훌쩍 지나서야 성공한 사람이 나왔다는 글이 한 두개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다.




나의 첫 콘서트는 스맙이었다. 나의 일본어 선생님인 기무라타쿠야 아저씨가 있는 일본의 전설적인 아이돌 그룹. 아저씨의 드라마를 보며 일본어를 배웠고, 그러다 스맙 노래를 흥얼거리며 또 일본어를 배웠고, 그렇게 일본어를 공부하다 만난 언니들과 콘서트에 갔다. 꽤 오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고, 마침 그 기간, 도쿄에서 콘서트가 있어 언니들이 나의 먼슬리 아파트먼트에 묵었다. 그 당시 파미쿠라, 즉 팬클럽만 티켓팅이 되었었나 그래서, 일본 주소가 없는 우리는 가서 뭐 새로 가입하고 뭐하고, 그래도 티켓팅이 안되어서 도쿄돔 앞에서 티켓을 구하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있다.


5만 5천명의 관객이 모인 도쿄돔에 들어가 아저씨 우치와를 들고 한참을 들떠있었다. 공연장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5만 5천개의 불빛이 반짝이며 함성이 나오던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압도적인 에너지. 눈 앞에 펼쳐지던 광경뿐만 아니라 그 순간 몸에 전해진 전율까지도, 생생하다. 사실 무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언니들은 우리 앞 토롯코에 누가누가 왔는데, 너무 잘 생겼다며 최애가 바뀌었다 난리였는데, 나는 감흥이 없었다. 그저 그 에너지. 오만 오천 명이 쏟아내던 그 에너지. 스맙 덕심이 생겼다기 보다 콘서트 덕심이 생겼던 걸지도 모른다. 여튼 갖가지 덕심이 높아진 우리는, 결국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를 외치며 다음 날 티켓을 구해 또 갔다. 일본어로 오라스, 막콘인데 가야지. 워낙 오래 전이긴 하지만 그 날의 무대도 기억에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나에겐 스맙보다 오만 오천 명의 불빛이 더 각인되었음에 틀림없다. 예술과 함께하는 비 일상이 우리의 일상에 힘이 되고 쉼이 되기를 바란다는 개똥철학과 함께 연기를 하겠다던 나에게, 이게 내가 말하는 낙이야!를 증명할 수 있는, 처음 만난 가장 거대한 순간이었던걸까. 그 해의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집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한달 반 만에 끝났다. 결국 나는 워킹홀리데이 가서 스맙콘만 간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좋았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될 수도 있었는데, 콘서트가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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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방탄소년단 첫째인 석진이의 앵콜 솔콘에 갔다. 솔콘 땐 하는지도 몰랐다. 열심히 덕질하지 않는 자의 업보다. 어쩌다 앵콜 콘은 우연히 포스터를 보게 되어서, 이건 가야해! 하고 혼자 갔다. 역시 스타디움이 좋다. 큰 공연이 짱이다. 우리의 석진이는 저 멀리 콩알 만하게 보여도, 앞뒤양옆의 아미들과 아미밤을 흔들며 신나게 놀았다. 일본, 대만, 미국, 세계 곳곳에서 온 아미들이 주섬주섬 포토카드 같은 것과 젤리도 줬다. 귀엽다. 각기 다른 억양의 영어로 어디에서 왔니, 내일도 오니 얘기하는데, 너무 귀엽다. 어설픈 한국어로 떼창을 하는데, 너무 너무 귀엽다. 역시 덕후들은 귀엽다. 신나게 놀았다. 끝나고 게이트를 나오는 아미들의 볼이 모두 핑크빛이다. 아이스하키를 할 때보다 10배 정도의 도파민이 쏟아진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숫자가 빨간색으로 바뀌고,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첫콘, 막콘 고민하다가 원래대로 첫콘으로 돌진한다. 2층 몇 구역을 누르는데, 그나마 남은 한, 두 자리마저 누르는 족족 이선좌를 당해버렸다. 몇 구역 더 돌다가 과감히 3층을 눌렀다. 여기 시야제한 없을거야. 오히려 잘됐어. 남은 자리 중 제일 앞자리를 눌렀다. 가자가자. 결제까지 튕기지 않고 가야 안심할 수 있다. 카드결제 확인. 예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세상에. 간다. 가긴 간다. 하나님 석이지만 가긴 간다. 2층이나, 3층이나 어짜피 다 거기서 거기야. 4만 명 불빛의 에너지를 느끼며, 아미들과 신나게 놀거다.


일단 성공했으니 한숨 돌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예매 대기는 걸어두고, 8시 정각에 뜬 성경 메시지를 열어본다. 마태복음 17장 20절. 너무 강력한 기억이라 글을 쓰는 지금도 외우고 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다는 유명한 말씀이다. 아니, 하나님은 도대체 이 타이밍에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자리 상관없어, 내 자리 하나만!을 외쳤으니, 믿는대로 된 것 같긴 하다. R석이 아니라 S석이 되었으니 2만원 아꼈다. 맛있는 거 사 먹어야지. 신나는 기다림으로 몇 달을 살 수 있다. 못할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한 막장 드라마 작가님은, 죽고 싶은 사람이 내일의 드라마 내용이 궁금해 죽지 않을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했다. 티켓팅을 하는 이 한 시간 마저, 과거 시간 여행까지 보내 나에게 즐거움을 줬으니, 우리 탄이들은 참 복 받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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