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하루 (2)

by 리베라

동생이 하늘나라로 가고 나서, 이 곳을 찾은 적이 몇 번 있다. 두 번은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가 몸이 좋지 않아 진료할 곳을 찾다가, 마침 여기에 좋은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오게 되었다. 본관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곳곳에 동생이 보였다. 엄마도 나와 같은 얘기를 했다. 같이 가던 편의점, 밥을 먹던 푸드코트, 수술 끝나기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의자, 담요를 덮고 쪽잠을 자던 응급실 앞 소파, 물물교환하듯 짐을 주고 받으며 안부를 묻던 병동 엘레베이터, 동생이 타던 휠체어, 전부 다 보였다.


그렇게 다시 병원에 왔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좋았다. 여기 다시 오면 막연히 슬프고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편안했다. 따뜻했다. 매일 지나는 동네, 집 앞 카페, 산책길. 곳곳에 다 동생과의 추억이 있는데, 왜 굳이 아픈 모습일 때의 이 곳이 이렇게 특별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혼자서 한 번 찾은 적이 있었다. 마침 근처에서 스케줄이 끝나고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비었는데, 그냥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로비 의자에 한참을 있다가 푸드코트로 갔다. 함께 먹던 미역국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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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이 먹었던 미역국이다. 대학병원 푸드코트라고 해서 환자들을 위한 유기농 건강 식단만을 파는 것도 아니고, 사실 가격에 비해 그렇게 맛있지도 않다. 살기 위해 먹었다. 눈물이 나도 꾸역꾸역 먹었고, 얼른 먹고 교대를 해야하니 먹었고, 동생도 저렇게 애를 쓰는데 내가 힘을 내야지 생각하며 먹었다. 마지막에 2주에 한 번씩 항암을 하러 오던 때는, 동생이 구토 방지제 약도 미리 먹어야 하고, 하루 종일 항암 주사를 맞으려면 버텨야 해서, 얼른 내 입에 음식을 넣고는, 동생에게 한 술, 한 술 천천히 떠 먹여 주곤 했었다. 참 착한 동생은 주는대로 잘 먹었다. 집에서 먹지 않던 라면을 먹은 적도 있다. 많이 먹지도 못해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이었는데도 참 맛있게 먹었다. 엄마가 가끔 얘기한다. 네가 옆에서 하나하나 면을 숟가락에 올려 떠먹여 주는데, 동생이 아기가 된 것처럼 누나가 먹여주는 걸 너무 잘 먹었다고. 유독 그 라면 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자주 생각난다고.


혼자 병원을 찾았던 날, 미역국이 맛있었다. 이상했다. 그나마 그 중에 괜찮았던 메뉴지만 맛 없었는데, 이상하네. 동생이 좋아하던 봉골레 파스타 집이 있었다. 너무 좋아해서 연달아 두 번을 간 적도 있다. 동생이 떠나고 몇 달 뒤, 혼자 파스타 집을 찾았다. 세상에, 그렇게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이건 기분 탓이 아닌데, 정말 맛 자체가 없는데! 싶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래서 신기했다. 왜 이 병원 미역국이 맛있는거지. 참 알 수 없다. 오늘은 다른 메뉴를 시켰다. 역시나 자주 먹던 온반이다. 약간 육개장처럼 칼칼한데, 너무 맵지는 않아서 속이 답답할 때 자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데 맛있네. 뭐지. 운동하고 나와서 그런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동생이 없으니, 함께 맛있게 먹던 음식이 맛이 없고, 동생과의 기억이 있으니, 맛없게 먹던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겠지. 다 너로 인해 맛이 바뀐다, 그치. 빵집에 들어가 같이 먹던 빵을 샀다. 다른 빵은 보지도 않고 이 빵을 산다. 가지고 가면 엄마, 아빠가 동생 생각난다며 좋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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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커피를 한 잔 사서, 로비에 앉았다. 주말이라 진료 보는 분들이 없어 한산했다. 병원에 오면 참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늘 생각한다. 기도한다. 나는 병을 낫게 할 수도 없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이라 당신들을 위로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더 많이 웃길. 오늘의 진료 결과가 좋길. 오늘 들어가는 항암제가 잘 듣길. 덜 지치길.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더 오래 함께하길. 오늘도 당신들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길.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뭐 하나 효율적이지 않아도, 함께하는 그 하루가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온 마음으로 느껴주길, 나는 기도했다.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맞다. 일상이 아닌 하루였다. 네가 특별한 날의 등장인물이 되었다는 게 여전히 꿈같을 때가 있다. 신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스케이트를 타고, 떠난 너를 생각하며 병원에서 밥을 먹었다. 글로만 봐도 아이러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오래 전부터 머리속에 둥둥 떠 다닌다.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들이 끊임없이 쌓여가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러기엔 너무 짧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쓰기로 했다. 모임에서 권력 의지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번뜩했다. 두려움이고 용기고 뭐고 다 저리 치우고, 그냥 선포하자. 그리고 하자.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르겠지만, 괜찮다. 그러니 쓰자. 이번 주부터 실천해 본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 본다. 이번 주에도 아이스하키를 하러 갈 거고, ‘엄마야’ 외치면서 미끄러지고 넘어질 거고, 끝나고 신나게 밥도 먹을 거고, 매일 아침 핸드폰에 뜨는 1년 전 네 사진도 볼 거고,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잠도 잘 잘거다. 그리고 또 쓸거다. 그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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