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하루 (1)

by 리베라

큰 운동 가방과 스틱을 들고 집을 나섰다. 중형 캐리어보다도 큰 가방에 오늘도 또 끌려간다. 무겁지는 않은데 아직 익숙하지가 않다. 나를 아이스하키의 세계로 끌어당긴 동료 언니가 미니 링크를 1시간 대관했다며 너도 와서 타, 라고 해서, 바리바리 짐을 챙겨 가는 중이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저 문장을 보고 있자니 내가 써놓고도 웃기다. 작년부터 동료들이 여러가지 운동이며 춤을 추천해 줬다. 풋살, 테니스, 훌라. 다 너무 매력적이긴 했다. 예전에 했던 탱고를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면 너무 멋있고 예쁜데, 막상 나는 스케줄이며 이동 거리며 여러가지 고민이 된다는 핑계로 선뜻 결심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스하키를 만났다. 동료 언니가, 너무 좋은 스포츠라며 체험을 한 번 해 보라고 꼬셨다. 나를 밖으로 꺼내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활기를 찾아주려는 따뜻한 마음들이 참 고맙다. 그렇지만, 아이스하키라니. 어릴 때 롤러스케이트 한 번 안 타봤던 내 인생에, 아이스하키라는 단어가 들어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원래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말 나온 김에 바로 하자! 해서, 얼떨결에 바로 다음 날 링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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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착용하는 장비만 도대체 몇 가지인지. 처음이라 혼자 입지도 못해 코치님이 하나하나 다 입혀 주셨다. 이걸 다 몸에 짊어지고 운동을 한다니. 자 링크로 들어가세요, 라고 하는데, 아니 이 날카로운 스케이트를 신고 저길 어떻게 밟아요, 세상에. 스틱은 두고, 펭귄 인형을 잡고 일단 들어오란다. ‘엄마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얼음 위에 미끄러지는 순간 알았다, 나 이거 하겠구나.


한 시간 반 동안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혼잣말을 해 댔는지, 끝나고 나니 팔, 다리는 둘째 치고, 목이 아팠다. 아니, 내 마음대로 안되고 얘가 혼자 어디로 계속 가는걸 어떡해. 물론 얘가 나다. 코치님 외에 아무도 떠드는 사람이 없는 링크에서, 반대쪽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베테랑 동료들을 즐겁게 만들어 버렸다.


차가운 빙판 위에서 움직였는데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장비를 벗는 데만 또 한 세월이 걸렸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나 보니, 허벅지와 엉덩이가 아플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살겠다고 어찌나 그 펭귄을 붙잡고 사투를 벌였는지 양 팔이 끊어질 것 같더라. 그런데 그냥, 하고 싶었다. 링크를 들어가는 순간, 나는 어린아이가 됐다. 모든 것이 다 신나고 재미있는, 첫 걸음마를 하는 아기가 됐다. 소리소리 지르는데 계속 웃고 있었다. 넘어져도 웃었다. 뭐 더 필요한가, 그럼 됐지. ‘아이스’에 적응해서 ‘하키’까지 가려면 멀었지만, 그건 또 그 때 가서 하면 되지. 더 재밌을 거 아니야, 팀 스포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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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했다.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 접근성, 이동성을 두고 가장 효율적으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걸 찾다가, 모든 면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걸 시작해 버렸다. 그렇다. 가장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활동이 제일 멋진 걸 만들어 낼 때도 있고, 가장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 최고의 선택일 때도 있다. 아니, 많다. 지속성은 내 마음이 만드는거지 효율성이 만드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얼른 걸음마를 떼어야 민폐를 덜 끼치지 라는 마음으로, 개인 연습을 하러 미니 링크를 찾았다. 한 시간 내내 움직였더니 느낌을 조금 알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하고 나면 에너지가 올라와서 좋다. 아마 링크를 나오는 내 얼굴에서 환한 빛이 나왔을 거다. 이런 운동이 너무 오랜만이다. 건강을 위해, 근력을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하는 운동 말고,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운동.


언니네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갈 데가 있다고 말했다. 어딜 가냐고 해서 이러저러하다 얘기했더니, 얼른 조심히 가고, 밥 꼭 챙겨먹으라고 해 준다. 언니, 고마워. 가방을 끌고 큰길로 나왔다. 오늘 대관한 링크 주소를 볼 때부터, 나는 이미 오늘의 계획을 짰다. 내가 아는 동네다. 아주 익숙하다. 자주 가던 식당, 편의점, 약국.


그리고 이제 보인다. 동생과 함께 있던, 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