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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기진맥진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뭐 어때'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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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치면서 살아간다.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직장 동료들, 자주 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매표소 직원, 가끔가다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동네 친구들, 퇴근길에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우리가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과 우리의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사정거리 안에서 더없이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가 멀어지는 순간 이내 타인이란 이름이 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맞닥뜨리면서 살아가지만 그들 모두와 친구가 되지 않는다. 지금보다 한참 어릴 때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곤 했다. 엄마의 친구가 집에 데려온 생면부지의 아이와도 장난감 하나면 금방 친해졌고, 별다른 공통분모 없이도 함께 술래잡기를 하면서 뛰어노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나이.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기 시작하니 인생의 무게는 점차 늘어나는데,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공유하고, 일상에서 일어난 이슈라면 뭐든 재잘대기 바빴던 이십대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삼십 대. 어떤 날은 그때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옛 친구에게 전활 걸어보지만 '너도 이제 어딘가에 정착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현실적인 조언 앞에서 다시 이질감을 느끼고 만다. 머리로 알고 있는 문제들을 남의 이야기, 그것도 나의 지난날들과 과오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건 고통스럽다. 그리고 더러 수치스럽기도 하다.
물론 현실적인 조언을 싫어하지 않는다. 들을 땐 고통스럽지만 그런 말들은 현실에서 유리되어 공상의 세계를 유영하는 나 자신을 다시 현실로 끌고 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지 강구하게 만든다. 현실감각이 없는 내게 꼭 필요한 조언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가끔은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망하면 뭐 어때'라는 말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세상은 그리 쉽게 망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내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해낼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사회가 내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주변의 기대 그리고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숨이 가쁠 때 나는 이런 말들을 필요로 한다.
잘 안되면 뭐 어때.
약하고 형편없으면 뭐 어때.
가끔 게으르면 뭐 어때.
차이면 뭐 어때.
작심삼일을 반복하면 뭐 어때.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면 뭐 어때.
그저 그런 날들의 연속이면 뭐 어때.
너가 너 자신으로 살면
뭐 어때 라는 말들을.
사람은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모두 같다. 현실적인 조언보다 '뭐 어때'라는 말로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압박감으로부터 우리의 자아를 잠시 해방시키길 원한다. 무심하고 때론 대책 없어 보이지만 상냥한 그 말속엔 약하고 형편없는 나 자신이어도 괜찮다는 말이, 내가 나 자신으로 있어도 된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말해주는 누군가와 기꺼이 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