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두 마리와 인간 노예 한 마리의 동거 이야기.
글. 전업 고양이 노예, 부업 월간 MAXIM 편집장 이영비
실린 곳. <빅이슈> 173호.
쿠억 쿠억 꾸에엑. 내장이 뒤틀리는 그 소릴 들으면 내가 다 괴롭다. 오늘 아침에도 재롱이가 시원하게 구토를 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재롱이가 현관 앞에 자세를 잡더니 요란한 소릴 내며 토한다. 맘이 쓰이지만 이거 치우고 나가면 지각이겠다 싶어 휴지로 대충 덮어 놓고 나왔다. 현관문을 닫으며 집안을 보니 백호와 재롱이, 두 고양이가 따뜻한 곳에 각자 자릴 잡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추운데 어딜 나가? 우리와 뜨끈한 아랫목에서 등과 배를 지지자.’ 너네 밥값 벌러 나간다.
고양이와 산 지 9년. 내 첫 애묘의 이름은 ‘꾸’다. 암컷 러시안블루인데 다리가 짧고 몸집이 작은 것이, 회색 털 베게에 작은 발 4개가 붙은 것처럼 생겼다. 꾸는 지금 광주 고향집에 내려가 부모님의 동거묘가 되었다. 참고로 고향집엔 초롱이(샴 수컷), 새롬이(페르시안 암컷), 꾸까지 총 3마리의 고양이와 인간 6마리가 동거 중이다.
나도 부모님처럼 고양이를 좋아한다. 서울 내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재롱이는 물을 좋아하는 아비시니안 수컷냥이다. 샤워할 때 따라 들어와서 졸졸 흐르는 물을 손과 혀로 받아먹는 걸 좋아한다. 얼굴 털 젖는 줄도 모르고 음수 무아지경에 빠진 재롱이를 보면 귀여우면서도 애잔하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계속 물을 틀어주지 못해서.
재롱이는 처음 보자마자 반했다. 머리가 작고 다리가 늘씬해서 전체 비율이 좋고, 조그만 머리통에 오밀조밀 이목구비가 들어있다. 이 외모를 인간계로 따지면 공유쯤? 애교도 많다. 앵알앵알 말을 걸면서 뒤따르거나 나랑 박자를 맞추어 총총 걷기도 하고, 틈만 나면 이마 박치기로 애정표현을 하는 무릎냥이다. 재롱이는 나의 4년차 동거묘다.
반면 백호는 시크하고 조용한 수컷 러시안블루다. 진한 먹색 털에서는 언제나 윤기가 흐른다. 머리통이 크고 시원하게 잘생긴데다 힘도 좋고 머리도 좋다. 화장실 문은 물론, 집안 모든 서랍장과 베란다 문까지 연다(고양이는 인간의 행동을 눈으로 관찰해서 학습하는 정도의 지능이 있다). 백호는 점잖지만 호기심과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한다. 이름이 ‘백호’인 것은 내가 만드는 잡지의 ‘100호’를 만들 때 녀석과 동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마감 중인 잡지가 178호니까, 내가 이 녀석과 함께 산 지는 이제 78개월, 6년 반이 훌쩍 넘었다.
다행히 우리 냥님들은 대체로 얌전하시다. 선반에서 뭘 떨어트리거나, 가스 불 같은 위험한 것에 가까이 가는 일이 없다. 저지레를 치긴 한다. 신발에 토하는 건 사실 양반이다. 몇 년 전, 방광염으로 고생하던 백호가 소파를 포함한 집안 곳곳에 소변을 찔끔거리는 바람에 침대와 소파를 2개나 내다버렸다. 그래서 나는 집에 접이식 캠핑의자를 두고 산다. 불쌍한 나.
백호는 옷 욕심이 많다. 어쩌다 바닥에 옷이 떨어지면 꼭 그 위에 앉아서 복슬복슬 털옷을 만들어준다. 종종 서랍장을 열고 들어가 그 안에 개둔 옷들에 전부 털로 도배를 해놓는다. 민둥민둥 털 없는 인간이 짠해서일까. 어쨌거나 나는 두 고양이 덕에 옷을 일회용으로 한 번 입고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맘에 드는 옷을 봐도 고양이털 붙은 모습을 상상하면 그냥 내려놓게 된다. 고양이 키운 이후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회색 진짜 좋아하시나봐요!” 아니요. 고양이랑 깔맞춤 한 겁니다.
혹시 고양이를 키우고 싶거나, 키울 계획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내가 앞서 말한 모든 일들이 당신에게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찾아올 것이며, 그 저지레는 당신의 기분과 컨디션 따윈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고양이털만큼은 도대체가 피할 길이 없다. 나는 하루에 청소기를 최소 2번 돌리고 물걸레질을 1번 한다. 24시간 공기청정기를 돌리고 필터도 기본 권장 주기보다 자주 간다. 일주일에 1번은 가사도우미를 불러 대청소를 한다. 다 소용없다. 그렇게 해도 털은 어디에나 있다. 바닥에, 물컵에, 옷에, 신발에, 화장품에, 내 몸에... 개운하게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간지러워서 보면 얼굴에 가느다란 냥털이 옮겨 붙어 있다. 맥주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캔에도 붙어 있다. 지금 키보드를 치고 있는 이 순간, 오늘 출근할 때 입고 온 바지에도 가느다란 냥털이 붙어 흔들리고 있다.
긴 홀로 서울살이. 사람에게 치이다 보니 어느새 건조하기 짝이 없는 시니컬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남을 안심시키는 억지웃음, 영업용 미소 말고 진심으로 즐거워 웃은 순간이 한 달에 몇 번 없던 때도 있었다.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해질 무렵,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 손잡이, 건물 화장실 문고리, 공용 물건을 맨손으로 못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키보드와 마우스에 누군가 손을 대면 소름이 돋았다. 그리 깔끔 떠는 성격도 아닌 내가 신경질적으로 티슈를 뽑아 뭔가를 박박 닦고, 내 피부가 닿지 않게 공용 손잡이를 휴지로 감아쥐고, 손 청결제를 강박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변했다. 매일 모래에서 ‘맛동산’과 ‘감자’(냥똥과 소변이 굳은 모래가 비슷하게 생겨서 애칭으로 부르는 말)를 삽으로 푸면서 주병선의 ‘칠갑산’을 흥얼거린다. 밥 먹다 입 주변에 고양이털이 붙어도 허허 웃는 사람이 됐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이 냥털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애초에 싸우지 않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나는 패배를 인정했다. 녀석을 가장 녀석답게, 아름답게 만드는 털이니까. 고양이와 살면서 도망치지 않고 견디는 법, 완벽하게 지는 법을 매일 배운다. 이 생명체가 가진 외적인 귀여움, 아름다움만을 누릴 생각이라면, 냥과의 동거를 절대 추천하지 않겠다. 응가도, 토사물도, 저지레도 안아야할 숙제다. 심지어 영원히 풀지 못할 ‘털’ 같은 난제도 있다. 그래도 사랑하겠다면, 도망치지 않는 법과 잘 지는 법, 이 두 가지를 배우고 싶다면 당신도 나만의 고양이를 찾아보라.
연애나 사회생활도 비슷하다.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일은 쉽지 않다. 행복,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만난 대상이라 해도 서로 참을 수 없는 지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갈등하고 부딪히거나 협상하려 노력한다. 요즘은 힘든 감정을 붙들기보다는 쉽게 도망치고 차단하는 것에 더 능한 사람이 많다. 비겁하고 씁쓸하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를 준다. 김밥에서 소시지만 골라내듯 좋은 감정만 쏙쏙 취할 수는 없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 하던가. 좋은 관계를 위해 내가 먼저 잘 지는 법, 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두 눈에 신비로운 우주를 담고 있는 이 녀석들과 함께 살기 위해 매일 나는 내 세계를 무너트리고 경계를 뭉개는 중이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는 더 크고 신비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깊어진다. 퇴근 후 재롱이 토사물을 치울 생각을 하니 암담하지만, 그래도 역시 고양이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