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7화> 문뜩, 형아인줄..

by 김영


히치하이커


11월의 셋째 주, 베란다에서 집밖으로 시선을 돌린 날, 그날이 있기 전까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무탈한 날이 반복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이제는 인간의 목소리에 오히려 안정감을 찾고, 인간의 손을 타는 것을 자연스레 여긴다. 인간의 냄새를 떨치려고 몸 구석을 정신없이 핥기보다는 엉클어진 털을 가다듬었다. 그들의 미끈한 얼굴과 손, 서있는 모습도 놀랍지 않다. 그동안 그들과의 동행에 신경을 쓴 건 맞다. 천방지축으로 나대지도 않고, 수줍어하지도 않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역동성보다는 지속성에 중심을 두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히치하이커를 생각해 봐라. 딱 내 처지이다. 어렵게 차를 얻어 탄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운전자는 어색함과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으나 말썽을 피우거나 탐탁지 않으면 태운 것을 후회하고 결단을 내린다. 운전자의 비위를 맞추고 매력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매력도 퇴색된다. 히치하이커 입장에서는 이 동행이 얼마나 갈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작은 숲 28번 길


그날 나의 기억은 멱살을 잡힌 듯이 4개월 전의 작은 숲으로 끌려갔다. 왜 그 순간 그때 일이 기억났는지는 모른다. 인간들은 '별일 없었어?'라는 질문에 '별일 없다'라고 말하고, 걸핏하면 '날씨가 좋네요'라는 거짓말을 한다. 세상은 하루라도 별일 없는 날이 없고, 그 무렵은 느긋한 고양이라도 견딜 재간이 없는 날씨였다. 여름은 여름이었다. 한 여름에 털옷인 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모피를 입고서 활활 타오르는 난로가에 있는 거다.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집사들이 있는데 그건 털옷 입고 샤워하는 거다.


어쨌거나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언젠가 아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준 이야기이다. 잊을 만하면 괴조가 날아들어 불길한 소리로 울고는 기억의 상처를 쪼아댔던 이야기이다.


진통은 밀물처럼 덮쳐왔다가 썰물처럼 쓸려갔다. 새끼는 어미 배 속에서 세차게 몸부림치며 '태어나고 싶어, 날 꺼내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진통간격은 짧아지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은 격렬해졌다. 드디어 새끼의 모습이 보이자 배에 힘을 주었다. 뭔가 물컹하며 서서히 미끄러져 나왔다. 형아는 별 탈 없이 나왔다.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끈적끈적한 투명한 점막에 싸여 있다. 눈을 감은 채 꼼지락거리는 새끼를 핥아서 막을 제거하고 탯줄을 끊고 태반을 먹었다. 새끼는 첫 숨을 뱉어냈다. 한 생명이 태어났다. 어미는 생전 처음 겪는 일을 능숙하게 효율적으로 했다. 그러고 나서 셀로판 같은 막에 둘러싸인 내가 모습을 보였다. 머리가 아니라 다리부터 보였다. 어미는 미끈거리는 뒷다리를 입으로 조심스레 당겼다. 잘된다 싶었을 때 머리가 걸렸다. 근육의 이완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어미는 난리를 쳐댔다. 다행스럽게도 별 탈 없이 끝났지만 그 과정에 어미는 힘이 빠져 정신이 반쯤 나갔다. 그것으로 끝난 듯 보였다. 뒤늦게 어미의 배가 다시 움직였다. 새끼 한 마리가 더 나오려고 한다. 몇 시간 동안 자궁에 있었다면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 어미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하고 허여멀건한 미끈한 것을 쏟아냈지만 숨을 쉬지 않았다. 어미는 불안한 듯 갓 태어난 새끼를 계속 핥고 또 핥았다. "아가야, 힘을 내렴. 너는 할 수 있어!"라고 울부짖으며 핥았다. 동생은 끝내 첫 숨을 토하지 못했다.


아비는 지친 어미와 우리 형제를 뒤로 하고 축 늘어진 동생을 입에 물고 더벅더벅 멀어져 갔다. 사위가 잔뜩 흐린 하늘에는 배 불룩한 먹장구름이 머리 위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은 떠들썩한 비들의 무리였다. 연신 구역질을 해내는 듯한 소낙비는 구르는 수은처럼 지표 위를 튕기며 흘렀고, 사나운 빗방울에 초록 잎들은 떨어져 웅덩이 여기저기를 떠다니고, 녹갈색 흙과 회갈색 나무줄기는 빗줄기로 거무죽죽했다. 아비는 나무사이에 동생을 잠시 내려둔 채 젖은 흙을 파기 시작했고 동생을 그 자리에 눕히고 젖은 흙과 나뭇잎을 미친 듯이 덮고 어디론가 정신없이 뛰어갔다.


나무 위에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는 미동 없는 차가운 시선이 있었다. 아비가 자리를 비운 후 지상으로 날씬한 몸을 내리꽂아 먹잇감을 낚아챘다. 날카로운 발톱에 잡힌 사체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한참 동안 고개를 주억대더니 주위를 으스대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올라갔다. 검붉은 흙과 나뭇잎들이 들썩이고 빗방울이 튕겨졌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어미는 집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횅하니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온 어미의 탐스러운 털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혹시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식의 흔적을 찾아 헤맨 듯하다. 어미는 이웃들과 대화도 꺼렸다. 한때는 주변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뿐만이 아니라 대화를 주도한 적도 꽤나 있다.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낯설고 어색함을 버티기 위한 유머도 사라졌다. 호기심에 찬 이웃들은 어미가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어미는 '내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럴 순 없어.'라는 말을 간혹 되뇌었다. 가느다란 목소리에는 절망감, 불안감, 무기력이 스며 있었다. 적어도 내가 듣기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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