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도 일어나네..'

< 11화> 재회

by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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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를 잡으려는 계획이 연신 헛발질하던 차, 이해불가한 일이 생겼다. 바깥은 뼈를 애는 엄동설한이었지만 실내는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비껴 들어왔다. 정신은 흐릿해지고 피곤이 몰려들었다. 희미한 의식이 자유롭게 허공에 풀어질 무렵,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소리의 행방을 찾아 무심코 형아집사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별일이 일어났다. 삼촌집사의 품에 생쥐가 아닌 고양이가 버젓이 앉아있는 게 아닌가? 한번 생각해 봐. 서둘러 퇴근했는데 집구석에 낯선 남정네가 와이프랑 다정하게 있다면 어떨까? 내 영역에 함부로 들어온 고양이의 뻔뻔함은 둘째 치고, 배알도 없는 집사의 처신에 가슴이 뜯겨나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이해하기 힘든 게 인간의 심리이지만 삼촌집사는 내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나는 유령이 아니라고! 살과 뼈와 영혼을 엄연히 가진 고양이라고! 아무리 정신이 팔려도 그렇지 나를 보려 하지 않는 건 뭐야?'


내가 별난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공간에 낯선 이가 있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리고 상대방도 그런 것을 감지한다. 큰 싸움을 벌일까도 생각했지만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은 아는 척부터 하고 가능한 한 빨리 그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근데, 스치듯 지나가는데 고양이가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에서 마주쳤던가를 생각해 보다가.. 혹시 형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린 꼬리를 보고 확신했다.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 맞다, 형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형아는 자세를 바꾸어 앉았고 나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아의 얼굴에도 어떤 표정이 스쳐갔다.


그 순간은 재회한 기쁨만이 아니라, 안타까움, 슬픔, 원망, 그리움등이 가슴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투명한 눈물이 눈에 고였다.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아, 오래간만이야!" "응, 반가워!" 생이별을 한 후 다시 만났는데 고작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우스꽝스러웠지만 그것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애써 태연하게 말하려는 모습 속에 서로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건 형아집사가 설연휴 동안 여행을 가는 이유로 잠시 맡긴 거였다. 형아와 나는 하루가 지나서야 예전처럼 치고, 받고, 깨물고, 뛰고, 틈만 나면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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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주 보고 자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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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방향을 보고 자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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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붙어서 자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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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자세로 자기도 했다. 그냥 먹고 자고 또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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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밝은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순간도 있었다. 내심 형아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길 바랐지만, 그런 말은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칭칭 붙들어 매는 것이 있다는 걸 안다.


형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생각하는 거니?" 형아는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어냈던 거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손을 내둘렀다. 말하고 싶었고 묻고 싶은 게 있었긴 했지만 목안의 덩어리 같은 것을 도로 삼키었다. 이제 곧 헤어질 건데 힘든 과거 얘기를 해서 무엇하나 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마음은 원했지만 의지로 할 수 없는 말도 있다. 형아는 "네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어떻게 아는지는 설명을 할 수 없어도 알 수 있는 게 있어." 형아의 많은 감정이 실린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니 손발이 꼼지락거리며 내 몸에 따뜻한 것들로 채워지고, 내 몸에 얼어버렸던 결정들이 녹아 흐르는 듯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옭아맸던 것들이 한 올 한 올 풀리는 듯한 해방감이었다.


며칠이 지난 오후, 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원래의 자리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다. 형아와 나는 창가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기울면서 근처 건물에 햇빛이 닿아 반짝이고 나무에 닿는 햇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나른하고 아름다운 오후였다. 우리의 얼굴에는 뭔가 막연하긴 해도 평온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적어도 예전 헤어지는 순간처럼 차갑게 말라붙은 공포와 좌절은 없었다. 내 몸속에서 따뜻한 전율이 일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20230120_155009[1].jpg "형아!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20230120_154700[1].jpg "그래, 너도 힘내고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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