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밥 값은 해야지!'
빨간빛 (그들의 반격)
나에게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까짓 거, 집사들이 바라는 행복을 맞추어 주지, 뭐'라는 마음과 '조금 멋대로 굴면 어때? 세상이 두려워 행동하나하나를 재는 거보다 나아!'라는 마음의 다툼이 일어났다. 마치 설탕물에 개미들이 득시글득시글 대는 듯, 내 영혼에 성가신 생각의 다툼들이 개미들처럼 들러붙었다.
이런 나의 애틋한 마음도 모르고 그들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일을 또 하나 이야기하겠다. 이건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어느 날 누나집사가 스위치가 달린 낚싯대 같은 것을 가지고 다가왔다. 드디어 나와 놀아줄 거라 한창 기대를 했다. 근데 말이야. 누나집사가 스위치를 누르자 앙증맞은 빨갛고 따뜻한 불빛이 바닥에 생기다가 1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에 사라졌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그 빨간 불빛은 어디로 사라졌나를 생각하는데 벽에 그 앙증맞은 따뜻한 불빛이 나비처럼 사방으로 휙휙 날아다녔어. 그리고는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순간이동하더라. 나는 불빛이 나타날 때마다 불빛을 향해 껑충 뛰어올랐어. 근데, 빨간 불빛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집사들은 재밌다고 깔깔, 껄껄, 호호 거리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깐 몸을 옴츠리고 그 생명체의 출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체를 향한 인내심이 필요할 때다. 그리고 약간 흥분도 되었다. 나 말고 다른 생명체를 찾아다녔는데 바로 때가 온 거다. 그 미지의 생명체와 소통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때 다시 나의 발치에서 깜박거리더라고. 그래서 "야옹!(도망가지 말고 이야기 좀 나누어옹!)" 거렸어. 또 사라졌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타나면 기필코 잡아버린다고. 근데 몇 번 마주쳤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처참했다. 마냥 그것을 따라다니며 팔다리를 크게 휘둘렸는데 잡았다 싶으면 사라졌다. 얼마나 허무하던지.
근데, 이 모든 것이 사기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낚싯대로 놀아주는 것도 귀찮아 이제는 레이저 불빛으로 나를 농락한 거다. 매번 빨간 불빛에 농락당하는 모습을 낄낄대며 즐긴 거다. 근데 나도 모르게 불빛을 보면 이상하게도 달려들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웬만한 의지를 발휘해도 매번 농락당한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새 생명체와 소통하려고 했다니. 결국에는 나를 가지고 논거다. 실없는 고양이로 만드는 거 한 순간이더라. '이렇게 모욕을 주어서 그들이 얻는 게 무엇일까?', '나를 조롱해서 남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이 식물처럼 자라다가 아, 하고 내 머리를 쳤다. 아, 그렇구나! 하고 다시 한번 내 머리를 쳤다.
결심
그들에게도 바라는 게 있었던 거다. 이제 그들과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자만하고 방심한 것이 나의 치명적 실수였다. 내 입장에서는 불모지대에 혼자 들어와서 삽과 가래로 땅을 일구고 거름을 주면서 여기까지 경작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세월만 축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다. '이 놈은 먹고 자는 것만을 하지, 밥값을 할 생각을 안 하네'라고 생각했던 거다.
드디어 방향을 잡았다. 헷갈릴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집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쥐를 잡아다 바쳐야 된다. 반쯤 살아서 심장이 팔딱거리는 생쥐말이다. 너희들 싱싱한 거 좋아하잖아. 사냥은 아비가 하는 것만 봤다. 아버지에게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온몸의 감각으로 적의 행방을 찾고, 숨죽이며 관찰하고, 긴장감을 조절하고, 때를 보아 빈틈을 파고든다. 그렇다. 빈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낯설지만 하다 보면 되겠지, 모르잖나, 내가 선천적으로 사냥하는 능력을 타고 태어났는지. 이제, 수시로 손톱깎이에 깎인 발톱은 스크레쳐에 갈고 점프력과 민첩성을 길러야 한다.
먼저 쥐가 나타날 만한 곳을 체크했다. 지금까지의 집의 구조로 판단하건대 짚이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싱크대의 개수대, 화장실의 환풍기와 개수대, 목욕실의 수쳇구멍, 세탁실 수챗구멍, 베란다의 수쳇구멍. 집의 구조로 보아 들어오는 길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보다는 구멍 앞에 잠복하여 덮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혼자 감당하기가 어렵다. 형아라도 있으면 서로 분담하면 되는데 무척 난감했다. 그래서 일단 쥐 냄새가 나는 곳을 최우선 후보지로 선정하기 위해 이쪽저쪽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할머니 집사는 전날밤 잠자리에서 목이라도 삐끗했다는 듯이 천천히 못마땅하게 힐끔 본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곧 내가 심장이 펄떡거리는 반쯤 살아있는 생쥐를 대령할 테니.'
그렇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냄새의 족적은 끊긴 지 오래된 듯했다. 하물며 한가닥의 털도 발견하지 못했다. 철저한 쥐들이다. 이럴 때일수록 방심을 해서는 안된다. 룰렛게임을 하듯, 어디서 갑자기 좀비처럼 뛰쳐나올 수도 있다. 기다리다 지쳐갔다. 에너지가 넘친 하나의 생명체를 향한 험난한 추격전을 생각했었는데 헛발질로 끝낼 수는 없다. 그래서 할머니처럼 기도도 해봤다. 고양이는 신을 믿지 않지만 한번 해봤다. 나는 생쥐를 기다렸고, 기대했고, 간절히 희망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더라. 기도를 한들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었다. 그러면서 정말 나는 쓸모가 없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쓸모없는 존재 하나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한들 아무도 모를 거야. 숲에서 나무 하나 쓰러지든지 말든지 누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