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마도 너희가 길들여질 거다. '
창과 방패
대체로.
무탈한 날을 지내고는 있지만 세상은 까닭 모를 곳이다. 처음에는 귀엽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일들이 이제와서는 신경에 거슬리는 모양이다. 집사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음식 탐하기
2. 목욕 거부하기
3. 손톱깎이 뿌리치기
4. 집사들 손발 깨물기
그들은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 담판을 지으려는 듯 집사마다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대표를 선정해서 단 한 번에 끝낼 수도 있는 데도 말이다. 일부러 절차를 까다롭게 해서 군기를 잡겠다는, 권위적인 집단에서나 하는 짓거리를 이들도 하더라. 웬만하면 집사들의 요구를 들어주고는 싶지만 본능과 관련된 것들이라 양보하기 힘들다. 그들은 계략을 짜고 나는 그 계략을 물리칠 지혜를 홀로 고민한다. 그들처럼 누구에게 호소할 처지도 못된다. 처량 맞은 것도 내 몫이다. 이 집에 들어올 때도 가지고 온 것은 마음밖에 없고, 설령 다른 데를 가도 마음밖에는 가지고 갈 짐이 없다. 또다시 상자나 가방에 들어가서 나와보면 장소가 바뀌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강제로 집에서 쫓겨나는 심정은 당해보지 않으면 그 맘 모를 거다. 일단은 이 집에서 마음을 붙이도록 노력하며 그들을 믿어 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고양이 앞에 생선
내가 음식을 초월하지 못하는 거 인정한다. 밤늦게 나 몰래 소리 죽여 가며 먹는 거 다 알고 있다. 달가닥달가락 거리는 소리나 내지 말던가. 그 소리에 호기심도 생기고 입안 가득 침이 고여 다가가면, "저리 가, 너 밥이나 먹어!"라고 야멸차게 쏘아붙였다. 면박을 받고 머쓱하여 머리를 긁적이지만 저버려진 느낌에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맛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지금처럼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전에는.
고개를 앞뒤로 끄덕거리며 사료를 오도독거리며 씹으면 집사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있었다."야아옹?(그렇게 신기해, 내가 밥 먹는 게?)"하고 물어보면 흐뭇한 표정으로 일거일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마음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이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 나는 어째서 식탐이 있는 걸까요?'라고 자책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집사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고양이 앞에 생선'이라는 말이 있더라. 그날은 자고 나서 태양빛아래 늘어진 엿가락처럼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 보니 속이 허전한 거야. 근데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나도 이게 뭐나 싶어 "야옹?(이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는 뭐냐옹?)" 거렸어. 그건 생선 굽는 냄새였다. 삼촌 집사는 투실투실한 살점을 떼어 주더라고. 그래서 맛을 봤어. 근데, 말이야, 만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이 절로 나오더라고. 나는 온몸을 펄쩍펄쩍 뛰었어. 정신이 번쩍 나더라고. 너희들이 크림이 듬뿍 묻은 케이크를 혀끝으로 핥아먹을 때와 같다고 보면 된다. 고양이 앞에 생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 생선 생각을 하니 또 혀 밑으로 신 침이 돈다. 그 이후로는 생선 굽는 냄새만 나면 발이 절로 움직이더라. 사막을 계속 걸어오다 멀리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거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생선을 굽는 할머니 집사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목에 담이라도 걸린 듯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어. 얼마나 마뜩잖게 생각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원래도 대면대면하던 관계였지만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표정에 칼로 베이는 기분이었다. 내 처신에 대해 남이 비난을 퍼붓거나 화를 낼 때 기분이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얼른 생선을 머릿속에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입안 가득 침이 고여 당황했다. 그래도, 낯선 상황을 모면하려고, 마땅한 단어를 고르려고, 잠시 말을 멈추고 할머니를 비껴 천장을 바라보았어. 그러다 여느 때처럼 우물우물 얼버무렸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에는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던 거로 칭찬을 받았거든. 할머니 집사의 돌변이 어리벙벙하더라고. 그때는 갑자기 친척집에 보내진 아이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고 예전 우리집이 마냥 그립더라고. 내 입장에서는 오도독 씹히는 사료도 좋지만 질긴 것도 먹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걸 집사들이 이해하기는커녕 예의 없는 고양이라고 오해하더라고. 내가 귀찮게 시큼한 식초에 절이거나 고추장, 된장 바르고 고춧가루, 후춧가루 뿌리는 수고를 바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로지 날것과 구운 거에만 관심 있다고. 그렇다고 온몸의 살이 흘러내릴 정도로 먹지는 않을 테니 걱정은 하지 말아.
병 주고 약 주고
평소대로.
그날도 두 팔로 팔베개를 만든 다음 느긋하게 엎드려 있었어. 또 잠이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살구야!"라는 누나집사의 다정한 말에 귀찮지만 대꾸를 했어. "야옹!(잠이나 한숨 자려고 하는데 왜냐옹!)"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미소를 보냈다. 근데, 삼촌 집사는 수건으로 나를 감싸고 누나집사는 나의 앙증맞은 주먹진 손과 발의 젤리를 꾹 누르면서 여태껏 갈아온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꺼내는 거야. 집사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감추었던 손톱과 발톱을 꺼내고서는 끝을 자르더라고. 둘 다 그들답지 않게 절도 있게 행동하더라고. 단단히 준비했던 거다. 어이를 상실했다. 사냥에 필요한 무기를 싹둑싹둑 사정없이 자르는데 겁도 나고, 그들의 의도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를 번쩍 들고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미안함에 보상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했지 뭐야. '무슨 재미나는 일이 있을까'하고 약간 기대도 했다.
근데.
무방비 상태의 나를 들어다가 발목까지 물이 찬 욕조에 내려놓더라고. 처음에는 두발에 물이 닿는 느낌이 참을 만했어. 그건 해변가에 한 줄기 파도가 밀려와 모래톱 위로 흐르면서 맨발을 간지럽게 핥으는 듯했어. 거기까지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몸에 샤워기를 대는 순간 갑자기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어. "야아옹!(나한테 왜 이러냐옹!)". 그들은 무슨 젤 같은 것을 내 몸에 묻히고는 온몸을 비벼댔어. 내 몸을 자동거품기로 머랭을 치듯 휘젓고 내 몸에서는 거품이 뽀글뽀글 일어났어.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나는 사지를 떨면서 집사의 옷을 필사적으로 잡고는 탈출을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런 거 알아? 모피 걸치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찝찝한 느낌. 참혹한 그 순간이 어떻게 지났을까. 완전 물에 빠진 몰골이라니. 나는 오슬오슬한 한기에 오들오들 떨었다. 다시 털이 솜이불처럼 뽀송뽀송해질 수 있을까 걱정할 무렵, 열푹풍이 몰아쳤다. 이게 끝이 아닌 거였다. 또 나는 물밖으로 내동댕이 쳐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그러고 나서는 누나집사는 생선비린내 나는 죽 같은 것을 주었어. 나는 주먹을 만들어 손등을 핥고는 그걸로 귀를 열심히 닦다가 그 비릿한 맛에 또 정신을 잃고 바닥에 흐른 것까지 싹 다 핥아먹었다. 다시 먹을 것에 굴복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