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재미있던 그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명절 전이라 사람 엄청 많을 텐데?”
“에이, 요즘 누가 명절 전이라고 목욕탕을 가. 걱정 마.”
남편은 호기롭게 아들의 손을 잡고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두 시간.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수십 년 전, 엄마 손에 이끌려 가던 중앙시장 옆 목욕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곳은 당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던 '신상' 목욕탕이었다. 벽면엔 하늘색 바탕 위로 돌고래와 열대어들이 유영했고, 천장에선 시원한 물대포가 쏟아졌다. 겨울에 수영을 할 수 있는 실내 수영장이 없던 시절, 그곳은 신나는 물놀이터였다.
바가지를 두 개 겹쳐서 튜브를 만들어 놀았다. 좋아하는 인형을 가지고 가서 목욕을 시켜주기도 하고, 잠수도 했다. 우연히 친구를 만나는 날도 있었다. 우리는 빨개 벗었다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까르르 재미있게도 놀았다.
욕탕에 턱을 괴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엄마와 이모들은 유통기한이 다 된 우유와 요플레를 가지고 와서 얼굴에 발랐고, 세신사 이모는 강판에 오이를 갈았다. 마요네즈를 머리에 바르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목욕탕에서 내 또 다른 즐거움은 원형 통에 목욕 바구니에 들어있는 꽃무늬 원형 통의 바디워시였다.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 어린 마음에 그것을 볼 때마다 공주님이 사용할 만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 몰래 그걸 물에 조금 섞어서 거품을 내고 향을 맡았다. 장미보다 더 장미 같은 달콤한 향기가 목욕탕 안의 수증기처럼 어린 소녀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했다.
하지만 즐거움은 엄마들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끝났다. "누구야!" 하는 목소리에 우리는 힘없이 엄마의 허벅지 사이에 갇혀 '때밀이 미션'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손에 끼워진 초록색 사포 같은 수건이 내 등을 긁어 내릴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엄마는 "가만히 있어! 안 아파!"라며 나를 다그쳤다.
한때는 나도 그 엄마의 목소리를 빌려 썼던 적이 있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 욕조에 앉혀놓고 억지로 머리를 때를 밀며 "가만히 있어! 안 아파!"라고 소리칠 때면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엄마의 목소리와 똑같아 소름이 돋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열두 살이 된 아들은 더 이상 내 손길을 빌리지 않는다. 샴푸 거품이 눈에 들어갔다며 울던 꼬마는 이제 제법 혼자서 척척 씻고, 아빠의 손을 잡고 당당히 남탕으로 향하는 '큰 아이'가 되었다.
이제 내 욕실엔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장미향 바디워시가 세 개나 있고, 언제든 원하는 향기로 나를 씻어낼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 무겁고 투박했던 엄마의 무릎 사이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한 시간쯤 지나 남편과 아들이 돌아왔다.
"사람 진짜 많더라. 괜히 갔어.”
남편은 툴툴거렸지만, 아들은 아빠가 사준 포카리스웨트 한 병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빠가 때 밀 때 안 아팠어?"
“응, 하나도 안 아프던데?”
아들의 등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짓말. 분명 아팠을 텐데도 아이는 아빠와 마주 보고 웃는다. 둘만의 추억이 하나 더 쌓고 왔나 보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차가운 물을 마셨다.
관청리의 돌고래는 사라졌고, 내 욕실에 있는 장미향은 더 이상 꿈같지 않다. 세상이 온통 재미있던 소녀 역시 이제는 없다는 것이 가끔 서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