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사장님의 100원짜리 위로

무인 키오스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90년대 낭만

by 영차보

이제 열두 살이 된 아들의 일주일 용돈은 삼천 원이다.


적다고 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집에는 간식이 가득하고 학용품도 다 사줄 뿐 아니라, 학교 앞에는 그 흔한 분식점도 편의점도 없는 이유로 지금까지는 아이도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합기도 친구와 무인 문구점에 다녀온 아들은 문을 열자마자 툴툴거렸다.


“엄마, 용돈 좀 올려주세요. 새로 나온 포켓몬 카드 한 봉지가 오천 원이에요.”

“포켓몬 카드가 왜 그렇게 비싸? 천 원 아니야?”

“그건 일반 카드고요. 근데, 제가 제일 용돈이 적어요.”


사실 나도 용돈이 좀 박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우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곤 얼마가 적당할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 초등학교 5학년 주머니 사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삼천 원은 큰돈이었다.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면 떡꼬치를 사 먹을 수 있었고, 컵떡볶이는 300원, 노트가 200원이던 시절이었다.


유혹도 참 많았다. 밭두렁과 월드컵, 아폴론을 파는 문방구와 예쁜 학용품을 파는 팬시점, 그리고 참새 방앗간처럼 지나갈 수 없었던 분식집까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 주머니를 가볍게 하는 곳은 관청리 골목 어귀에 있던 오락실이었다.


환한 낮에도 항상 어두컴컴하던 실내, 담배 연기와 귀를 울리는 전자음이 가득했던 그곳. 불량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엄마는 정말 싫어했지만, 어린 나에게는 신기한 별천지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구멍으로 동전을 바꿔주던 오락실 사장님이었다. 그는 오락실 구석 무릎 정도 올라온 마루에 장판을 깔아 방처럼 보이는 곳에 항상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유리로 된 벽 구멍으로 지폐를 내밀면 우리를 잠시 처다보고는 미리 백 원짜리 동전으로 쌓아 놓은 탑 한 줄을 말없이 내밀곤 하셨다.

“사장님은 불쌍해. 저 좁은 데서 잠도 자고 밥도 먹나 봐.”

내가 안쓰러운 마음으로 툭 내뱉자, 내 손을 잡고 오락실을 둘러보던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야! 사장님이 제일 좋아. 저기 누워있기만 해도 되잖아. 내 꿈은 오락실 사장님이 되는 거야!”


나는 동전 탑을 받아 들 때마다 유리 벽 너머 사장님을 훔쳐보곤 했다. 자기 몸에 딱 맞는 작은 방에 갖혀 사계절 내내 장판 위에 누워 무심하게 동전을 쌓던 사람. 어린 내 눈엔 그 모습이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빛을 차단당한 채, 오직 동전만을 지켜야 하는 가련한 죄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생의 눈에는 그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나 보다. 무심하게 누워 TV를 보다가 지폐가 쑥 들어오면 동전 탑을 내미는 그 삶이 받아쓰기와 구구단에 찌든 꼬마에게는 여유롭고 멋있어 보일 수 있었겠지.


그가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자진해서 나오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늘 누워만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오락실 어딘가에서 누군가 기계를 거칠게 두드리거나 “아저씨, 동전 먹었어요.”라고 외치는 비명이 들리면 그는 슬리퍼를 천천히 끼워 신고 그 좁은 유리 방에서 기어 나왔다.


긴 꼬챙이 하나를 들고서,

말도 없고 표정도 없이 좀비 무빙으로 다가온 그는 쇠꼬챙이를 기계 깊숙이 집어넣고 ‘철컥’ 소리가 나게 휘저었고 해결되지 않으면 무심하게 전원을 껐다 켰다. 그리고 재부팅 되는 기계 앞에 백 원짜리 동전을 툭 던지고 돌아설 뿐이었다.


어떠한 흥미도 없이 그저 의무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움직임은 그 역동적이고 시끄러운 오락실 안에서 유일하게 정적인 것이였다. 재미있는 것이 가득한 그곳이 몹시도 지루하다는 듯한 사장님의 표정 역시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가장 어두웠다.


사장님의 표정과는 무관하게 나는 오락실에서 자꾸자꾸 동전을 넣었다. 그 당시 나는 땅따먹기에 심취해 있었다. 벌레들을 피해 땅을 조금씩 조금씩 먹으면 헐벗은 언니들의 사진이 보였다. 헐벗은 언니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징그러운 벌레들을 피해 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짜릿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손은 느리고 눈은 더 느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자꾸자꾸 죽었다. 그렇게 죽는 것이 억울해서 또 넣었다. 그러다 정말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무렵이면, 사장님이 슬그머니 다가와 백 원짜리 하나를 건네곤 하셨다. 역시나 설명도, 웃음도, 표정도 없이 말이다.


물론 그 동전 하나의 생명도 금방 잃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지만, 사장님의 동전을 받고 나면 묘하게 후련해지기도 했다. 그것은 게임의 수명이 아니라, 어린 나의 패배감을 닦아주는 거칠고 투박한 손수건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락실을 나가며 꾸벅 인사를 해도 사장님은 여전히 TV만 쳐다볼 뿐이었지만.


이제 내 아들은 동전 탑 대신 5천 원짜리 카드 한 봉지를 뜯으며 세상을 만난다. 내가 사장님의 유리 방을 보며 느꼈던 기묘한 감정들을, 내 아들은 무인 문구점의 차가운 키오스크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기계는 정확하지만 위로가 없고, 오천 원은 크지만 백 원만큼의 묵직한 정이 없다. 아들의 용돈을 오천 원으로 올려주기로 마음먹으며, 나는 문득 그 좀비 같던 사장님의 무심한 배려가 그리워졌다.


세상은 나를 쫓는 벌레로 가득하고, 그 안에서 내 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발버둥치지만 자꾸자꾸 죽고 만다. 그래도 다시 한번 희망을 갈아 넣어보지만, 이내 죽는다.

이렇게 삶이 희망이 자꾸 죽어버려 눈물이 핑 돌 때, 말없이 백 원 한 닢을 툭 건네주던 그 어두운 방의 사장님의 위로가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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