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이 버튼이 없는 진짜 '모험'에 대하여
“엄마는 이슬이 좋아했는데, 웅이도.”
“엄마, 이슬이랑 웅이는 이제 관장이에요. 지우도 은퇴했고요.”
“그래. 엄마도 원장이니까, 걔네도 관장쯤은 해야지.”
내가 어릴 때, 우리 아들과 포켓몬스터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생을 돌아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이 지우에서 다른 사람이 될 줄이야.
TV 속에서 새로운 주인공의 모험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아들 옆에 앉아서 세대교체의 묘한 기분을 느끼는 동시에 내 친구 지우를 몰래 그리워했다.
피카츄와 함께하던 지우의 모험, 생각해 보니 그 시절 지우에게만 '단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우에게 피카츄가 있었다면, 90년대 우리 포켓 속에는 저마다 소중한 몬스터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다마고치.
사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시절 아주 무책임한 ‘다마고치 연쇄살인마’였다.
학교에 갈 때 깜빡하고, 친구들과 노느라 잊어버리고. 그렇게 내 액정 속에는 똥이 가득했고, 밥을 달라고 외치는 아우성을 끝으로 차가운 해골 마크나 무덤 하나가 덩그러니 놓이곤 했다. 픽셀로 이루어진 그 작디작은 생명체 하나도 삼일을 넘기지 못해 ‘리셋’을 누르고야 마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 시절 뉴스와 신문에서는 다마고치가 ‘생명 경시 풍토’를 조장한다는 기사가 연일 나오곤 했다. 버튼 하나로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장난감이 아이들의 생명 윤리를 파괴한다는 우려였다. 죽으면 리셋하면 그만인 픽셀의 세계.
어린 나는 그 해골 마크를 보며 잠시 죄책감에 빠지다가도, 이내 이쑤시개로 리셋 버튼을 꾹 눌러 새로운 알을 깨우곤 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금은 한 아이를 키워내고 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엄마’이자 ‘어른’이 되어 있다.
이것은 이쑤시개로 리셋할 수 없는 진짜 리얼 실전이다. 지금 내 집에 있는 나의 아이는, 특히 방학을 맞이한 지금은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올바르게 넣어주어야 하고, 열이 나기라도 하면 밤을 지새워야 한다.
똥은 스스로 물을 내릴 정도까지 키워냈지만, 여전히 잠시 한눈을 팔면 금세 물건들을 늘어놓아 집을 개판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이의 마음속에 해골 마크가 뜨지 않도록 끊임없이 살피고 돌봐야 하는 실전 육아.
픽셀 조각 하나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던 내가, 어떻게 이 생명을 만들어내고 또 이토록 치열하게 키워내고 있는 걸까?
가끔 나는 이 아이를 내가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나를 어른으로 ‘강제 진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우는 은퇴 했고, 다마고치와의 죄스러운 추억은 서랍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시절 그 서툴던 소녀는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들이 낄낄거리며 보는 TV 속 리코와 로드를 본다.
지우가 없는 포켓몬스터는 여전히 낯설지만, 아들이 웃으니 됐다. 나의 모험은 이제 리셋 버튼이 없는 이 거실에서 계속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