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에 명품 가방, 없으세요?

명품가방, 사십 살, 감자깎이

by 영차보


여자 나이 마흔이면 한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명품 가방, 그것 단 하나도 없는 마흔 살의 여자로서 ‘명품’이라는 단어는 입안에서조차 깔깔하다.


명품을 사지 않은 이유는 없다. 사실 사지 못한 것이다. 돈이 많았다면 나도 분명 한 두 개는 가지고 있을 터다. 그러므로 명품을 좋아하고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은 전혀 없다. 다만 부럽다. 솔직히 질투도 좀 난다.


가끔 대화에 명품에 관한 이야기가 걸리면 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못난이 인형이 된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정말 나만 없나’하는 생각으로 검색창에 오늘 이야기가 나온 가방을 넣어 가격을 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솔직히 한 번은 ‘명품 가방 안 사는 이유’를 유튜브에 찾아보기도 했다. 좀 지질했다.


가만 보면 세상에는 명품가방 사주는 남편이 흔하고. 고생한 나에게 스스럼없이 비싼 물건을 선물하는 나 역시 참 많다. 근데 언제나처럼 내 남편은 그런 남편이 아니고 나에겐 그렇게 능력이 있는 '나'도 없다. 꽤 한결같다. 그러므로 나만 없어 명품가방.


돌이켜보면 인생에 몇 장면에서 '하나쯤은 사볼까' 하는 생각을 넘어서 꼭 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제법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가장 큰 위기는 빌라인 내 신혼집을 보고 그 위험한 곳에서 어떻게 아이 키우고 사냐며 '걱정'해준 동창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을 때였을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 아이에게 영원히 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그녀가 많이 부럽고 놀이터가 없는 우리 집이 뱃속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하마터면 정말 명품가방을 살 뻔했다. “엄마가.. 흑흑 미아.. 내.. 흑흑 명품가방도 하나 없고.. 흑흑” 배에 손을 얹고 드라마도 한 편 찍었더랬다. 100% 실화다.


그다음은 유치원 입학 설명회였던가, 그리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과 학부모 상담, 부모참여 학습의 위기가 매년 차례차례 오면서 '학부모는 명품가방 한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떠다녔다.


롱패딩에 운동화를 신은 내 주변에 또각또각 들리는 구두 소리가 참 많이 뜨끔했다. 나의 초라함이야 모른 척하고 외면해도 누구누구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의 소중한 아이에게 그 어둡고 진득한 초라함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학부모'가 된 나를 제법 오래 괴롭혔던 것 같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비싼 물건을 척척 사는 것일까. 정말 궁금했다. 물론 몇 달을 모으거나 카드 할부와 한 바퀴의 계절을 함께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가방의 가격으로는 너무 비쌌다. 지병도 문제였다. 나는 '그 돈이면'병 말기 환자였다.


그 돈이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돼지갈비 외식을 몇십 번 할 수 있었고, 그 돈이면 우리 아빠 잘 맞지 않는 틀니를 새로 해 드릴 수 있었으며, 그 돈이면 나의 아이보다 나이가 많은 아슬아슬한 보일러를 위아래로 타는 것으로 걱정 없이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야 할 이유보다 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궁상맞게 살지 말라는 친구의 말과, 가족들에게 헌신해도 헌신짝밖에 안 된다는 동네 언니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 들고 있던 고무장갑을 집어던진 적이 없지 않다. 그래도 내 옷장 속에 모셔둘 나의 자존감보다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이 있었더랬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거리곤 했다. 그렇게 다시 명품 가방 대신 고무장갑과 우리 가족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몇 년 만에 만나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촌의 결혼식 청첩장을 마주하였을 때 다시 한번 명품 가방은 슬금슬금 머릿속으로 기어들어 왔다. 제일 처지게 사는 막내 삼촌네 첫째 딸이 아닌 먹고살 만한 조카딸, 잘살고 있는 친척 언니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참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무엇 하나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숨길 수 없는 형편과 부러우면 지는 게임에서 항상 패자가 되고야 마는 결말,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것 같은 절망, 늘 가지지 못한 것이 갖고 싶었고, 남들 앞에서 결코 내놓고 싶지 않은 하찮은 내가 밉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감추고, 나를 덮어 나를 조금 더 괜찮게 보이게 할 달팽이집과 같은 명품가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던져진 지 40년, 이리저리 가벼운 바람에도 서글프게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는 드디어 내려앉았다. 그리고 궁색하지만 기특하게 뿌리를 내렸다. 종종 흔들리긴 했지만 대부분 힘차게 살았다. 그리고 드디어 남들이 내가 장미가 아닌 민들레라고 하여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그래 나 민들레다 뭐. 어쩌라고. 무슨 상관이야. 제법 뻔뻔하게 못 산 것도 안 산 것이라고 우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아직도 명품가방이 하나도 없는 사십 대가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글은 명품에 대한 이야기이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난 감자깎이를 거의 10년 넘게 써왔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고 연두색 몸통에는 아직 가스레인지를 쓸 때 불 근처에서 녹아내린 흔적이 있기 때문에 10년이 넘은 것은 확실했다. 이 녀석은 늙어서 그런지 심술궂게도 가끔 감자 껍질 대신 내 손바닥을 긁어버리곤 했다. 피도 났다. 그러다가 결국엔 지 성질에 못 이겨 칼날에 누렇게 녹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녹이 생긴 건 한 일, 이년 정도 되었으리라. 정말 대충 산다고? 맞다.


내 주방은 대부분 다이소 출신이다. 컵도 다이소, 가위도 다이소, 쟁반도 다이소, 즐거운 쇼핑 다이소. 그날도 기억이 나지 않는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다이소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면식도 없는 그녀의 "이거 진짜 좋더라 명품이야. 명품"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녀들의 손에는 우리 집에 있는 늙은 그것보다 두 배는 큰 감자깎이가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그 자리에서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감자깎이가 정말 컸다. 그리고 다기능 감자깎이칼과 두 개 들어있는 감자깎이 칼도 천 원인데, 오로지 감자깎이 기능만 있는 이 녀석의 가격이 두 배였다. 건방지다고 생각했던가. 감자깎이가 거기서 거기지 커서 거추장스러울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지만, 나는 기어이 그것을 사 왔다. 명품을 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사십 년 내 인생에서 감자깎이 칼이 이래야 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감자는 힘을 주지 않아도 쓱쓱 쉽게 알몸이 되었다. 손바닥이 걸리고, 울퉁불퉁하게 껍질이 남는 예전에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버 하나도 없이 딱 오초만에 감자를 벗겨버리고 나서 나는 기꺼이 감자깎이 칼과 이름 모를 다이소의 그녀에 경의를 표했다.


그 순간 나는 명품 감자깎이를 손에 쥐고, 이 감자깎이를 사기 위해 더 써야 했던 천 원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것이구나. 오초만에 감자를 벗겨버리는 이것이, 내 손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손목이 이리도 경쾌하게 움직이는 것, 명품이구나. 그리고 속살을 그리도 쉽게 보여주는 벗은 감자가 꼭 비싼 가방과 명품 구두는 사물함에 두고 탕에 들어가 앉아 있는 우리로 보였다. 어쨌든 사람도 벗겨 두면 그 감자처럼 모두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좀 크고 뚱뚱한 감자일 뿐일 테다.


난 이제 명품가방은 없지만 명품 감자깎이칼이 있는 여자가 되었다. 사십 살이지만 이천 원짜리 감자깎이 칼에 감탄하고 나를 위한 소비라며 뿌듯해하는 여자로 살고 있다. 명품 손수건은 없지만 명품 떼수건. 떼르미스 떼타월로 매일 샤워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이거 진짜 좋다.


아마 로또에 맞지 않는 이상 명품 가방을 들 날은 죽을 때까지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젠 서럽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명품 가방에 숨지 않아도 괜찮아진 이 나이가 사랑스러워졌고 늙어가고 불어 가는 몸과 더불어 이천 원짜리 감자깎이 칼을 들고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는 내가 만족스러워졌다. 다른 사람에 손에 들려 있는 가방보다 얼굴을 먼저 바라볼 수 있게 된 나도 제법 기특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안 사는지 못 사는지 헷갈릴 그쯤부터였을까. 책이 많이 들어가고 더러운 차에 마구 던져두어도 딱히 걱정되지 않는 이만 원짜리 레자 가방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을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혹시, 당신이 명품을 사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명품가방 때문에 민달팽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면, 다이소에 가라. 그리고 감자깎이 칼을 사서 감자를 깎아라. 울퉁불퉁한 감자도 매끈한 감자도 5초 만에 벗겨버리는 그 녀석을 쥐고, 오늘도 가족을 위해서 나를 양보하는 나를 다른 가족은 몰라줘도 나만은 나와 당신만은 우리를 기특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마치 다이소 감자깎이에 대한 바이럴 글 같은 이 글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래서 이렇게 써본다. 명품 가방을 든 여자보다 명품 감자깎이 같은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이는 그날이 올 때까지!


다이소 감자깎이 포레버! 정준산업 떼르미스 포레버! 명품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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