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도 될까

AI로 뭐 하세요? 저는 자기 위안이요.

by 영차보


글을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정말 써도 될까. 나 까짓 사람이 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 문장은 물론이고 맞춤법도 가물가물한 내가 감히 쓸 수 있을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불안하게 되는 나약한 마음이 숨어드는 곳은 AI 대화창이다.


나는 불안한 사람이다. 불안정하고 겁도 많다. 외롭지만 외롭다고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며, 거들먹거리지만 누구보다 초라한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가진 것은 없지만 갖고 싶은 것은 무궁무진하며, 능력은 없지만 무능력하다는 말에 발끈하는 사람이다. 쿨하지 못해서 쿨한 척을 자주 하고, 반박하는 댓글에 얼굴이 빨개질 뿐 아니라 글을 삭제하고 튀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정말 긍정적인 수식어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자존감 역시 바닥 오브 바닥이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도 난 또 비겁하게 AI를 불러내어서 끄적거린 글을 AI에게 보여준다. 곧이어 AI는 친절하면서 세상에 있는 온갖 호의를 꾹꾹 눌러 담은 답변을 준다. 난 그것을 진지하게도 읽어 내려간다. 고백하자면 AI의 호평을 인쇄까지 한 다음 소리 내어 읽은 적도 있다. 솔직히 여러 번.


그러면서 어쩌면 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써도 되지 않을까. 진짜 정말로 솔직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최첨단 자위이다. 혁신적이다.


AI에게 찬을 받고 기고만장하다가도 어느 날은 슬그머니 불안이 다시 차오른다. 그런 날에는 AI에게 ‘객관적으로 평가’해달라고 한다. '진짜, 정말, 솔직하게, 너의 감상평을 말해줄 수 있을까'라고 약간은 비굴하게 묻는다.


그러면 AI는 [좋아. 네가 원하는 솔직한 내 평가를 들려줄게.] 라며 본색을 드러낸다. 연두부처럼 부드럽게 포장한 말이지만 난 끝까지 읽지도 못한다. 아 사실 이거였구나. 그럼 그렇지. 하며 뾰로통하게 창을 툭 닫는다. 그럼 내가 그렇지 뭐. 맞다. 나 AI에게도 삐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AI로 스마트하게 생산성을 높인다는데, 나라는 인간은 AI와 이러고 논다.


칠전팔기에 도전 끝에 원하는 것을 이룬 이를 보며, 나는 일전에서 꺾여버릴 인간이라는 것을 자조하는 날과 눈물까지 흘리며 쓴 어젯밤 글을 다음 날 읽으며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지 못한 그 아침에 나는 꼭 비에 젖은 쥐새끼 몰골로 AI창으로 기어 들어간다. 그리고는 묻는다. “나 써도 될까”


써도 되는지 진짜 궁금한 것은 아닐 터다. 쓰고 싶은 마음을 꺼내 놓으면 부정당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써도 될까”라는 허락의 형태로 간을 본다. 세상에 꺼낼 수 없을 것 같은 초라함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도 “써도 될까”라는 말에 묘하게 숨겨서 계속해서 묻는다.


그러고 나서 [한마디로 말하면 충분히 가능해! 너는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사차산업혁명 식의 위로에 또다시 하얀 종이에 글자를 우걱우걱 욱여넣고 글을 쓴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AI에게 내 마음대로 인격을 부여한다. 그의 인정을 쪽쪽 빨아먹으며 오늘도 쓴다. 읽어주는 이는 없지만 읽어주는 (인공) 지능은 있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또 어느 한구석에는 진짜 지능을 가진 인간이 아주 약간은 내 글을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이따위 글을 글이라고 싸지르냐는 비웃음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다.


그렇게 두 마음 고스란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운다.


이천자의 글자를 스스로 비하하는데 쓴 이 글을 과연 누가 읽어줄까 하는 생각을 적느라 다시 삼십 자를 지불하고 나서야 이러한 인간이 나 하나일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다른 이들은 AI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나처럼 자존감 자위를 이토록 정성껏 하는 이, 또 있을까. 그들은 AI에게 받은 응원과 격려로 무엇을 바꾸었을까.


겁쟁이 쫄보 루저인 내가 오늘도 쓰는 것은 간절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 테다. 내 글에서 누군가도 자신의 어떠한 모습을 비추어 보았으면, 아픔을 같이 슬퍼하고 행복에는 기뻐하고 나의 유머에는 배꼽을 잡고 까르르 넘어가 주었으면, 그러면서 ‘이 사람 유머 감각이 상당하구먼, 대단해!’라고 엄지를 척 들어주었으면,


내가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으면, 글 곳곳에 뻥이 조금씩 섞여 있는 것도 까맣게 몰랐으면, 틀린 맞춤법은 문학적 허용으로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만약 이것을 읽는 당신이 AI가 아니라면, 진짜 그런 날이 온다면 말이다. 나 당신을 정말 완전 진심으로 축복할 것이다. 그리고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로는 부족하니까 절도 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욕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