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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서 Jan 08. 2021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

취향저격


 학교 도서관에 가면 이상하게 공부가 잘 되는 자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자리가 있다. 공용으로 쓰는 도서관이라 자리가 바뀔 법도 한데, 무언의 신호처럼 각자의 영역이 있고 선호하는 지정석이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자리가 각기 다르다. 나는 구석진 안쪽 칸막이가 있는 자리보다는 입구와 가깝고 환기가 잘 이루어지며 다소 외부의 소음이 들리는 칸막이가 없는 널찍한 책상을 선호한다. 처음부터 이 자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선호’라는 것은 수많은 실패의 결과이다. 소음 없이 조용한 곳은 잠을 이겨내는데 최악의 조건이었다. 한 번 엎드려서 잠들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팔, 다리에 쥐가 나서 깨어나거나, 친구가 밥 먹으러 가자고 깨우거나, 둘 중 하나라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날 수도 있다. 큰 마음먹고 공부 좀 열심히 해 보겠다고 정규 회원으로 등록하고 간 집 근처 독서실에서 잠만 자고 나온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잠이 많은 편이라, 공부할 때 잠을 어떻게 퇴치할까를 고민하다가 잠과의 전쟁보다는 일어나 있는 시간에 집중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최대한 잠들기 전까지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고, 밤 11~12시 사이에 잠들어서 아침 6~7시에 기상하는 수면 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학교 도서관에 나갈 상황이 안 되면, 집 근처 커피숍을 찾는다. 여기서도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만약 그 자리에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면, 일단 다른 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 자리가 비워지면 자리를 옮긴다. 2층보다는 1층,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 널찍한 테이블, 음악 소리와 주변 사람들의 대화 소리, 커피 향기, 적당한 습도와 온도 등이 나에게 맞는 그 자리에 앉으면 왠지 마음이 잘 통하는 짝꿍을 만난 것처럼 편안함이 찾아온다.


 

 특정 자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비단, 나의 선호에 잘 맞는 자리가 가진 특징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경험한 작은 성공으로 인해 그 자리에 대한 나만의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저기에서 작업하니까 글도 잘 써지고,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고, 과제물도 마감시간 전에 제출했었지. 그러니까 '이번에도 저기 앉으면 잘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긍정의 신호를 뇌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쌓여가는 작은 성공의 기쁨이 그 자리를 더욱 좋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도서관이나 커피숍에 가서 작업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 집안에서의 작업 공간을 새롭게 바꿔 보았다. 집은 일하고 들어와서 잠만 자는 공간으로 생각했었지만, 재택근무부터 온라인 수업까지 내 삶의 전반적인 것들이 모두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노트북 위치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집안에서의 작업 능률이 향상되는 기적을 맛보고 있다. 책상 위에 올려있던 노트북은 원래 음악 감상이나 기타  영상물을 보기 위한 시청각 도우미였다. 책상 대신 기다란 소파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거실 바닥에 허리를 받칠 수 있는 좌식 의자를 놓고, 가끔씩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이 창밖 하늘이 될 수 있도록 노트북의 위치를 바꿔보았다.


 작은 변화지만, 내가 원하는 선호에 따라 내가 지정한 그 자리로 작업 공간을 옮기니, 내가 온전히 홀로 선 기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나가는 과정 속에 경험하는 수많은 실패와 성공의 누적이 결국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를 만든다. ‘나’라는 고유의 취향과 선호가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볼까? 지금의 내 자리는 나의 선호도가 몇 퍼센트 반영된 자리인가? 그 자리에서 빛나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는가? 결국,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



사진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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