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인간의 경쟁력은 어디에 남는가
몇 년 전만 해도 의약품 개발에서 구글과 엔비디아를 언급하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구글은 검색과 데이터의 회사였고,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와 반도체의 회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구글과 엔비디아는 현재 AI 시대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AI 시대의 강자들이 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구글은 AlphaFold3를 통해 단백질뿐 아니라 DNA, RNA, 소분자 등 생체 분자와 그 상호작용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을 공개했다. 기존에는 이러한 구조와 결합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X-ray, NMR, Cryo-EM 같은 다양한 실험 기법을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했고, 이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간접적 확인 과정이었다. AlphaFold3는 이러한 과정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지만, 실험 이전 단계에서 구조 기반의 우선순위를 제시함으로써 불필요한 실험을 크게 줄여준다.
엔비디아는 BioNeMo를 통해 신약 개발의 설계와 검증 단계를 AI 기반 워크플로우로 통합하려 하고 있다. BioNeMo는 다양한 조건 변화에 따른 분자의 구조적 안정성과 결합 특성을 예측해, 실제 실험 전에 수백 개의 가설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신약 개발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시행착오 구간을 압축하는 접근이다. 특히 다양한 모델과의 결합으로 신약 개발을 위한 통합 AI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바이오제약 업체에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효과 좋고 부작용이 덜한 약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AI 의약품 개발은 아직 초기라는 말이 많다. 기대도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가 의약품 개발에 들어오는가의 문제는 이미 끝났다.
지금 중요한 질문은 전혀 다른 지점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과 무엇이 달라졌고 기존 전문가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AI 의약품 개발이라는 변화가 기존 개발 방식과 사람의 역할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AI 이후, 의약품 개발의 구조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리고 이 구조에서 인간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기존 의약품 개발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명확했다. 시간과 고비용의 실험이다. 유효물질을 발굴하고 환자를 검증하는 데만 수년이 소요된다. 그중에서도 약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물질을 선별하고 비임상 연구를 수행하는 데 평균 5년 정도가 걸린다. 설령 운 좋게 후보물질을 빠르게 확보하더라도, 임상 진입 단계까지는 추가로 3년 이상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 구조 속에서 신약 개발팀은 처음부터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없었다. 성공을 극대화하는 선택이 아니라, 실패를 최소화하는 선택만이 허용되었다. 실험 한 번의 실패가 곧 수년의 시간 손실과 막대한 비용 낭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후보물질의 수는 최소화되었고, 약물의 기전은 가능한 한 단순화되었다. 새로운 모달리티보다는 검증된 플랫폼이 선택되었고, 실험 조건 역시 경험이 축적된 범위 안에서만 설정되었다. 이는 과학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자본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한계였다. 결국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는 과정이 아니라, 시간과 비용 때문에 포기한 선택 위에 성립된 개발 방식이었다. 이것이 오랫동안 신약 개발의 기본 전제였다.
구글과 엔비디아가 내놓은 신약개발 AI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구조 예측, 분자 생성, 가상 스크리닝, 초기 안정성 예측과 같은 단계에서 계산 비용과 시도 비용이 급격히 낮아졌다. 과거에는 한 번의 실험을 설계하기 위해 수주에서 수개월이 필요했던 가설들과 실제로 실험해 봐야 알 수 있었던 정보들이었다. 이제는 AI 계산 자원과 최적화된 프롬프트만 있으면 수백 개 단위로 동시에 몇 분내로 검증된다. 그 결과 신약 개발의 병목은 더 이상 시도할 수 있느냐에 있지 않다. 과거에는 비용과 시간 때문에 가설을 줄여야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너무 많은 가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판단으로 이동했다. 이제 후보물질 도출 과정에서 핵심 질문은 바뀌었다. 앞으로는 이 많은 후보물질을 실험할 수 있는 것이 핵심 문제가 아니다.
"어떤 후보물질을 왜 선택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AI 기반 개발 환경에서는 그럴듯한 후보물질이 계속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쓸 만한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보물질을 자체적으로 발굴하는 일 자체가 극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후보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후보물질의 과잉"이 새로운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변화와 함께 가치의 기준도 바뀐다. 후보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기본값이 되었고, 이제 핵심 경쟁력은 수많은 후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이전 전략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대형 제약사는 벤처나 중소 제약사가 개발한 후보 가운데 일정 수준 이상 검증된 물질을 선별해 도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후보물질의 과잉에서는 더 많은 신기술과 벤처 설립이 많아질 것이고, 기술이전으로 선택되는 기술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술력이 있는 벤처/스타트업의 기준이 후보물질이 실제 임상과 시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다.
AI의 후보물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예측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정확해진다면 실패의 성격 또한 달라질 것이다. AI 이전의 실패는 주로 기술적 영역에 있었다. 구조 예측이 틀리거나, 최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실험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AI 이후의 실패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임상 디자인이 현실과 맞지 않거나, 규제 전략이 부재하거나, 사업적 타이밍을 놓치는 판단 오류가 실패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AI가 강해질수록 후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사람의 역할은 줄어든다. 반대로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까지 밀어붙이며, 언제 멈출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판단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갖게 될 것이다.
기술은 AI가, 판단은 인간이 수행하게 된다.
AI 시대에서 연구원들의 경쟁력은 더 이상 실험 숙련도나 계산 능력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경쟁해야 하는가.
첫째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명확히 질문하는 능력이다.
AI는 주어진 질문에 대해 답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이 질병에서 실제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무엇인지, 기술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접근이 임상적으로도 의미가 있는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문제 인식이 흐리면 질문은 추상화되고, 질문이 잘못되면 이후의 계산은 아무리 정교해 보여도 결국 낭비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가 ChatGPT에게 모호한 질문을 던질수록 평범한 답을 받게 되는 것처럼, 신약 개발에서도 AI에게 무엇을 계산하게 할지 정의하지 못하면 결과의 질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질문으로 번역하는 능력에 있다.
둘째는 많은 선택지 중 선택하는 능력이다.
AI는 언제나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이것도 가능하고, 저것도 가능하다는 결과는 끝없이 쏟아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약 개발은 여러 개를 동시에 성공시키는 게임이 아니라, 결국 하나를 선택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I는 10개의 후보물질뿐만 아니라 여러 적응증, 여러 구조 최적화 방향을 동시에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개발 현장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임상으로 가져갈 수 없다. 비용과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어떤 후보를 살릴지, 어떤 가설을 버릴지,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선택은 단순히 데이터 점수가 높은 것을 고르는 문제와는 다르다. AI는 가능성을 넓혀주지만,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선택과 포기의 경계에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가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낼수록 결정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진다.
셋째는 설득하는 능력이다.
의약품 개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의 연속이다. 규제기관에는 과학적으로 타당한지를 설명해야 하고, 투자자에게는 사업적으로 가능성이 있는지를 이해시켜야 한다. AI로 만들어낸 결과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없다. 다양한 실험 결과와 조합하여 그 결과가 왜 신뢰할 수 있는지 이 제품이 만들어지면 어떠한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지까지는 사람이 설득을 해야 한다. AI의 출력은 그 자체로 결론이 아니라, 해석을 필요로 하는 1개의 실험 결과물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나열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맥락 속에 놓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왜 이 데이터가 중요한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이다.
AI가 강력해질수록 이 설득하는 능력은 개발을 전진시키는 핵심 동력이 된다.
AI 기술로 인해 계산과 예측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고, 후보물질은 넘쳐날 것이다.
AI는 가능성을 넓혀주었지만, 그 가능성을 실제 의약품으로 바꾸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사람의 역할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AI 시대일수록, 의약품 개발에서 사람의 역할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분명해지고 있다.
무엇을 문제로 정의할 것인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설득하고 책임질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