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규제가 배운 가장 비싼 수업
약은 효과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안전을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먹은 약을 내 몸에서 분해하거나 배출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약은 적정량이 몸에 머무를 때는 치료제가 된다. 그러나 몸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쌓이기 시작하면 그 어떤 독보다 위험해질 수 있다.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남긴 비극적인 사건이 있다. 클로람페니콜이라는 약이 만든 비극이다.
1947년, 식물병리학자인 데이비드 고틀립(David Gottlieb)은 토양 속 균(Streptomyces venezuelae)에서 새로운 항생제를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클로람페니콜이다. 클로람페니콜은 광범위한 감염병에 효과적이었다. 심지어 화학적 구조가 완전히 입증되면서 최초로 인공 합성에 성공하였다. 이전까지는 미생물에서 추출하여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형태의 항생제 밖에 없었다면, 클로람페니콜은 화학 합성으로 만들어진 첫 항생제가 되었다. 이는 공장에서 간단한 화학반응을 통해 대량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으며, 1960년대에는 클로로마이세틴이라는 제품으로 전 세계로 판매되었다.
클로람페니콜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약이었다. 장티푸스, 수막염, 패혈증처럼 당시에는 치명적이던 감염병에 효과가 있었고, 경구와 주사 모두 가능했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약은 빠르게 확산됐고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쓰였다. 이때의 지식으로는 아이와 어른은 크기만 다를 뿐, 기본 구조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체중에 맞춰 용량을 줄이면 위험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클로람페니콜을 신생아에게도 쓰는 이유가 되었다.
대부분의 약은 이런 논리가 맞았지만
클로람페니콜 사례에서는 틀렸다.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클로람페니콜을 투여받은 신생아들에게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이 나타났다. 피부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회색에 가까워졌다. 체온은 떨어지고 복부는 부풀어 올랐으며 구토가 반복됐다. 혈압이 급격히 낮아지고 결국 순환이 무너졌다. 의료진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기들은 회색이 되어갔다. 이 약에 노출된 신생아는 혈액 내 산소 부족으로 입술, 손톱, 피부의 색깔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도 보였으며 그리고 수 시간 내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증후군은 나중에 이렇게 불리게 된다.
회색 아기 증후군 (Grey Baby Syndrome)
아기에게 쓰기엔 너무 강한 항생제였던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처음에는 약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문제는 약 그 자체가 아니었다는 걸 밝혀냈다. 클로람페니콜은 간에서 대사 되어 배설되는 약이다. 성인의 간 효소 시스템은 약을 분해하고 오줌을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낸다. 일반적으로 의약품이 체내에서 대사 되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신생아였다. 특히 미숙아의 간 기능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고 약을 분해하는 효소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얘기한다면, 클로람페니콜은 간에서 UDP-glucuronyl transferase (UGT) 효소에 의해 glucuronidation 과정을 거쳐 대사 되는데, 신생아의 경우에는 이 효소 시스템이 미성숙하여 클로람페니콜을 분해하지 못했다.
신생아에 투여된 클로람페니콜 성분은 계속 몸에 쌓이고 혈액 중 약의 농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결국 용량 의존적 독성으로 이어졌다. 즉, 안전한 양보다 많은 클로람페니콜이 신생아의 몸에 쌓이면서 독성이 나타난 것이다. 몸무게에 맞춰 약의 용량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안일한 판단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드러났다.
클로람페니콜 사건은 제약계에 뼈아픈 문장 하나를 남겼다.
아기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당시 의약품 사용의 기본 가정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성인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면 환자 체중을 고려하여 처방한다. 이 논리는 현재까지도 잘 맞는 가정이다. 하지만 클로람페니콜 사건은 이 가정을 정면으로 무너뜨렸다. 차이는 몸의 크기가 아니라 몸의 상태였다. 성인과 아이와는 체내 장기 기능의 성숙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약의 대사 능력과 배설 능력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그리고 잔인한 방식으로 증명되었다.
그레이 베이비 신드롬 이후 의약품 규제는 더 추가되었다. 소아에게 사용하는 약을 허가받기 위해서는 연령별 약동학 개념이 도입되었고 소아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단순히 몸무게에 맞춰서 약의 용량을 조절하는 계산은 불충분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 일부 약에서 보이는 소아 적응증 및 연령별 용량이라는 처방 문구들은 이 비극 위에 세워진 것이다.
물론, 클로람페니콜의 문제는 신생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클로람페니콜을 투여받은 성인에게서도 드물지만 재생불량성 빈혈(Aplastic Anemia)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보고 됐다. 이 약은 여전히 국제보건기구(WHO)에 등재되어 있지만 장티푸스 등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용하거나 다른 항생제가 효과가 없을 때만 사용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클로람페니콜의 위험성은 직접 약으로 섭취하는데만 있지 않다. 식용동물에서 클로람페니콜은 오랫동안 배출되지 않고 축적되어 먹는 사람에게 노출된다. 그래서 가축에 대한 클로람페니콜 사용을 점차 줄이다 현재는 아예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람페니콜은 일부 부종과 염증 질병에 점안액 형태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부작용으로부터 얻는 부정적인 효과와 질병을 치료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언제나 저울질하는 중이다.
클로람페니콜 사건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영역에서 대상을 단순하게 가정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그것도 치명적이고도 안타까운 희생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