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 하나가 만든 제약 GMP 관리의 시작
내가 먹는 약에 표기되지 않은 성분이 섞여 있을까?
약을 먹기 전에 이런 의심을 해본 적이 있을까. 대부분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프면 의사로부터 약을 처방받고 그 약이 충분히 안전할 것이라 믿는다. 의심이 들면 성분표와 인터넷을 찾아볼 뿐, 약 그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는 알약을 의심없이 삼킨다.
하지만 이 믿음이 실제로 무너진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붕괴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제약 GMP 규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다시는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약의 생산 기준은 한 단계가 아니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다.
그 사건이 바로 1941년 미국에서 발생한 설파티아졸 정제 사고다.
설파티아졸(Sulfathiazole)은 더 효과적인 설파닐아마이드 유도체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항균제였다. 전신성 설파계 항생제 중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군인들의 생명을 구하며 의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양한 감염을 효과적으로 억제했고 실제로 많은 환자에게 분명한 치료 효과를 보였다. 1941년에는 미국 제약사 윈스롭 화학 회사 (Winthrop Chemical Company)는 이 설파티아졸을 정제 형태로 생산해 시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미국 곳곳에서 환자들이 설파티아졸을 먹고 비정상적으로 장시간 잠들거나 사망한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더 이상했던 점은 증상이었다. 보고된 부작용은 설파티아졸 성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약 자체의 독성이라고 생각했으나, FDA의 조사 결과는 달랐다. 시판된 정제 일부에 수면제 성분인 페노바비탈(Phenobarbital)이 섞여 있었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먹은 알약 안에 의도하지 않게 다른 성분이 들어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교차 오염이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해당 제품의 설비는 믿기 힘들 정도로 허술했다고 한다. 설파티아졸 정제기 바로 옆에 페노바비탈 정제기가 격리되지 않고 나란히 놓여 있었다. 공정 중 발생하는 미세한 가루들이 공중에 떠다니다가 옆 기계의 원료통으로 그대로 유입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두 기계를 청소할 때 같은 빗자루와 걸레를 사용했다. 현재는 당연한 세척 검증(Cleaning validation, CV)의 개념이 아예 없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설파티아졸 정제에 페노바르비탈이 혼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페노바르비탈 가루가 섞인 반제품 용기에 별도의 표시가 없었고, 작업자는 이를 정상적인 설파티아졸 원료로 인식해 정제로 제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요소는 기록의 부재였다. 누가 해당 반제품을 취급했는지, 언제 공정이 전환되었는지, 어떤 경로로 혼입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제조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사후 조사에서도 정확한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제조 결함을 정부에 즉시 보고하거나 제품을 강제로 회수해야 할 법적 의무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회사는 대외적인 공표 없이 영업 조직을 통해 문제가 있는 제품을 정상 제품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이미 유통된 약 상당수는 회수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FDA는 이후 윈스롭 사의 공장을 조사하고, 장부와 제조 기록을 대조한 끝에 특정 배치의 약이 오염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미 많은 수의 정제가 복용된 뒤였지만, FDA는 유통 경로를 추적해 남아 있는 제품을 회수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는 80명에 달했고, 부상 사례를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수백 건에 이르렀다.
윈스롭은 불량 의약품 유통 및 허위 표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중벌이었지만, 벌금 액수는 고작 15,800달러에 불과했다. 금액 자체보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제조 면허의 일시 정지와 공장 가동 중단이었다. FDA의 전면 감사가 끝날 때까지 수개월간 생산은 멈췄고, 그 시간 동안 회사의 매출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사고 이후의 대응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오염 사실을 인지하고도 약 3개월간 이를 공개하지 않고 회수를 지연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대중과 의료계의 분노를 샀다. 의사들은 윈스롭 의약품 처방을 꺼리기 시작했고 이는 장기적인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결국 윈스롭은 독립 제약사로서의 위상을 잃고,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사건이 바꾼 것들: 의약품 생산에 대한 감시 체계 개혁
이 사건 이후 FDA는 의약품 제조를 기업의 자율에만 맡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즉시 보고하고 정부가 개입해 조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또한 문제를 즉각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제는 모든 과정을 알아보기 쉬운 문서로 작성하고 보관하는 문서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 규제는 약의 성분이 아니라 제조 과정 전체로 확장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조사관이 사전 예고 없이 공장에 출입해 제조 과정과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 즉 공장 현장 조사권(inspection authority)의 중요성도 분명해졌다.
이러한 필요에 맞추어 바꾼 핵심 변화는 네 가지다.
1. 제약 GMP 규정 제정의 공식적인 기반 마련
이전까지 규제의 초점은 완성된 결과물, 즉 ‘약이 효과가 있고 눈에 띄는 문제가 없는지’에 맞춰져 있었다. 제조 과정은 상당 부분 기업의 자율에 맡겨졌고, 공정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규제의 핵심 대상이 아니었다. 설파티아졸 사고 이후 FDA는 이 해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제조 과정이 부적절하다면, 설령 최종 성분 분석에서 문제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약은 이미 ‘불량(adulterated)’이라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약의 안전성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는 해석이 규제의 전제로 자리 잡았다. 이 인식은 이후 1963년,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규정이 제정되는 기반이 되었다.
2. 배치 인증 제도의 시작
사고 직후부터 FDA는 일부 의약품에 대해 배치 단위로 정부가 품질을 확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간단히 말해, 제조사가 매 생산 단위마다 샘플을 정부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지만 시장에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인슐린과 같은 생명 유지 의약품은 1941년부터,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1945년부터 제조사가 배치 단위로 샘플을 FDA에 제출하고, 정부의 승인 없이는 시장에 유통할 수 없도록 관리되었다. 이 제도는 제조사의 내부 품질 관리만으로는 환자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3. 규제기관의 현장 조사권의 대폭 강화
윈스롭 사건에서 회사가 문제를 외부에 즉시 알리지 않았던 점은, 사후 대응 중심 규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FDA의 공장 현장 조사권이 대폭 강화되었다. 조사관은 예고 없이 공장에 출입해 제조 기록서를 확인하며 공정 전반을 점검할 수 있게 되었다. 원료 보관 상태, 공정 관리 방식, 작업자의 숙련도까지 모두 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4. 의약품의 회수 및 보고 체계 강화
회수와 보고 체계 역시 변화했다. 이전에는 기업이 내부 판단에 따라 조용히 문제 제품을 회수하거나,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교환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불량 의약품 발생 시 즉시 정부에 보고하고 필요한 경우 대중 공표가 의무화되었다. 이 사건은 의약품의 안전이 결과가 아니라, 통제된 공정과 기록 위에서 확보되어야 한다는 규제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위해 의약품 강제 회수’ 제도의 법적 근거는 이 시기에 마련되기 시작했다.
1941년 설파티아졸 사고는 단순한 의약품 불량 사건이 아니었다. FDA에서는 공식 문서로 이 사건이 GMP 개발로 이어졌다고 인정할만큼의 큰 사건이었다. 결국 이로부터 현대 제약 생산을 법과 제도로 확립시킨 계기가 되었고 현재의 제약 GMP의 엄격한 규정의 시발점이 되었다.
페노바르비탈(phenobarbital)이라는 진정제가 섞인 항생제 설파티아졸(sulfathiazole) 정제의 사용으로 약 300건에 달하는 사망 및 부상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FDA는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을 대폭 변경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GMP)의 개발로 이어졌다.
원문: Nearly 300 deaths and injuries result from the use of sulfathiazole tablets, an antibiotic, tainted with the sedative, phenobarbital. In response, FDA drastically changes manufacturing and quality controls. These changes lead to the development of good manufacturing practices (GMPs).
미국 FDA 공식 문서 (A History of the FDA and Drug Regulation in the United States) 중 발췌: https://www.fda.gov/files/drugs/published/A-History-of-the-FDA-and-Drug-Regulation-in-the-United-States.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