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정신성 의약품의 의존성 문제
정신 질환은 개인의 의지나
성격 결함으로 치부되었다.
사람들은 한 알의 약으로 불안이 가라앉고 성격이 온화해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의 문제가 작은 알약 하나로 조절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부터 정신 질환은 정신력의 결함이 아니라 신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약은 기적의 치료제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수십 년 뒤, 그 기적의 약은 제약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약물 의존성 논란을 만들었다.
문제의 중심에는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이 있었다.
1960년대는 냉전의 공포와 급격한 산업화로 사회 전반에 불안과 우울이 퍼져 있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실존적 불안을 즉각적으로 덜어줄 대안을 원했다. 당시 정신분석 상담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비쌌다. 당연하게도 서민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치료였다. 대신 더 간단한 방식이 있었다. 벤조디아제핀 이전에는 바비튜레이트(Barbiturates)라는 약이 있었다. 바비튜레이트 처방은 진료실에서 5분이면 끝났다. 의사에게는 효율적인 도구였고 환자에게는 값싼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대가가 컸다. 바비튜레이트는 치사량이 낮아 자살 도구로도 쓰였다. 술과 함께 복용하면 위험이 급격히 커졌다. 불안이 있는 사람일수록 알코올과의 병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약은 구조적으로 위험했다.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해 바비튜레이트와 정신치료용 의약품은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제약사 로슈(Roche) 연구원인 레오 스턴바흐(Leo Sternbach)가 1950년에 발견한 벤조디아제핀은 달랐다. 임상에서 벤조디아제핀은 비교적 많은 양을 복용해도 단독으로는 치명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바비튜레이트를 대체할 안전한 기적의 약처럼 보였다. 로슈는 벤조디아제핀을 기반으로 리브륨(Librium)을 출시했고 이어 더 강력한 바륨(Valium)이 등장했다. 불안과 긴장, 불면뿐 아니라 일상의 스트레스까지 처방 사유가 되었다. 이 시기 벤조디아제핀은 치료제라기보다 삶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조정 장치에 가까웠다.
바륨은 출시 이후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내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약으로 꼽혔으며, 1978년에는 약 20억 정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대중적인 약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벤조디아제핀은 중증의 불안장애, 불면증, 경련 조절에 중요한 치료 옵션으로 남아 있다. 이 성공 덕분에 로슈는 세계적인 제약 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났다. 장기간 복용 환자들에서 내성이 나타났고 약효는 점점 줄어들었다. 중단하면 더 큰 불안이 찾아왔고 심한 경우 경련까지 동반되는 신체적인 금단 증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금단을 없애기 위해 약을 계속 먹어야 했다. 심지어 처음보다 더 많은 양을 먹어야 금단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라 의존성 문제였다. 마치 마약 중독과 같은 부작용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자 경고음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장기 복용 환자는 끊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그렇다고 금단 때문에 처방을 끊는 것도 어려웠다. 의료진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양상이었다. 정신과 약물은 효과를 체감하기 쉬운 만큼 의존 위험이 구조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이때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기 시작했다. 이 약은 기존 약과 다르게 취급해야 했다.
논란 이후 임상 접근은 크게 바뀌었다. 벤조디아제핀은 엄격한 처방 관리 대상이 되었으며, 단기 증상 완화용으로 위치가 재정의되었다. 또한 점진적 감량(테이퍼링) 같은 약물 중단 전략이 요구되었다. 불안이 있다고 무기한 처방하는 관행은 점차 사라졌고, 인지행동치료 같은 비약물적 접근이 1차 선택지로 강조되기 시작했다. 즉,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분류 체계가 정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벤조디아제핀 논란은 규제 체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약물 의존성이 있는 의약품에 대한 분류 체계가 정립되면서 약물의 평가는 독성뿐 아니라 의존성, 행동 변화까지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현대의 향정신성 의약품 규제 체계의 근간을 세웠다. 이 약들은 의약품 규제 기관뿐만 아니라 마약 관리 정부부처와 협력하는 규제 아래에서 관리가 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바뀐 가장 큰 변화는 마약류 관리 체계의 세분화이다.
이전까지는 중독성 약물을 단순히 마약으로 뭉뚱그려 관리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향정신성 의약품(Psychotropic substances)이라는 개념이 명확해졌다. 약물의 의존성 위험과 중추신경계 영향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관리하는 체계가 국가별로 도입되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과 마약단속국(DEA)이 협력하여 스케줄(Schedule) 제도를 통해 처방과 유통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중복 처방이나 장기 처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며 부적절한 사용을 관리한다. 과거처럼 장기간 무제한 처방이 가능했던 관행은 점차 사라졌고, 필요한 기간과 용량을 제한하는 처방 원칙이 자리 잡았다. 동시에 의존성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약물 중단 시 점진적 감량 전략이 임상 가이드라인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부작용 정보의 전달 방식이었다.
벤조디아제핀의 위험성을 보다 명확히 알리기 위해 규제 기관은 라벨링과 경고 문구를 강화했고, 중대한 위험이 확인된 약물에는 최고 수준의 경고 표시가 도입되었다. 블랙박스 경고문(Black Box Warning)은 중대한 위험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의료진과 환자에게 약물의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시킨다. 이와 같은 경고 체계는 약물을 신중하게 처방과 복용을 결정하도록 돕는다. 블랙박스 경고문은 약 상자나 동봉된 설명서 상단에 검은색 테두리로 강조되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자신이 복용해야 하는 약에 이러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여 복용 계획을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Drug Utillization Review) 및 국민 체험관
출처: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02040400
국민 체험관 출처: https://www.hira.or.kr/ra/medi/form.do?pgmid=HIRAA030029000000
부작용 위험이 높은 약을 특별 관리하고 환자에게 그 위험을 투명하게 알리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부정할 수 없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벤조디아제핀 사태는 이 당연해 보이는 원칙이 수많은 이들의 중독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만들어졌다.
약이 당장의 고통을 해결해 준다고 해서, 그 약의 안전성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간의 뇌와 행동에 관여하는 약물일수록 그 효과와 위험은 함께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벤조디아제핀은 여전히 중요한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사용법에 대한 명확한 전제가 붙었다.
짧고 신중하게
그리고 끊는 방법까지 함께 고려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