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1상, 그 문 앞에서 멈추는 수많은 약들

새로운 약이 사람에게 닿기까지 넘어야 할 첫 번째 벽

by 영초이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단지 실험실에서 좋은 데이터를 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신약 개발을 떠올릴 때 상상하는 이미지는 극적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밤샘 실험,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극적인 장면을 상상한다. 어두운 실험실, 푸른빛이 감도는 배양기, 그리고 수백 번 실패가 있다. 마침내 996번째 투약한 하반신 마비 쥐가 다리를 움직이고, 다음 날에는 걷기 시작한다.

단 한 번의 투약으로
기적처럼 다시 걷기 시작하는 실험용 쥐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연구자는 그 순간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고, 카메라는 곧바로 희망찬 음악과 함께 그가 억만장자가 되거나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 되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996번째 실험에서 쥐를 걷게 된 후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그 약을 어떻게 사람에게 투여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안전성을 증명해야 하는지, 왜 수많은 후보물질이 실제 사람에게 가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과정이 비밀스러워서가 아니다. 이미 공지되어 있는 규제와 씨름을 하게 된다. 정해진 규제에 맞는 입증자료를 만들고, GMP 기준에 맞는 공정을 설계하고,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준비해 심사자와 끝없는 질문을 주고받는 장면은 극적이지 않다.


이 과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임상 진입은 행정 절차처럼 진행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유는 단순하다. 임상 1상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약을 투여하는 단계다. 이 물질이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쥐가 아무리 잘 걸어 다녔어도, 사람의 복잡한 대사 체계에서는 예상치 못한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임상 1상은 건강한 사람에게 약을 투여하며 독성을 견딜 수 있는 최대치를 찾는 과정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그 프로젝트는 즉시 폐기될 수밖에 없다. 안전성에서의 실패는 보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무조건 치료 효능을 나타나는 용량에서 부작용이 예측 가능하고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없어야 한다가 아니라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치료로 얻어지는 건강 상의 이점이 부작용으로 생기는 문제보다 좋아야 한다. 안전성 그리고 유효성과 관련한 항목 중 하나만 어긋나도,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가능성 있는 후보물질들이 임상 1상 바로 앞에서 멈춰 선다. 왜냐하면 약의 안전성에 대한 입증 자료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전성과 관련한 제출자료 리스트

1. 단회투여 독성평가
2. 반복투여 독성평가
3. 투여 후 회복 및 장기 추적 관찰
4. 안전성 약리시험
- 심혈관계 안전성 약리시험
- 호흡기계 안전성 약리시험
- 중추신경계 안전성 약리시험
5. 면역원성 시험
6. 유전독성 시험
7. 체내 흡수, 분포, 대사, 배설 시험
8. 독성동태 시험
9. 제품 내 불순물 시험
10. 불순물의 독성 평가 결과
11. 의약품 장기안정성 시험

후보물질에 따라 제출자료는 늘어날 수 있음.


이런 다양한 입증 자료가 있어야지만 임상시험계획을 신청할 수 있다. 혼동이 생길까 봐 얘기하지만 승인을 받는 게 아니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효능이 조금 부족한 것은 이후 단계에서 보완할 수 있지만, 안전성에서의 문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이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동물실험을 통한 GLP 수준의 독성 데이터, 재현 가능한 GMP 수준의 생산 공정, 장기 안정성 시험, 그리고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규제 문서를 준비해야 한다. 단 하나라도 부족하면, 규제 기관의 문은 단호하게 닫힌다. 다행히도 한번 심사 거절이 나오면 끝이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보완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승인을 받는 것 자체가 기술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허들이 된다.




나는 그런 규제기관의 문 앞에서 수차례 멈춰 선 경험이 있다. 실험실에서는 분명히 의미 있는 작용 기전을 보여준 물질이었고, 세포 실험과 동물 실험 수준에서는 탁월한 효능을 보였다. 논문으로만 보면 충분히 매력적인 후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다음이었다. 소량 실험에서는 문제가 없던 공정이 대량 생산 단계에서는 재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공정 중 첨가제나 불순물 관리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독성 시험 결과가 명확하지 않아, 안전하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회색 지대에 머무는 경우도 있었다. 그 회색은 연구자에게는 가능성으로 보이지만, 규제기관에게는 위험으로 보인다. 규제 기관은 연구자가 제출한 수만 페이지의 문서를 바탕으로 가장 보수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 약이 사람 몸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임상 1 상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연구자 관점에서 임상 1상은 비로소 그래프와 수치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환자라는 구체적인 인간을 마주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더 이상 쥐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약을 투여받을 누군가의 부모님, 자식 그리고 친구의 삶을 상상해야 한다.


이 약이 정말 환자의 몸 안에서 안전한가?
나와 내 가족에게 쓸 정도로 안전한가?


​만약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1%라도 부족하다면, 혹은 생산 공정의 재현성이 의심된다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가장 용기 있고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고통스럽다. 환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상은 확률의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문제다. 효능이 부족한 것은 다음 단계에서 보완할 기회가 있지만, 안전에서 실패한 약물은 연구자와 환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렇기 때문에 몇몇 연구자들은 규제 기관의 까다로운 요구를 기술 혁신의 장애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임상 진입의 문턱에서 수차례 좌절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규제는 우리가 넘어서야 할 마지막 현실이다. 이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더 정교한 동물 모델을 설계하고, 더 정밀한 분석법을 개발하며, 더 안정적인 공정을 구축한다.


규제의 벽을 넘기 위해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후보물질에서 의약품으로 진화한다. ​


결국 임상 1상을 통과시키려는 노력은 데이터의 무결성을 증명하는 과정이자, 우리 스스로가 이 약물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후보물질 하나에는 연구팀의 수년간의 피와 땀, 그리고 수백억 원의 자본이 녹아 있다. 그렇다고 모든 후보물질이 성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임상 진입 직전에 멈춰 선 수많은 후보물질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계의 엄격한 자정 작용이며, 무거운 책임감의 산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 모를 실험실에서 눈에도 보이지 않는 오차와 싸우며 규제 문서의 한 줄을 고치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들의 끈기, 그리고 정말 이 약이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정직함이야말로 신약을 현실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당신은 단지 성공하고 싶은 연구자인가?
아니면 생명을 책임질 준비된 연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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