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규제는 피로 쓰인다: 설파닐아마이드의 비극

의약품의 안전성 평가가 까다로워진 이유

by 영초이

규제는 늘 귀찮다.

느리고, 복잡하고, 창의성을 막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연구자나 개발자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규제는 약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던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이 규제가 없어서 위험한 시기가 있었다.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약을 먹고 죽은 사람들이 생긴 후에야 규제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말 그대로 규제는 피로 쓰인다.



PART I. 규제를 만든 설파닐아마이드 비극


이러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때 단골로 나오는 사건이 있다. 설파닐아마이드 비극(Sulfanilamide disaster)이다. 지금의 FDA 규제의 근간이 되는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의 제정을 이끈 결정적인 계기였다. 의약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 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 FD&C Act

이 사건을 정리한 글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제목: Sulfanilamide Disaster (FDA Consumer magazine, 1981년 6월 발행)
저자: Carol Ballentine
https://www.fda.gov/files/about%20fda/published/The-Sulfanilamide-Disaster.pdf


'Can of 12 Sulfanilamide tablets' National Liberation Museum 1944–1945 (CC BY-SA 4.0)


비극의 중심에 선 설파닐아마이드는 1937년에 상용화된 최초의 항균제였다. 설파닐아마이드는 위험한 물질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살린 약 중 하나다.


이 약이 등장하기 전에는 지금은 가볍게 치료되는 상처 감염조차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던 시대였다. 독일의 세균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설파닐아마이드가 세균 증식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는 최초의 항균제로 상용화되었다. 그 공로로 그는 193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전쟁 영화를 보면 부상을 입은 병사에게 흰 가루를 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가루가 바로 설파닐아마이드에서 발전한 항생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은 분말 형태의 설파닐아마이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부상으로 피부가 찢어지면 상처 부위에 직접 가루를 뿌렸다. 이 약은 상처 부위에서 세균 증식을 늦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결과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률은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설파닐아마이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미국에서는 연간 약 2만 5천 명의 사망자가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설파닐아마이드는 매년 작은 도시 하나만큼의 생명을 살렸다.

그러던 1937년, 미국의 제약회사 마센질(Massengill)은 설파닐아마이드를 더 많은 사람에게 쓰고 싶어 했다. 특히 아이들도 쉽게 복용할 수 있도록 시럽 형태로 바꾸기로 결정한다. 설파닐아마이드를 용매에 녹여 액체로 만들고, 딸기향을 첨가했다. 맛도 좋고, 복용도 쉬웠다. 부모들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약처럼 보였다.

문제는 약이 아니라 시럽을 만드는 용매였다. 설파닐아마이드를 녹인 디에틸렌 글리콜은 강한 신장 독성을 가진 물질이다. 현재도 부동액, 브레이크 오일, 가소제, 폴리에스터 수지 등 산업용 원료로 사용된다. 용도만 봐도 먹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섭취 시 신장과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키며, 간과 신장을 영구적으로 망가뜨릴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독성이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다른 산업 영역에서는 잘 알려진 위험이었다.

회사 내부 실험실은 설파닐아마이드가 디에틸렌 글리콜에 잘 녹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맛, 외관, 향만을 시험했다. 그 결과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곧바로 제품은 출하되었다. 이 새로운 제형은 독성 시험을 단 한 번도 거치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시 기준에서 이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의약품의 안전성을 검증해야 할 의무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엘릭서 설파닐아마이드로 판매된 이 시럽은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독한 약을 판매하는 것은 기업의 평판과 사업에는 해로울 수 있었지만, 불법은 아니었다.


이 사건은 지지부진하던 미국의 의약품 법의 제정에 결정적인 불을 붙였다. 기존법은 허위/과대광고에 대한 증명 책임을 정부가 져야 했고, 제약사에서는 제품 판매 전 안전성 입증 의무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보다 강화된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업계의 반대와 법안의 광범위한 규제 범위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설파닐아마이드 사건의 충격은 그 모든 논쟁을 단숨에 밀어붙였다. 아이제 의약품은 기업의 판단이 아니라 규제기관의 관리와 감독 아래에서 개발되는 대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생명의 희생이 규제 제정을 가속시킨 것이다.





PART II. 피로 쓰인 의약품 규제의 원칙


이 법을 통해 처음으로 명확해진 원칙은 단 하나였다.


모든 의약품은 시판 전에 독성 시험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이제 약은 효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팔릴 수 없게 되었다. 1938년 제정된 FD&C Act는 제약사가 신약을 출시하기 전에 안전성을 입증할 의무를 부과했다. 원칙은 단순했지만, 그 파급력은 혁명적이었다.


첫째, 책임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전까지 정부의 역할은 사후 대응에 가까웠다. 사고가 발생하면 회수하고, 처벌하고, 수습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법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정부가 증명할 필요는 없다. 안전하다는 것을 제약사가 증명해야 한다. 입증 책임은 명확히 제약사 쪽으로 이동했다. 정부는 사후처리자가 아니라 사전심사자가 되었다. 이 심사 역할은 현재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서 맡게 되었다. 정부부처에서 규제기관으로 탈바꿈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둘째, 규제기관의 역할이 바뀌었다.
규제기관은 더 이상 라벨만 확인하는 기관이 아니다. 제약사가 제출한 독성 시험 자료를 검토하고 그 결과가 납득되지 않으면 시판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문제는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승인받을 수 있냐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제약사의 개발 방식 자체를 바꿨다. 제약사는 이제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다양한 독성 시험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했고 그 결과를 문서로 정리해 규제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즉, 약은 더 이상 실험실 내부 보고서를 기반으로 개발되지 않는다. 위험도가 숫자로 정리되지 않으면 시장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 법으로 FDA는 처음으로 이 약은 아직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권한은 수많은 잠재적 비극을 조용히 막아낸 권한이기도 했다.


셋째, 환자에게 이 약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바뀌었다.

설파닐아마이드 사건에서 제약사는 무슨 벌을 받았는지 보면, 당시 법의 한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100여 명의 사망자를 냈음에도 당시 관련법의 한계로 인해 엄격한 형사 처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단지 라벨 허위 표시 혐의로 벌금과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것 이외에는 없다. 라벨 허위 표시 혐의는 너무도 가벼웠다. 엘릭서에는 알코올이 들어가야 하지만, 실제로는 디에틸렌 글라이콜을 사용했기 때문에 알코올 없이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만 문제 삼을 수 있었다. 이 허술함이 바로 법 개정의 출발점이었다.

FD&C Act는 라벨 표시 의무도 명확히 규정했다. 의약품에 사용된 성분과 알려진 부작용을 소비자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약은 더 이상 믿고 먹는 물건이 아니라 알고 선택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규제는 예전보다 훨씬 불편해졌다.

제출해야 할 서류는 늘어났고, 요구되는 안전성 평가는 더 복잡해졌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행정의 과잉이 아니라 누군가는 실제로 흘려야 했던 피의 대가다.


우리가 서류 한 장을 더 쓰고 시험 하나를 더 수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만든 제품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흘린 피로 또 하나의 규제 항목이 만들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사실은 언제든 다시 상기시켜야 한다.

규제는 종이가 아니라 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