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약의 배신: 탈리도마이드 사건

동물에서는 부작용이 없는 기적의 약

by 영초이

약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방식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다.


동물 실험에서는 전혀 독성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 전혀 독성이 없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항상 남는다. 많은 실험에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약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하여금 약을 투여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 독성이 다음 세대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충격제약계에 남겼다. 이러한 충격은 다시 한번 생식발생 독성 시험이라는 규제를 만들었다.



PART I. '기적의 수면제' 탈리도마이드 사건

'Pack of Thalidomide tablets.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한때 기적의 수면제라 불리며 전 세계 임산부에게 처방되던 약이 있었다. 입덧을 가라앉히고 잠을 잘 오게 해 준다는 이유로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환영받던 탈리도마이드다.


1950년대 후반, 탈리도마이드는 독일에서 개발되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안전한 약처럼 보였다. 동물실험에서 치명적인 독성은 발견되지 않았고, 성인에게서도 눈에 띄는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약이라는 점이 신뢰를 더했다. 더군다나 이 약은 전쟁 후 불안에 의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수면제 혹은 진정제로 사용되었다. 혼란한 시대에 사람들의 정신적인 불안을 해소시켜주는 약이었다. 심지어 어떤 연구에서는 임산부의 입덧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보고되었고, 이러한 연구결과는 산부인과에서의 처방을 급격하게 올렸다. 입덧과 진정에 효과 있는 안전한 약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임산부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태어난 아이들이 문제였다.



몇 년 뒤, 전 세계 곳곳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짧거나 없는 아이들이 태어났고, 심장과 내장에 심각한 기형을 가진 신생아가 급증했다. 처음에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전염병도 아니었고,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었다. 공통점은 하나였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임신 초기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기형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을 탈리도마이드 베이비(Thalidomide Babies)라고 부른다. 이들은 단순한 신체 기형에 그치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영유아기에 생명을 잃었고, 살아남은 경우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다. 현재까지 추산된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는 1만 2천 명에 이른다. 그중 대부분은 삶이 시작되기도 전에, 혹은 아주 이른 시기에 일어났다.


'NCP14053.jpg' Wikimedia Commons (CC BY 2.0)


이 약이 기적의 약으로 광고된 이유는 단순했다. 동물실험에서 명확한 독성이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쥐와 토끼 등 실험동물에서는 눈에 띄는 부작용이 확인되지 않았고, 이 결과는 탈리도마이드를 안전한 약으로 포장하는 데 충분했다. 이 때문에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오랫동안 동물실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대부분 수컷 동물 위주로 검증이 진행되었고, 임신한 암컷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태아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결정적인 공백을 처음으로 문제 삼은 곳은 미국 FDA였다. FDA의 심사관인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Oldham Kelsey)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된 테스트를 요구하며, 6번에 달하는 승인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이 결과, 미국에서는 탈리도마이드 베이비의 사례가 극도로 적게 보고되었다. 그 고집은 결과적으로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 이러한 성과로 켈시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고, 미국 공무원 최고 영예의 상인 미국 대통령 우수 연방 민간 공무원 공로 훈장과 본인의 이름을 딴 켈시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켈시와 같은 영웅적인 심사관에 의해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 약은 더 오랫동안 시장에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Frances Oldham Kelsey and John F. Kennedy (PDM 1.0)



PART II. 탈리도마이드를 통해 얻은 교훈: 부작용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당시 규제를 어긴 약이 아니었다. 법적으로 요구된 시험을 거쳤고, 허가된 방식으로 판매되었다. 즉, 비극은 규정을 어겨서가 아니라 약이 안전하다는 판단 기준 자체가 너무 단순했고 성급했다. 설파닐아마이드 비극이 안정성 시험 부재에 의한 급성 독성이 문제였다. 그러나 탈리도마이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를 던졌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기형 유발이라는 충격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약이 생명을 해칠 수 있는 방식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 약은 성인에게 거의 독성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치사량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 초기라는 특정 조건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남겼다.


독성은 먹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생식독성(Reproductive toxicity) 발생독성(Developmental toxicity)이다. 탈리도마이드는 DNA를 직접 손상시키는 전형적인 유전독성 물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약물의 카이랄성 이성질체는 배아 형성과 혈관 생성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태아의 팔다리 형성이라는 발생 과정을 붕괴시켰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세포와 유전자를 변형시키지 않아도 특정 발달 단계의 생물학적 신호에 개입하는 것만으로도 태아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규제의 시선은 달라졌다. 이제 규제는 눈에 보이는 독성, 즉 급성 독성이나 장기 독성만을 평가하지 않았다. 이 물질이 생식세포와 배아 발달 과정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의약품 개발에서 필수로 요구되는 생식독성 시험, 배아/태자 발생 시험, 출생 전후 독성 시험은 모두 이 사건에서 출발했다.


그렇지만 탈리도마이드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병에 사용되고 있다. 이후 한센병과 다발성 골수종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현재도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조건은 극단적으로 엄격하다. 탈리도마이드 처방 프로그램에서는 임신부 복용이 절대적으로 금지되며, 임신 가능성이 있는 환자 역시 철저한 관리 대상이 된다. 정기적인 임신 검사, 이중 피임, 처방 및 조제 단계의 이중 확인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다시 말해, 이 약은 더 이상 안전한 약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이 명확히 알려진 약을
통제할 수 있는 조건 아래에서만
사용하는 사례가 된 것이다.





의약품 규제는 늘 사고 뒤에 진화한다.

하지만 그 진화의 목적은 분명하다.

다음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아직 나타나지 않은 위험까지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탈리도마이드가 그 질문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모든 약물에서 다음 세대에 대한 위험을 반드시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전 03화모든 규제는 피로 쓰인다: 설파닐아마이드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