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엄마를 키우고 있다. 1944년 4월 생, 만 나이 75세 되신 우리 엄마를.
엄마의 초기 치매 증상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2015년 여름, 내 몸에 이상 증상이 생겨 휴직을 신청하고 집에 있다 보니, 보였다.
실은, 몇 년 전부터 예감은 있었다. 인정하기 싫어서인지, 아닐 것이라고 마음을 달랬다.
"우리 집에 언제 가니? 너무 늦으면 혼나. 큰일 났어, 큰일."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징후가 나타났다. 거실 쇼파에 앉아 귀가 걱정을 한다거나,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는 카디건, 스마트폰 받는 방법을 잊고 어쩔 줄 몰라 땀을 흘리는 모습.
병원에선 정말 원론적인 말을 했다. 요약하면, 나을 것을 기대할 수 없지만 계속 약은 먹어야 한다. 약을 챙겨 먹는 것은 전쟁이었지만, 이어갔다.
미스코리아 나가라는 말을 100번 넘게 들었다는 엄마. 서울 명동 해남 빌딩 근무할 당시 "제발 커피 한 잔만 하자"는 남자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찾아와 상사가 혼을 내 돌려보내는 게 일이었다는 엄마. 자존심 강한 영문학도 엄마. 주판과 암산 여신이었던 엄마. 단정한 필체 때문에 모든 모임의 서기를 도맡아 하던 엄마. 요리를 싫어하는 대신 꽃꽂이 솜씨는 일품인 우리 엄마.
그 엄마는 하루에 조금씩 사라져 갔다.
나와 아빠(1942년 1월 생)의 '엄마 키우기'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노노 케어와 미혼 중년 딸의 엄마 키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