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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무탈 Apr 08. 2021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6.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

엄마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조급증이 도진다.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려면, 그건 바로 오늘이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차이가 난다. 마치 아기가 눈 깜짝할 사이 자라듯, 노인은 눈 깜짝할 사이 쇠한다. 눈물 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고민하고 말고 할 것 없이 당장 행동해야 한다. 

당초 2020년엔 엄마가 좋아하시는 유럽, 지상 낙원이라니 아빠가 꼭 가보고 싶어하시는 하와이 여행도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모두 무산됐다. 그러니 동네 산책을 많이 하고 맛있는 것 찾아 먹는 것으로 위안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 거동이 더 힘들어지기 전에 많은 경험을 함께 하려면 하루가 아깝다. 


씩씩하고 긍정적인 우리 아빠도 어쩔 수 없이 늙으신다. 특히 소리에 둔해지시는 게 마음이 아프다. 엄마 챙기느라 스트레스가 많아 더 그런 것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보청기는 절대 싫다시는데, 큰일이다. 청력과 치아가 노인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빠를 통해 느끼고 있다.     


여튼, 지난해 거창한 계획은 접었지만 국내는 조심스럽게 다녔다. 주로 아빠가 점찍어 둔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지방으로 떠났다. 기차와 비행기 등을 이용해 현장에 가 렌터카를 이용한다. 노인과 이동할 때 적극 추천하는 방법이다. 가는 길에서 지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음식은 맛집 탐방이 취미인 아빠 취향에 맞추게 된다. 메뉴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을 넉넉하게 주문한다.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이 없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식사엔 아낌 없이 지출한다. 지금은 먹어야 할 때.  

 

보통 2~3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쉽지 않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아직 잘 걷고 아름다운 풍경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가 꽤 있다. 가령 수목원에 마음에 드는 꽃을 자꾸 몰래 꺾어 주머니에 넣으려고 할 때 진땀을 뺐다. 화장실을 참지 않고 길에서 볼일을 보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엄마 달래기 난이도가 점점 올라간다. 


이럴 때 엄마한테 짜증을 부리면, 나중에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할지를 잘 알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행할 때마다 나도 한 번씩 폭발할 때가 있다.화를 내면 내 마음이 더 안 좋을 것을 알면서도 단 10초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많다. 


가장 큰 소리를 냈을 때는 통영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다. 일명 수건 실종 사건. 씻고 나서 보니 분명 뽀송뽀송한 상태로 있던 수건이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찾았는데 엄마가 더러운 신발과 함께 수건을 숨겨 두신 것이다. 종일 힘들었던 차에 터져나왔다. 순간 스스로 놀랄 정도로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더 크게 소리를 쳤다. 평생 험한 말이라고 하지 않던 분인데, 병이 진전되면서 이상한 욕을 하신다. 이럴 때는 설명하기 힘든 절망을 맛보게 된다. 우리 엄마가 도대체 왜 이러시나.   


다행힌 것은 엄마는 좋은 풍경 앞에서 카메라를 가까이 대면 활짝 웃는다. 좋은 표정의 사진을 많이 건진 날은 기분이 정말 좋다. 맛있는 곳을 찾아가면 리액션도 잘해 준다. 순간순간 절망했다가도 다시 다음엔 어딜 갈까 검색하게 만드는 이유다. 


여행지마다 사진을 인화해 각각 앨범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앨범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하고, 더 기운을 내야 한다. 엄빠 건강을 챙기고 무엇보다 내 마음 수양을 잘해야 한다. 꼭 유럽과 하와이 앨범을 만들고 싶다. 만들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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