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P의 캐나다 여행기(5)
1주일간 캐나다 여행을 하면서 이민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느꼈는지 더 늦기 전에 글로 남겨놓으려 한다.
캐나다에 머물던 마지막 2일은 새롭게 단장한 주택의 2층 마스터 룸에서 지냈다. 마스터 룸이란 화장실까지 연결되어 있는 프라이빗한 방을 의미한다.
집주인은 대만에서 캐나다로 이민오신 분이셨다. 대만에서 일하며 아들 3명을 키우다가 20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했다고 한다. 은퇴를 했지만, 가만히 있는 게 싫어서 두뇌 회전을 위해 종종 원격으로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대상 중 한국 고객도 있어서, 한국 출장은 2번 다녀왔고, 뉴스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해서 알고 계셨다.
집주인과 이야기하다 보니 캐나다의 문화에 더 잘 알게 된 경험담을 공유해 주셨다.
집주인은 캐나다에 이민 온 후에도 처음에는 한국처럼 대만식 사고방식을 유지했다고 한다. '빨리빨리' 문화와 자녀들에게 호랑이 엄마였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라고 강요를 많이 했다고 한다. 아들이 정치학 전공을 한다고 해서,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학과를 왜 들어가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 캐나다 엄마들이 "내버려두어라. 거기서도 바로 정치학을 배우지 않고 학생이 적성이 맞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 후 전공 교육에 들어간다 푸시하지 말라. 알아서 본인 적성에 맞는 전공을 잘 찾을 거다"라고 피드백을 들었다고 한다.
이 나라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각각의 개성을 존중하는 나라인 것을 점차 깨달았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도 변화해, 본인 집에 장기투숙하는 학생들에게 '다 잘될 거라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지금 잘 안 풀리면 다음에 다 잘되겠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캐나다의 장점만 이야기하니 너무나 이상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캐나다의 단점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음... 느리다? 여기는 모든 게 느리긴 해. 그리고 집 값이 비싼 게 단점이야. 그거 말고는
음..... 음.... 심심한 거? 밴쿠버에 살면서 심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꽤 많아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봤어. 여기는 성향에 맞는 사람만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사실 도시의 바쁜 삶의 치여 살다가 한 번씩 자연경관을 보면 좋지만, 365일 대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면 별 감흥이 없을 법도 하다. 그래서 캐나다 사람들을 액티비티 취미를 중요시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호수 같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산에서 스키와 보드를 즐기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다.
지금 나의 서울 생활과 고민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적성에 맞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 요즘 무기력한 상태예요. 매일 불안과 조급한 상태로 회사-집-회사-집 무한 반복인 삶을 살고 있어요"라고.
아주머니께서 안타까워하며 만약 캐나다에 다시 올 계획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 주셨다.
"일단 돈을 모으고 워킹홀리데이 또는 좀 길게 캐나다를 다시 와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고 일하면서 네가 갈 대학을 찾아봐.
IT로 유명한 밴쿠버 학교는 BCIT인데, 여기도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는 한 번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 대학 졸업하면 2년 워킹 비자 나오고 관련 직종에서 일하면 영주권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될 거야. 그 대학은 취업도 정말 잘되고 미국에서 고용하려고 찾아오더라."
여기서는 자식이 있는 아줌마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 시간을 가진다는 시람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식들을 서포트해야지 왜? 일하고 있지? 그것도 마켓에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정해진 루트 같은 게 없고 각자 원하는 삶을 탐색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거라고 한다. 나이 서른에 직장 다 그만두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도전하는 삶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긴 했다.
"그리고 혹시 캐나다 와서 일이나 공부하게 된다면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지 마. 한국인들끼리 어울리는 거 많이 봤어. 여기와 서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랑 어울렸으면 좋겠어!"
타지에서 외로워지면 자연스럽게 말이라도 통하는 한국인이랑 어울리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부가 부를 낳듯, 영어가 영어를 낳는다고 한다. 영어를 잘할수록 현지인과 자신 있게 어울릴 수 있고, 서로 영어를 쓰는 환경에 노출된다. 영어 실력이 없으면 현지인이 있는 자리에 가도 위축되어 친해지지도, 깊은 대화도 나누기 힘들어진다.
"네가 계속 영어가 허들이라고 말하는데, 너는 지금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정도야. 나랑 의사소통을 계속하고 있잖아? 그러니 좀 더 영어공부는 하면 되는 거고, 너의 전공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쓰는 언어가 있을 거야. 그건 익숙해지면 될 거야. "
영어 공부 정말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올려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지금은 한 없이 모자라다.
여행 중에 바로 옆에서 현지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너무 빨라서 단어 하. 나. 도. 들리는 게 없었다. 이 속도와 발음으로 현지인과 같이 다니는 대학교/직장에 간다고 생각해 보니,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았다. 여행 중에는 외국인에게 천천히 말해주거나 쉽게 설명해 주는 배려가 있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런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실감했다.
필요한 영어의 수준을 직접 체감한 것도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다. 한국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영어 회화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글을 당근에 올렸다. 내일 트라이얼 수업을 하기로 했다. 바로 실행에 옮기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마음 가짐이 흐지부지해질게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다.
"혹시 더 고민되는 거나 도와줄 거 있으면 메일 보내.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컨설팅해 주는 게 업무고, 좋아하는 일이기도 해. 언제든 메일 보내."
에어비엔비 체크아웃하는 날,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고민거리와 질문들을 1,2,3 나열하여 바로 메일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연락하면 날 기억 못 하실 수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아침을 먹다가 호스트에게 '쓰레기 어디에 버려요?'라고 질문으로 시작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신 차리고 나니,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캐나다 여행한 지 5일째라고 나도 스몰토크가 좀 늘은 건가?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며 캐나다에 26년 전에 이민오신 분이다.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친구 지혜의 집주인분으로 나와는 정말 남인 관계이다. 하지만 최고의 기억을 남겨주신겠다며 밴쿠버 투어를 시켜주신 분이다.
하루도 집에 하루종일 있으신 적이 없다고 한다. 정말 매일매일 캐나다의 방방곡곡을 여행 다니셔서 근교 여행 갈 때 내비게이션 자체를 켜지 않으셨다. 내가 도착하기 2일 전에는 시애틀에 다녀오셨다고 한다. 내년에는 1달 동안 스페인에 거주할 생각도 있으시고, 거주하면서 에어비엔비 사업도 해볼 거라고 하셨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나의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경험이 많으신 분을 만나면 은근한 생각 강요가 있어서 조금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제이는 전혀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의 대화를 하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12시간씩 여행 다니면서, 오디오가 비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인 것 같다. 나 때문에 남의 시간을 며 칠 빼앗는 것 같아 사실 투어시켜준다고 했을 때, 마음이 불편했다. 제이를 만난 여행 첫날 몇 시간은 그 마음이 동일했다.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나도 즐거워서 같이 다니는 거야. 덕분에 좋은 또 갈 수 도 있잖아?"
운전하는 게 힘든 게 아니지. 이런 좋은 뷰를 보고 노래를 들으면서 드라이브를 하는데 노는 거지, 뭐가 힘들어."
"덕분에 즐거운 거고, 나중에 캐나다에 친구들이랑 같이 오면 똑같이 좋은 경험시켜주면 되는 거야. 조금 더 베풀고 살면 좋아. 근데 한국인들은 꼭 베풀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더라. "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ㅜ)
"한국 가서도 웃으면서 지내. 아무 이유 없어도 웃으려고 노력해 봐"
이 말을 잊지 않고 한국에서도 웃으려고 아직까지는 노력하고 있다.
캐나다에는 우리나라의 '알바'라는 개념이 없다.
식당에서 일하는 서버는 서비스 업의 한 직업이라고 한다. 일하는 시간이 파트타임이냐, 풀타임이냐가 나눠져 있을 뿐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알바는 본업을 하기 전에 또는 학생신분 때 돈을 벌기 위한 잠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개념 자체가 아예 다른 것이다.
팁도 기본 15%는 받기 때문에 기본급 + 팁까지 합치면 500만 원을 넘는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기본 시급만 주는 은행 사무직보다 더 많이 버는 직업이다. 평생 서버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문직이 아니기에 연봉이 오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이 제한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간 식당은 전부 젊은 사람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일식집에서 서버가 고객을 'Take Care'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팁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주문받기 전, 오늘 식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OO이다고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스몰토크를 했다. 나는 사실 바로 음식 주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빠르게 주문하면 음식도 빠르게 받을 수 있고, 식당 직원도 좋은 게 아닌다.
하지만 함께 있는 제이가 how are you부터 말을 터서 꽤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약간의 친밀감이 생긴 상태로 음식 추천과 설명을 받으면서 기나긴 주문이 끝났다. 음식을 먹는 중간중간, 맛은 어떤지 물어봐주시고, 물이 비웠으면 물도 채우러 와주시고 정말 나의 식사를 take care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바가 아니라 왜 프로페셔널한 서버 직업이라고 말하는지 깨달았다.
아니다. 음식 다 먹은 접시는 치워줄 테니, 편하게 대화하라는 의미였다.
식사가 끝나고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눠도 되는 문화라고 한다.
다음날, 대기가 있는 식당에 갔었다. 언제쯤 자리 날 것 같냐고 물어보니 그건 모른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음식은 다 먹어도 손님이 계속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대기 시간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뒤에 대기 손님 있으면 눈치 보여서 빨리 나갔을 테지만 말이다.
밴쿠버에 있는 한인 식당도 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서버는 한국 아르바이트생 같았다. 그냥 한국에서 받는 서비스와 다를 바 없었다. 평소 한국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받는 서비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텐데, 캐나다 식당에서 친절한 서비스를 받다 보니, 왜 캐나다 사람들이 말하길 한국인은 '차갑다(cold)하다'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물론 모든 한인 식당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체크인을 늦어하는 바람에 중간 자리로 비행기를 예약했고, 짐을 맡기는 곳에서 좌석을 한 번도 옮겼다. 옮긴 좌석도 중간자리인데, 왠지 모르게 자리를 바꾸고 싶었다.
내 옆에 누가 앉아계실까? 기대를 하면서 자리를 찾으며 착석했다. 내 자리 옆에는 나이가 지긋하게 있어 보이시는 필리핀계 미국인이셨다. 놀랍게도 75세 나이로 한국에 혼자 1주일 여행을 하신다고 한다. 처음에 한국 간다길래 한국에 지인이 있나? 생각했는데, 아시아를 정말 좋아하는 할머니셨다.
'여행 가면 뭐 하니.. 비행기 타는 것도 힘들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다리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최대한 여행 많이 다니고 싶다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게 즐겁다"라고 하셨다.
이후에는 휴대폰을 꺼내 이제까지 여행한 곳들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젊은 시절의 여행 다녔던 사진들도 모두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어떤 잘생긴 남자 사진을 보여주시길래 나는
"일본인 가수예요?"
"아니 엑소야!"
"아...! 엑소라는 아이돌 이름만 알고 멤버는 몰라요. ㅋㅋ"
엑소의 팬이셨고 작년 한국여행 때 엑소 콘서트까지 갔다고 하셨다.
1년에 적어도 3번 이상은 여행을 다니신다고 한다. 75세인데 아직도 미국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주일에 3일, 12시간씩 일하고 있다고 하셨다.
진정으로 체력이 나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게다가 미국에서 캐나다로 경유하시고, 비행기 지연으로 캐나다에서 하루를 공항에서 꼬박 새웠다고 한다. 그러고 한국행 비행기에 타시는 거라고 하셨다.)
혼자 호텔도 예약하시고, 네이버 지도도 깔아 두셨더라.
체력이 안되어 여기저기 못 돌아다닌다고 핑계 대는 나와는 정말 정반대였다.
또 일하는 마인드도 나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시카고에 있는 병원에서 24년을 근무하고 계셨다고 했다. 동료들과 정말 친하다고 하면서 동료들의 사진들과 일화를 들려주셨다. 사진 속 동료들은 사회에 찌든 얼굴이 아닌, 행복이 비친 함박웃음을 하고 있었다. 입만 웃는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일하면 스트레스받지 않아요? 다들 웃고 있네요. 행복해 보여요."
"그럼 당연히 힘들고 스트레스받지. 그래도 최대한 웃으려고 노력해. 웃으면 웃을 수 있는 일이 굴러들어 온다잖아."
회사 사람들도 좋고 복지도 좋은데, 사실 회사만 가면 시종일관 무표정일 때가 대부분이다. 웃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금보다는 웃으려고 노력해야겠다.
시카고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숙소 없으면 본인 집에 머물러도 된다고 하셨고 원하면 병원 투어도 시켜주겠다고 하셨다.
스마트와치도 사용하시고 핸드폰으로 셀카, 동영상도 많이 찍으시는 신세대 할머니의 과거 여행 스토리를 들으며 한국에 도착했고, 택시 타는 것까지 봐드리고 헤어졌다.
캐나다 여행하면서 우연히 이민에 성공한 사람들만 만났다.
성공했으니 좋은 점만 들려주지 않았을까, 어딜 가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있기 나름이다. 캐나다 여행하면서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지만, 막상 살아보면 또 힘든 점이 많을 것이다. (왜 이렇게 단점만 집중해서 보냐고 한 소리 듣긴 했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여행하면서 팀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생에서 여행이 디폴트고, 여행 가기 전 돈을 모으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한다."는 말을 이해한 여행이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여행할 날을 계획해봐야겠다.